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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자료] [사민주의와 차세대 노동운동②] "민족민주 운동 호소력 상실"

2. 정파와 민족민주운동, 그리고 사회민주주의운동 

이렇게 민주노조운동이 사회적으로, 심지어 같은 임금 노동자계급 내에서도 고립되는 데에는 정파의 책임이 크고 무겁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노동운동의 신경과 두뇌에 정파라는 바이러스가 침투하여 탄력성을 가지고 상황에 적응하는 능력이 마비되었기 때문이다. 

정파들은 내부 투쟁에는 유능하지만 외부 투쟁에는 지극히 무능하고 상대 분파를 파악하는 데는 빠르지만 노동자 대중이나 국민 대중의 마음을 파악하는 데는 늦다. 또 내부 투쟁을 우선하다 보니 명분론이 항상 앞선다. 명분은 효과적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수단이 되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의 발목도 묶는다.

정파보다 무력한 민주노총 집행부

민주노총의 고질적인 정파 투쟁은 정직하게 자기 주장을 내놓고 대중의 심판을 받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노선의 차이라는 것도 애매하다. 그러다보니 주로 도덕적인 문제로 상대를 흠집 내는 방식으로 정파 투쟁을 해왔다. 그래서 주로 형식 절차나 도덕적 문제를 따지는 데는 능하지만 실질적 문제는 다룰 능력과 의사가 없다. 그래서 정파는 분파를 벗어나지 못한다. 

임영일 교수에 따르면 강신준 교수가 최근에 쓴, 노동운동 정파 문제를 분석한 논문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 노동운동 내에 활동가들은 더 이상 ‘정파’ 활동가들이 아니다. 둘째, 이 정파들은 그 내용을 들여다보니 전혀 정파가 아니다. 그저 ‘분파’일 뿐이다. 셋째, ‘분파’의 틀 속에 갇힌 활동가들은 오로지 자기 분파가 조직의 권력을 장악하는 일에 거의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다.

넷째, 따라서 연대가 필요한 부분에서 분열을 일삼고, 격렬한 노선투쟁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오히려 담합을 일삼는다. 다섯째, 따라서 한국 노동운동이 재생하려면 제대로 된 정파들이 (재)형성될 필요가 있다.”(<레디앙> 2009년 10월 4일)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은 위에 인용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간 민주노총은 주체 역량 분석을 냉정하게 못해 왔다. 분석하는 사람 역시 각 정파와 연관돼 있으니 손대기가 쉽지 않다. 민족분단, 남북문제, 김대중 정권, 신자유주의 정책, 노사관계 등의 정세분석에서 정파적 경향성과 맞물려 시각차가 존재한다.

한편 정파조직의 지도부가 대중조직의 지도부가 가진 지도력과 장악력을 넘어 서고 있다. 현재의 정파조직은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를 유회시킬 수 있는 힘을 가졌을 만큼 집단화되고 있다. 이런 문제는 해결해야 한다.”(<레디앙>. 2009년 9월 16일) 

실무진이 모두 정파의 시각에서 사물을 바라보니 민주노총의 집행부가 원하는 체계적인 주객관적 인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정파조직의 지도부보다 무력하다고 느낀다.

노동운동의 질곡이 된 '운동권'

민주노총의 문제는 바로 민주노동당의 분당 사태와도 관련이 있다. 민주노총은 노동자 대중의 힘으로 민주노동당의 정파를 제압하지 못하였다. 마침내 분당에 이르게 된 지경에도 최대 주주이면서도 속수무책으로 한탄만 하고 있었다. 민주노동당의 분당 사태는 한국의 노동운동이 하나의 정당을 운영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최종적으로 확인해주었다. 그것은 '쪽수'가 모자라서도 아니고 '돈'이 없어서도 아니다. 

2004년의 일시적 성공의 환상과 원내 진출의 오만에 빠진 이른바 PD파 당 활동가들 역시 대중정당으로서 진보정당을 만들 수 있는 길은 오직 '노동당 노선'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거나 뼈저리게 알지 못해서 예사로 분당을 하고 말았다. 그들이 언제부터 이른바 '종북주의' 노선과 제대로 된 투쟁을 벌였던가? 그들은 일심회 사건 당시에도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정파란 무엇인가? 정파는 당연히 다양한 노동운동가들로 이루어지지만 이론적, 이데올로기적으로는 이른바 ‘학출(學出) 활동가’들의 영향력이 매우 크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학출 활동가, 또는 운동권(運動圈)이라 불리는 사람들, 이들의 도움으로 민주노조운동이 성장하였지만 그만큼 이제는 그들이 민주노조운동의 발전을 가로막는 굴레가 되고 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노동자 출신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학출 활동가들이 이제 노동운동에서 떠나주기를 바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런가하면 노동운동 주변에서 노동운동에 관여해온 지식인들의 책임론도 나오고 있다. ‘독립적인 지식인’으로서 노동운동의 어떤 흐름에 대해서도 거리를 유지하면서 객관적으로 비판하지 않고, 종파 또는 분파의 이익에 복무하거나 ‘곡학아세(曲學阿勢)’해온 학자들의 엄정한 자기비판이 요구된다. 

지금까지 노동운동에 여러 가지 방식으로 간여해온 지식인들의 책임이 실로 무겁다. 그들은 노동운동이 '열사' 칭호를 남발하는 데도 일조하였다. 투쟁의 내용과 목적을 보지 않고 투쟁의 겉모습에 취하였다. 그래서 이정호 <참세상> 편집국장은 이렇게 말한다.

지식인들의 솔직한 자기반성 필요

"90년대 초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인상 투쟁을 둘러싼 공권력과 충돌을 혁명적 계급 투쟁으로 미화한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부끄럽기 그지없다." 노동운동에 간여했던 지식인들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바로 이런 솔직한 자기반성이다. 

이재영도 위에서 인용한 글에서 “계급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아니라 자본과의 투쟁 양상만으로 노조운동을 평가하여 경제투쟁 매몰을 고무해온 활동가, 노동단체, 노동학자, 정파들은 노동계급 분열의 방조범이다.”라고 비판하였다. 

물론 노동운동의 정파에는 나름대로 이론 또는 노선이 있었으니 ‘전투적 조합주의’와 ‘실리적 조합주의’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런 노선들은 결국 끊임없이 NL과 PD로 수렴되었다. 그것은 노동운동이 민족민주운동의 범위를 넘어서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은 기대와는 달리 여태까지도 민족민주운동의 영향권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민족민주운동의 시대는 가고 사회민주주의운동의 시대가 오고 있다. 그러므로 노동운동이 민족민주운동 시절의 잔재를 청산하고 현재를 살고 있는 근로대중의 생활로 돌아가서 사회민주주의운동의 시대를 여는 데 앞장서야 한다.

자본주의가 덜 발달하고 민주주의가 정착하지 못하고, 아직 민족이 해방되지 않았거나 독립국가를 만들지 못하고 있거나, 아니면 만들었더라도 아직 자립적이지 않은 그런 나라와 시대의, 쉽게 말해서 후진국의 진보는 민족민주운동이었다. 민주화세력은 자기들이 민족민주운동을 주도하였다고 생각한다. 경험과 감각은 그 방향으로 발달해있고, 자부심은 그것을 밑천으로 하고 있다.

민족주의도 민주주의도 호소력을 잃었다

그러나 민족주의도 민주주의도 이제 별로 호소력이 없다. 왜냐하면 이미 국민들이 느끼기에 민족주의운동의 목표와 민주주의운동의 목표가 달성되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이미 꿩을 잡고 나면 미련 없이 활을 내던지고, 토사(兎死)하고 나면 미련 없이 구팽(狗烹)한다. 그런데 민족민주운동을 한 사람들은 아직도 청춘에 미련이 남아 있고, 좋았던 그 시절을 잊지 못한다. 그 추억을 먹고 산다. 

예를 들면 최근에 이명박 정부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행태를 보이자, 당장 그 의미를 과대평가하여 파쇼 독재의 귀환을 경고하는 민주화세력들이 많다. 그러나 그들이 그런 행동을 통해서 드러내는 것은 바로 자신들이 여전히 후진국형 민족민주운동의 진보라는 사실이다. 그런 시절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것은 어쩌면 자기 자신인지도 모른다. 자신들이 그런 싸움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진보’, 사회민주주의운동은 사회경제적 문제의 해결을 중심 과제로 삼아야 한다. 이른바 민주정부들이 들어선 후에 "더 먹고살기 힘들어졌다"고 느끼는 평범한 국민들의 정서로 돌아가야 한다. 현실을 냉정하게 인정하고 진보는 이제 ‘밥 먹여주는 민주주의’를 해야만 국민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는 것이다. 그 ‘밥 먹여주는 민주주의’가 바로 사회민주주의다. 

그래서 진보는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재구성되기 위해서, 진보는 먼저 해체되어야 한다. 해체되어야 하는 진보는 민족민주운동이었다. 그리고 재구성되어야 하는 진보는 사회민주주의운동이다. 바로 여기에 사회민주주의(SD)가 노동운동의 새로운 조류로서 등장하는 역사적 필연성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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