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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게시판(동시당직선거)

  • [부대표] [이병진 다음선본] 청년 이병진 _ 1탄 생애카드뉴스

 

#1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지하 단칸방은 우리 형제를 키웠다.
개와 함께하는 시간은 늘 행복했고 동물을 사랑하는 아이로 자랐다.

#2 잘하는건 혼자 그림을 그리는 것 . 공부를 한번도 해본적이 없는 난 철이없었다.
미대에 진학하고 한계는 금방 찾아왔다.

#3 방황하다 법대를 다시갔지만 그저그런 88만원 세대로 남나 싶었다.

#4 2009년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고 시민 분향소에 들렀다, 거기서 좋은 선배들을 만났고 함께 당을 만들어보지 않겠냐고 했다. 그렇게 나의 정치는 시작됐다.

#5 내가 마주한 정치는 어려웠다. 14년 6월 지방선거에서 수원시의원으로 도전했다. 나의 상대는 어머니가 근무하던 목욕탕의 사장이자 새누리당 3선을 도전하는 거대여당의 후보였다.

#6 어머니의 상사와 벌이는 대결 , 시작 전부터 출발선이 다르다는 패배감은 나를 많이 힘들게 했다. 결과는 낙선 끝나고 나니 막막했다.

#7 저녁에는 대리운전을 하며 투잡을 뛰고 지역에서 진보적인 가치를 어떻게 내세울것이냐를 고민하던 찰나 나에겐 일상이 현실이었다. 퍽퍽했던 개인의 삶, 아무리 호소해도 표로이어지지않은 민심 , 모든게 실화였다.

#8
투잡을 뛰며 먹고살기 바쁜 나에게 비서실에서 일해보지않겠냐는 제안이왔다. 비서실 계약이 끝난후 박원석 위원장의 권유로 경기도당의 조직국장이 되었다. 중앙과는 다른 조직의 소소한 재미들과 중요성을 알아갔다.

#9 “우린 노동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진보정당인데, 왜 노동조합 하나 없을까?”
그러다 중앙과 시도당의 처우 환경 등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당직자들과 활동가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에 의구심이 들었다.

#10 그래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젊은 당직자들을 대상으로 노조의 필요성에 대해 제기하고 당직자들을 만나 호소했다. 당 사정을 잘 알기에 주저했지만 이 또한 당의 장기적 발전에 분명히 기여할거라 생각했다. 2016년 3월 정의당 당직자 노동조합이 출범했다.

#11
지방선거 이후 지역위원회가 망가졌다. 남아있는 사람은 사무국장을 맡은 나 한명이었다. 남겨진 것은 숙제 뿐이었고 무거웠지만 그건 내 짐이기도, 내 의무이기도 했다.

#12 
말단 조직부터 다시 세우는 것 지역청년들이 어떻게 찾아왔고 어떻게 활동할수 있는지 그리고 왜 떠났는지 기본적인 것부터 고민했다. 홀로 남았지민 지역에 현수막을 걸었다. 그렇게 다시 시작해보기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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