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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게시판(동시당직선거)

  • [부대표] [이병진 다음선본] 청년 이병진 _ 2탄 진보정당과함께

 

#1
정치에 대한 고민은 한때의 열정으로 삶의 페이지에 남겼다. 이제 미뤄둔 삶을 살아내야 했다. 13년 말부터 지역 선배들로부타 출마 권유를 받았지만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결국 지역의 진보정치를 고민하며 14년 3월, 정의당으로 향했다.

#2
수원 시의원에 출마했다. 당원들과 맨몸으로 골목을 누비며 원없이 정의당을 알렸다. 많은 이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우며 모두가 최선을 다했다. 예상된 패배였지만 쓰지 않은 패배는 없었다. 정의당을 알렸지만 남은 숙제가 더 많있다. 내가 이 자리에 있어야 할 이유는 도 분명해졌다.

#3 
지방선거후 망가진 지역위원회를 다시 세우기 위해 열심히 뛰었다. 
당원들을 붙잡고 울며 설득해갔다.

#4
7.30 보궐선거가 됐다. 영통에 천호선이 출마했다. 
당시 수원은 경기도의 관심지였다. 국회의원 선거구 4개 중 3개가 보궐이었다. 지방선거를 정리할 틈도 없이 천호선 캠프에 합류했다,

#5
출마와 두번의 선거 후 재취업이 막막했다. 선거 후의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 안았다. 겨울을 맞이하기가 두려웠다.

#6
급한 불을 꺼 나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무렵 천대표 비서실에서 일하자는 제안이 왔다. 눈 앞의 삶이 절박했지만 고민을 하며 주변의 조언을 구했다. 그렇게 다시 당으로 들어갔다.

#7
당대표의 비서는 매력적인 일이다. 당의 주요 사안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대표의 임기가 끝난뒤 경기도당으로 갔다.

#8 
중앙당에 남아있으라는 제안도 있었으나 지역활동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 도당의 조직국장, 비서실 업무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실무적이면서도 인간적이었다. 지역조직의 중요성과 재미를 알아가며 청년활동도 활발히 하기 시작했다.

#9
젊은 당직자들과 노동조합에 대한 고민을 나눴다. 노무사 출신 당직자에게 연락해 함께해보자고 제안했다. 드디어 노동조합 초동모임이 열렸다.

#10 
준비모임과 소식지 임시총회를 통해 3월 노동조합이 생겼다. 외부의 비난도 많았다. 애당심 없는 당직자로 비춰질까 신경쓰이기도 했으나 당직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것이 노동의 가치를 강조하는 진보정당이 해야할 첫 번째 일이라 생각했다. 많은 당직들의 노고를 통해 노동조합이 창립했다. 우리는 ‘함께’ 였다.

#11
수원 선대위원장을 맡고 지지를 호소했다. 진보정당에게도 기회를 달라고 우리도 할수있다고 외쳤다.

#12
어차피 정해져있는 대통령 왜 그리 열심히하냐고 작은정당이 뭘하겠냐는 비아냥에도 꿋꿋하게 버텼다. 당원들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양당체제가 깨진 첫 선거 , 많은 일들이 스쳐갔지만 행복했다.

#13
6프로라는 잔인한 결과에도 주저하지않고 또 정의당의 다음을 준비해보려 한다.
3년간 당안에서 느낀 시간과 고민들을 녹여서 다음 정의당이라는 큰 비전으로 경쟁해보려한다.

#14
시간도 재정도 인력도 부족하다. 잘알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의 다음을 위해 내가 만났던 숱한 시민들과 약자들을 위해 정의당은 더 강하게 만들 후보,

#15
감히 나에게 투표해달라 말씀드려본다. 정의당은 할 수 있다. 이병진이 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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