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원교육
  • 당비납부
  • 당비영수증
    출력
  • 당비납부내역
    확인

당명 제안·추천 게시판

  • 새로운 당명으로 "활빈당"을 제안합니다.
전 정의당이란 이름을 좋아했습니다. 몇몇 분들은, 당이 지녀야 할 가치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나타내야 할 그 자리에 정의라는, 각자 해석을 달리할 수 있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걸 좋아하지 않으셨지만 전 바로 그 점 때문에 정의당이란 이름을 좋아했습니다. 정당 활동은 결국 다수 대중의 선택을 받아 집권에 성공하지 못하면 현실에서 아무런 변화도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인데, 그 다수 대중은 슬프게도 다른 문제에는 큰 관심이 없는 반면(사실 관심이 없다기 보단, 워낙 여러분 ‘정치’에 속다보니 이제는 지쳐서 기대 자체를 않는 쪽에 가깝겠지요) 북한문제에는 지나치게 과민하게 반응한다는 것이 정치를 바라보는 대중에 대한 저의 인식이었기에,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 일으켜 종북 문제에 발목 잡힐만한 선명성이 없던 그 이름이 ‘진보적 대중정당’의 이상을 실현하겠다 하는 이 당에 참 잘 어울린다 생각했죠. 그러나 저는 이제 그 이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4자 통합 논의 당시 그렇게나 반대했던 당명 변경을 실행한다고 하니 은근히 반가울 정도로요. 이런 저의 태세 전환엔 교만했던 제 인식에 대한 반성이 일단은 작용했습니다. 다양한 요인들이 중첩된 결과겠으나 ‘새누리당 개헌선 저지가 실현 가능한 현실적인 목표’란 얘기까지 나오던 지난 총선에서 여소야대의 국면이 국민의 손으로 만들어 진 것을 봤으니 그럴 수 밖에요. 그러나 그보다 뼈저리게 제가 틀렸다는 것을 알려준 건, 최근 메갈리아 사태로 휘청거리는 당의 모습이었습니다. 당을 그만큼 휘청거리게 만들고도, 아직까지도 당게에 표출되고 있는 당원들의 분노였습니다. 그건 제가 약 2년간 당게에서 봐왔던 다른 분노와는 결이 다른 것 이었습니다. 그간의 분노가 ‘답답함’에 가까웠다면 현재의 저 분노는 ‘배신감’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배신감은 믿음이 있어야 성립됩니다. 저들은 무엇을 어떻게 믿었기에 저리 큰 배신감을 느낀걸까요. 아마 ‘정의’였을 겁니다. 정부와 여타 정당을 비판하며 우리는 다르다고, 믿으라고 설득하던 그 ‘정의’였을겁니다. 문제는 앞서 적었듯, ‘정의’라는 단어가 각자 해석을 달리 할 수 있는 것이기에, 정부와 여타 정당, 그리고 현실에 대해 당과 비슷한 비판 의식을 가지고 있어 입당을 하였다해도, 그렇게 입당한 당원들이 바라던 ‘정의’의 모습과 당이 구현하고 싶어하던 ‘정의’의 모습이 달랐던 거죠. ‘메갈리아’라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닿고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자 몇몇 당원들은 저토록 분노할 만큼 배신감을 느낀 것이고요. 물론 단지 ‘이상의 차이’에만 배신감을 느낀 건 아니었을 겁니다. ‘당원과 중앙당간의 소통창구’라기보단 ‘중앙당의 일방적인 홍보창구’처럼 운영되는 당게의 모습은 박근혜 정부의 불통을 떠올릴만 한 것이었고, 이름있는 이들 몇의 명령으로, 혹은 내 의견은 대의하지 않는 대의원들로 퉁쳐버리는 당내 의사 결정 방식은 새누리당과 민주당, 국민의 당의 ‘형님 정치’를 떠올릴 만한 것이었으니까요. 그러나 그런 과정의 문제를 차치하고 ‘그래서 너는 친메갈이냐 반메갈이냐’까지 떨어져버린 이 토론의 수준에 맞춰 현재 사태에 관한 제 입장을 밝히자면, 전 현 지도부의 행보를 지지하는 편에 가깝습니다. ‘성평등주의’ 정도로도 충분할 것을 굳이 ‘여성주의’라는 네이밍을 고수해 이 기이한 성대결에 기름을 붓는 이유까지는 모르겠으나, 극단적인 소수의 의견을 ‘메갈리아’ 전체의 의견인 것 마냥 부풀려, 여성들이 그런 커뮤니티에 모이게 된 원인에 대해 고민해 보자는 이들의 의견마저 그런 극단적인 언행을 지지하는 것 처럼 호도하는 건, 살면서 만난 ‘끔찍한 남성’들의 기억을 이 땅 위 모든 남성들의 프로토 타입인 것 마냥 호도해 ‘모든 남성’을 대상으로 극단적인 언행을 일삼는 일부 메갈리언들의 행동과 하등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이 논쟁에 적극적으로 끼어들지 않았던 이유는, 그렇지 않아도 넘쳐나던 수많은 말 사이에 고작 저의 말 정도가 더해진다 한들 무언가 바뀔 거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토론’ 혹은 ‘논쟁’ 자체에 대해 회의감을 느낀 건 아닙니다. 다만 ‘이런 류의’ 토론 혹은 논쟁이 무의미하단 걸 그간 당게에서 벌어졌던 여러 번의 다른 논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무신론자와 크리스천이 ‘예수가 있는가’로 논쟁을 한다고 결론이 날까요? 저와 제 아버지가 ‘박정희 전 대통령’에대해 논쟁 한다고 결론이 날까요? 지리한 싸움에 지친 누군가가 먼저 말하기를 포기하고, 체력이 좋거나 시간적 여유가 많은 덕에 그 논쟁을 포기하지 않은 이가 ‘거봐, 내 말이 맞지’라며 흡족해 하는 식으로, 대신 둘의 사이는 이전보다 악화된 상태로 대화가 끝날 수는 있어도 진정한 의미의 결론은 나지 않을 겁니다. 제가 깨달은 건 그것입니다. 현실적, 물리적인 변화를 목적으로 구체적인 실체나 수치를 가지고 따지는 것이 아닌 논쟁은, 그렇게 서로의 믿음을 서로에게 강요하는 식으로 밖에 진행될 수 없으며, 종국에 어느 한 쪽의 ‘정신승리’ 이상 가는 무언가를 얻기도 힘들다는 것이죠. 그리고 위에 말씀드렸듯 저는 그것을 당게에서 진행된 여러번의 논쟁에 참여하며 배웠습니다. 이상하죠. 완전히 같을 수는 없어도 어쨌든 비슷한 세상의 실현을 바라며 모였을 당원들 간의 논쟁에서 저는 왜 그런 것을 배우게 됐을까요. 오랜 고민 끝에, 그것은 감정이 격해져 생각이 다른 이들의 탈당을 종용하는 이들의 논리처럼, 애초에 이 당에 있으면 안 됐을 이들이 당에 들어왔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우리가 ‘정의’라는 단어 아래 모였기 때문 아닐까 하는 결론에 닿았습니다. 기쁠 날 보단 속 터질 날이 훨씬 많을 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소수 진보정당에 몸 담고 있는 이들의 ‘선의’는 누구의 것이든 소중한 것이지만, 단지 누군가에겐 절차적으로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는 것이 ‘정의’일 수 있고, 누군가에겐 절차적 민주주의가 조금은 무시되더라도 당장의 현실이 조금이라도 빨리 변화하는 것이 ‘정의’일 수 있는 것이기에, ‘정의’라는 단어로 묶인 우리는 그 좋은 선의와 에너지를 서로의 ‘정의’를 비교하는 데 불필요하게 소모해 갔던 것 아닐까요 제가 ‘활빈당’이라는, 어찌보면 장난스럽게 여기실 수 있는 당명을 새로운 당명으로 제안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람이기에 조금씩 다를 수 있는 당원들 각자의 정치적 옳음을 굳이 대결하게 만들지도 않으면서,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북한과 엮어보려는 이들로부터 쓸 데 없이 발목 잡힐 여지도 적을 뿐더러, ’사민주의’도 ‘정의로운 세상’도 ‘활빈’의 맥락을 벗어나지 않기에, 당원들이 ‘정의’의 깃발 아래 서야겠다 처음 마음 먹었을 때의 그 ‘선의’를 오롯이 담기에도 마땅하니까요. 또한 슬픈 일이지만, 시기적으로도 ‘활빈’이라는, 경제적인 문제는 무엇보다도 시급한 일이기도 합니다. 현재도 시한폭탄에 다름 없는 가계 부채는 꾸준히 늘어만 가고 있고, 청년 실업, 노인 빈곤 문제 역시 심각한 수준이며, 조선,해운업을 비롯한 각종 산업이 흔들리며 수많은 노동자들 역시 각종 해고의 위협에 직면하고 있는데 우리의 내수 경제는 이들이 노동 시장으로 튕겨져 나왔을 때 양질의 일자리로 그들을 받칠 만큼의 규모를 구축하지 못하고 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어 먹고 살아야 하는 이들은 이미 포화 상태인 자영업 시장에 뛰어들거나, 야근, 주말 수당 없는 야근, 주말 근무를 참아가며, 혹은 최저임금마저 받지 못하면서, 혹은 위험을 떠안은 외주 업체에서 말그대로 생사의 기로를 넘나들며 생계를 이어가는 것 외의 선택을 하기 힘든 상황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 먹거리 문제에 별다른 대책이 없다는 사실은 ‘산 넘어 산’이라는 말만 떠오르게 하고요. 그리고, 이런 현실에 직면해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대중’입니다. 최근, 메갈리아 논란과 관련해 ‘오유’가 ‘대중’ 표심의 척도인 것 처럼 여기고, ‘오유’가 반감을 가지는 메갈리아에 확실히 선을 긋지 않는 당의 행태에 ‘진보적 대중정당이길 포기했느냐’는 식으로 따지던 분들의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만, 오유가 우리 당에 우호적이던 지난 총선에서도 우리의 득표육은 결국 7% 언저리였습니다. 오유에서는 역적 취급 받았으나 꿋꿋하게 ’새정치’를 외치던 국민의 당은 아시다시피 돌풍을 일으켰고요. 그 사실은, ‘단순히 한 커뮤니티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과 ‘진보적 대중정당’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 사이에 큰 상관 관계가 없다는 말 아닐까요? 경험으로 미뤄보건데, 그렇다고해서 너와 나의 ‘정의’를 비교하는 데 과하게 사로 잡혀 서로의 선의와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드는 것 역시 우리가 가야할 길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으로 서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일까요? 당연한 우리는 우리가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할 것 입니다. ‘특정 커뮤니티의 의견’이 아닌 고된 하루살이를 견디느라 어떤 커뮤니티에 속할 여유마저 없는 이들의 말을 대변하고, 당원들간 정치적 옳음의 차이를 비교하고 누가 더 이념적으로 투철한가를 따질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재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마주해야 할 미래의 선택 중 무엇이 진정으로 우리의 ‘생활’을 나아지게 할지를 비교하고 가장 나은 대안을 제시하여, 대중의 선택을 받고, 대중의 곁에 서야 할 것 입니다. 그것이 그동안 최선을 다했지만 지지부진 했던, ‘진보적 대중정당’의 이상을 실현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활빈당’을 우리의 새 당명으로 제안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여댓글 (4)
  • 정상인


    2016.09.12 19:36:16
    경기 시흥시지역위원회 소속 당원인 정상인 위 후보를 추천합니다.
    추천합니다
  • 우재훈


    2016.09.12 21:39:36
    서울 서초구지역위원회 소속 당원인 우재훈 위 후보를 추천합니다.

    적극 추천드립니다
  • 윤준식


    2016.09.13 13:58:08
    서울 양천구지역위원회 소속 당원인 윤준식 위 후보를 추천합니다.

    '정의'라는 개념에 대한 제안자의 생각에 공감합니다
  • 채희승


    2016.09.21 15:33:04
    대전 유성구지역위원회 소속 당원인 채희승 위 후보를 추천합니다.
    활빈당, 이름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