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평] 전국여성위, 저항하지 않으면 성폭력이 아니다?

[논평] 저항하지 않으면 성폭력이 아니다?

대한민국 법원은 성폭력 사건을 근절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가?

 

그 어떤 범죄도 피해자에게 충분히 저항했는지를 물어 가해자의 처벌유무를 판단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유독 성폭력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적극적 거부의사가 없었으므로 해당 행위에 대해 ‘동의’한 것으로 간주되곤 한다. 법원은 이와 같은 해석을 근거로 강제추행에 대해 잇달아 ‘무죄’를 선고하여 여성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20일 항소심 재판부에서 무죄로 판결된 사건을 보면, 여성에 대한 폭행과 협박이 없었고 그 여성이 잠든 척을 하며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피의자를 유사강간 내지 강제추행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또한 속옷 차림으로 여직원에게 신체적 접촉을 요구했던 사장은 직접적 폭행과 협박이 없었고, 충분히 거절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그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심 실형과 달리 대법원에서 무죄를 판결하였다.

 

그러나 적극적 거절 행위가 없었다고 해서 그것을 해당 행위에 대한 ‘동의’로 해석한다면 성폭력이 왜 일어나는가에 대한 판사들의 몰이해를 드러내는 것일뿐이다. 대체로 성폭력은 위계에 의해 거부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벌어진다. 한국여성노동자회 평등의 전화 2013년도 상담사례집에 의하면 직장내 성희롱은 20대, 여성, 비정규직일수록 피해 사례가 가장 많은데, 이는 근속연수가 짧고, 지위가 낮아 직장에서의 불이익을 받을까봐 부당 행위에 대한 대처가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위 사건의 피해자의 남자친구가 피의자의 부하직원이었다는 점, 피해자가 입사한지 일주일 밖에 안 된 신입직원이었다는 점은 성폭력적 상황에서 적극적 대처가 어려운 사회적 관계들을 말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피해자에게 저항을 했는지, 안했는지에 따라 범죄유무가 성립된다는 것은 모든 인간이 동등한 위치에 있는 ‘개인’이라는 법의 잘못된 전제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그와 같은 ‘개인’은 없으며, 성폭력은 위계와 권력의 작동 속에서 발생한다는 측면으로 접근해야 한다.

 

강제추행사건들이 상급심에만 가면 무죄로 판결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되고 있다. 성폭력 신고율 4%, 신고해봤자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불신은 이와 같은 낮은 기소율에서 비롯된다. 이렇게 되면 범죄로서 해서는 안 되는 행위로 성폭력이 인식되기보다는 일상에 만연한 ‘자연스러운’ 행위로 간주된다.

 

성폭력이 근절되기 위해서는 법적 판결에 관여하는 사람들의 성인지적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성폭력을 사전에 예방하고 범죄행위를 근절할 수 있도록 엄중한 판결을 할 것을 요구한다.

 

2015년 5월 29일

정의당 전국여성위원회(위원장 류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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