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도자료] 23명의 죽음 앞에서도 기업 책임을 깎아준 법원, 노동자 생명보호 책무 외면했다 [법률위원회]
[성명] 23명의 죽음 앞에서도 기업 책임을 깎아준 법원, 노동자 생명보호 책무 외면했다

- 현실 재난 특성 외면하고 비상구 설치 의무 부정한 아리셀 2심 재판부, “노동자들이 왜 탈출하지 못했는지” 질문에는 답하지 못하고 사용자 책임만 면해줘
- 대피교육·훈련 부재 인정하면서도 경영진이 안전 외면하지 않았다고 평가한 재판부, 참사 구조적 책임 축소하고 사용자 책임 경감하는 억지 논리 불과해
- 참사의 무게에 걸맞은 책임 묻지 않은 2심 판결, 사용자에게 빠져나갈 여지 허용해
- 23명의 죽음 앞에서 내려진 봐주기 판결, 유가족들에게 또 한 번 지울 수 없는 상처 남겨
- 대법원은 “노동자 생명은 결코 흥정될 수 없다”는 원칙 분명히 선언해야


수원고등법원 제1형사부는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항소심에서 원심이 선고한 중형을 대폭 감경하고, 피난·대피와 직결되는 핵심 안전조치 위반 부분에 대하여 무죄 판단을 내렸다. 23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고 9명이 중경상을 입은 대형 참사 앞에서, 법원은 반복된 위험 신호와 구조적 안전관리 실패보다 기업 책임의 경감이 더 중요하다고 판결한 것이다.

재판부는 이번 사고가 예견되었음을 인정하였다. 전지 제조상 결함으로 인한 폭발 가능성, 사고 이틀 전 발생한 선행 폭발사고, 열 감지기 미설치, 발열 전지에 대한 후속공정 지속 등은 모두 중대한 경고 신호였다. 이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위험이 방치된 결과 참사가 발생했음을 뜻한다. 그런데 법원은 참사의 원인을 인정하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법적 책임을 축소하였다.

재판부는 안전보건규칙 제17조가 단지 건축물 자체에 비상구를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 각 층별로 별도의 비상구를 두도록 명시하고 있지 않다는 이유를 들면서 비상구 설치 의무를 부인하였다. 그러나 위험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장에서 화재와 폭발은 특정 작업 구역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연기와 열기, 유독가스는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확산되고, 그 순간 각 층의 노동자가 즉시 이용 가능한 독립적인 탈출구는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위험물질 취급 작업장이 아니라는 이유로 해당 층의 비상구 설치 의무를 부정한 것이다. 이는 현실의 재난 특성을 외면한 채 공간을 인위적으로 분절하여 책임을 제한한 판단이다. 일반적인 다중이용 건축물에서도 층별 피난시설의 필요성이 당연시되는데, 오히려 고위험 사업장에 더 완화된 기준을 적용한 셈이다.

비상통로 유지의무에 관한 판단도 납득하기 어렵다. 재판부는 산업안전보건규칙 등에 비상통로에 대한 아무런 정의 규정이 없어 그 개념을 확정하기 어렵고, 화재가 발생했을 당시 모든 문이 자동으로 개방되어 통행이 가능하였으며, 대피 경로로 이용할 수 있는 통로가 막혀 있거나 좁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비상통로는 별도의 정의 조항이 있어야만 성립하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다. 비상통로가 화재·폭발 등 비상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신속하고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확보된 통로라는 점은 일반 상식, 일반 법감정에 비추어도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개념이다. 개념이 불명확하다는 이유를 내세워 책임을 부정하는 것은 안전 규범의 취지를 무너뜨리는 해석이다.

더구나 이러한 판단은 참사의 결과와도 모순된다. 실제로 이 사건에서는 노동자들이 화재와 폭발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비상구를 신속히 찾지 못하거나 대피 경로를 확보하지 못한 이유로 작업장 내부에 고립되었고, 그 결과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참사 당시의 공포와 혼란, 급속한 연기 확산, 출구 접근의 곤란이라는 현실은 외면한 채, 사후적으로 “문이 열려 있었다”, “통행은 가능했다”는 형식적 사정만을 근거로 사용자의 책임을 덜어주었다. 재판부는 노동자들이 왜 탈출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답하지 못한 채, 사용자의 책임을 면하게 해주기 위한 논리만을 남겼다.

양형 판단에서도 이러한 재판부의 참담한 태도가 반복되었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안전보건교육과 소방훈련, 화재 대피교육의 부족으로 우왕좌왕하다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인정하였다. 이는 사업장이 노동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가장 기본적인 안전조치조차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동시에 피고인들이 안전을 위한 조치를 완전히 방치하였다고 보이지는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대피교육과 훈련의 부재로 다수 노동자가 탈출 기회를 잃어 사망하였다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안전을 외면한 것은 아니라고 평가하는 것은 스스로 인정한 사실관계와 배치되는 자기모순이다. 결국 참사의 구조적 책임을 축소하고 사용자의 책임을 경감시키기 위한 억지 논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은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비용과 효율보다 앞세우라는 사회적 기준이며, 그 기준을 무너뜨린 자에게 합당한 법적 책임을 지우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이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참사의 무게에 걸맞은 책임을 사용자에게 묻기보다 그 부담을 덜어주었고, 결과적으로 사용자에게 또다시 빠져나갈 여지를 허용하였다. 

23명의 죽음 앞에서 내려진 이번 판결은 유가족들에게 또 한 번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검찰은 더 늦기 전에 즉시 상고하여 참사의 책임을 가볍게 만든 이번 판결을 바로잡아야 한다. 대법원 또한 중대재해 사건에서 노동자의 생명은 결코 흥정되거나 할인될 수 없으며, 생명 보호의 원칙은 어떠한 경우에도 후퇴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선언해야 한다. 

우리는 억울하게 가족을 잃고도 또 한 번 상처받은 유가족들의 곁에서, 아리셀 참사의 책임이 끝까지 규명되고 다시는 같은 죽음이 반복되지 않는 날까지 함께 싸울 것이다.

2026년 4월 23일
정의당 법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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