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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비상구

  • [14화] 더는 두고 볼 수 없는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
    재설계 필요... 합의제 행정기관 \'적용제외심의위원회\' 설치하자









 근로기준법 제63조는 특정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에게 근로시간, 휴게, 휴일 규정을 적용제외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적용제외 제도는 악용될 여지가 상당히 높습니다. (Google Imagen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박상빈

[장면 1] 편의점 야간근무를 하는 A씨(72세)는 1주일에 6일, 하루에 16시간씩 일한다. 매일 오후 4시에 출근하여 다음날 아침 8시에 교대한다. 1주일이면 96시간을 일하고, 지난달에는 총 416시간을 일했다. 근무시간 도중 편의점은 문을 닫고 쉴 수 없어 휴게시간 없이 밤새 카운터에 서 있는다. 고용주는 A씨가 근무하는 지역 인근에 편의점을 같은 방식으로 4개 더 운영하고 있다. 가끔 다른 지점에 가서 밤샘 근무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A씨는 고용주에게 "편의점이 5인 미만 사업장이어서 기본급만 지급된다"고 전해들었다. A씨는 가끔 입고 상품을 정리하다가 머리가 핑 돌 때도 있지만, 그래도 이 나이에 이렇게 일할 수 있는 걸 감사하게 생각하며 일하고 있다.

[장면 2] 경기도 외곽지역 깻잎 농장에서 일하는 캄보디아 출신 B씨(32세)는 새벽 5시에 일어난다. 6시까지 비닐하우스에 나가 깻잎을 따기 시작한다. 오전 내내 일하고 12시가 되면 농장주가 밥통과 반찬통을 가져온다. 뱃속에 밥을 밀어넣고 소화시킬 새도 없이 농장주가 옆 비닐하우스로 이끈다. 다시 깻잎을 따기 시작한다. 한여름의 땡볕 아래 비닐하우스는 45도를 육박한다. 그렇게 저녁 6시까지 쪼그려 앉아 서너개의 비닐하우스를 돌아다니며 깻잎을 따고 포장하고 나면 하루 일과가 끝난다. B씨는 그렇게 1주일에 6일을 일한다.

 
 
[장면 3] 50인 미만 기업에서 팀장으로 근무하는 C씨(42세)는 작년에 승진하면서 근로계약서를 새로 쓰게 되었다. 평소에도 워낙 야근이 많아서 근로계약서에는 고정연장수당 52시간분이 잡혀있었는데, 팀장 계약서는 조금 달랐다. 팀장 직책수당 10만 원과 '책임수당'이라는 이름의 수당이 40만 원가량 포함되어 있었다. 월급 총액은 팀장수당 때문인지 10만 원 인상되었다. 팀장이 되고 나니 야근은 더 많아졌다. 계산해 보니 지난달에 연장근로 및 휴일근로를 80시간 이상 한 것 같았다. 그러나 별도의 연장수당 정산은 되지 않았다. 인사팀에 물어보니 팀장은 '관리·감독 및 기밀취급 근로자'여서 그렇다는 대답이 당연하다는 듯 돌아왔다.

서론 : 예외인가, 법의 허점인가

근로기준법은 노동자 보호의 최소한의 기준을 정한 법이다. 그러나 이 최소한의 기준조차 적용되지 않는 '사각지대', '그림자'는 여전히 존재한다. 근로기준법의 '적용제외' 제도 때문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상시 5명 미만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에 대해 연장·야간·휴일근로 가산수당, 연차 유급휴가, 해고의 제한, 직장 내 괴롭힘 금지 등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와 직결되는 핵심적인 조항들의 적용을 배제하고 있다. 또한 사업장의 규모와 무관하게 농림·축산·수산 사업(제63조 제1호 및 제2호), 감시 또는 단속적으로 근로에 종사하는 자(제63조 제3호), 관리·감독 업무 또는 기밀을 취급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자(제63조 제4호)에 대해서는 근로시간, 휴게, 휴일 등 기본적인 근로조건에 관한 규정을 적용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예외 규정들은 과거 산업화 시대의 특수성과 영세 사업주의 경영 부담을 덜어주려는 정책적 고려에서, 혹은 농업 노동 등 특정 노동 형태의 특징을 고려한다는 취지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노동 환경이 급변하고 사업 형태가 다양해진 오늘날, 이처럼 형식적이고 일괄적인 적용제외 방식은 제도의 본래 목적을 상실하고 수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노동자의 기본 권리를 침해하는 거대한 법의 사각지대이자 법의 허점(loophole)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지난 정권에서부터 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논의가 이어져오고 있다.

 
 

적용 제외 제도가 낳은 기형적 풍경

앞서 살펴본 장면들은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 제도가 낳은 기형적 풍경의 단면이다.

장면 1의 A씨는 실질적으로 동일한 사업주 아래에서 일하고 있지만, 사업장이 여러 개로 나뉘어 있다는 이유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라는 굴레에 갇혔다. 사용자는 법의 허점을 이용해 '사업장 쪼개기'라는 명백한 탈법 행위를 저지르며 A씨의 연장근로시간 제한을 위반하고, A씨의 연장·야간·휴일수당, 연차수당을 박탈하고 있다.

장면 2의 B씨는 '농업 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받는 수준의 장시간 노동에 아무런 법적 보호 없이 내몰려 있다. 특히 B씨와 같은 이주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에도 불구하고 근로시간 제한, 휴게시간 보장, 유급휴일 보장이 되지 않다 보니 더 적게 일하면서도 돈을 더 받을 수 있는 제조업 일자리로의 이탈 유인 동기가 된다. 그러나 고용허가제는 허가받은 업종 이외의 취업은 금지하고 있기에, B씨는 불법 사업장 이탈 및 미등록 이주노동의 유혹에 이끌리게 된다. 국가가 합법적으로 입국한 노동자를 불법 지대로 등떠밀고 있는 모순적인 상황이다.

장면 3의 C씨는 '관리·감독자'라는 이름뿐인 직책 아래 연장근로수당 및 휴일근로수당을 박탈당했다. 실질적인 노동자성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기업은 이 제도를 인건비 절감의 편리한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 이는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으려는 사용자의 의도와 별다른 감시장치 없는 적용제외 제대가 만들어낸 기형적인 합작품이다.

이처럼 형식적인 기준에 따른 일괄적인 적용제외는 현장에서 수많은 탈법과 편법을 낳는다.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날림으로 승인된 감시·단속 근로자, 이름뿐인 관리·감독자는 우리 사회가 시급히 마주하고 해결해야 할 적용제외 제도의 민낯이다.

분리될 수 없는 과제: 5인 미만과 제63조 폐지의 동시 추진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담론은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사업장 규모가 작다는 이유만으로 노동자의 기본권이 경시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5인 미만 사업장 적용제외 문제의 해결은 반드시 근로기준법 제63조 폐지와 동시에 그리고 같은 틀 안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이 두 제도는 같은 뿌리에서 자라난 두 개의 가지다.

첫째, 두 제도는 '정상적인 노동법 적용이 어렵다'는 과거의 낡은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영세하여 법 준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 농림어업이나 감시·단속 업무는 근로시간 측정이 어렵다는 것이 그 논리였다.

하지만 이는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일 뿐, 노동자의 기본권을 제약하는 합리적인 근거가 될 수 없다. 현대적인 노무관리 기법과 IT 기술의 발달로 근로시간 측정은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고, 기술의 발달로 농림어업 노동에서 날씨의 영향은 한정적으로 축소되어 균질하고 평균적인 노동환경이 가능해졌다. 영세 사업장의 경영상의 어려움은 노동자의 권리를 희생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사회보험료 지원, 세제 혜택 등 국가의 정책적 지원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둘째, 두 제도는 가장 취약한 계층의 노동자를 법의 보호망 밖으로 밀어낸다는 점에서 동일한 결과를 낳는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농어촌의 고령·이주노동자, 경비·청소 노동자 등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목소리가 작고 교섭력이 약한 집단이다. 이들에게서 근로기준법이라는 최소한의 방어막마저 걷어가는 것은 이들을 무한정한 착취의 위험 속으로 방치하는 것과 다름없다.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적용제외를 폐지하고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이와 같은 행정편의주의에 의해 희생당한 노동자의 인권을 복원하고자 하는 취지이다. 그렇다면 근로기준법 제63조 역시 같은 논리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함께 폐지되어야 한다.


 한여름의 폭염 속 비닐하우스에서도 농업 이주노동자는 근로시간 제한 및 휴게의 보장 없이 근무하여야 합니다. (Google Imagen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박상빈

대안: 합의제 행정기관 '적용제외심의위원회'의 설치

물론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모든 예외 조항을 없애고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할 경우, 정말로 영세하여 법 준수 능력이 없는 사업주에게는 과도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직원을 고용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소득이나 생활 수준은 직원보다 더 열악한 한계 상황의 사업주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들에게 아무런 완충장치 없이 근로기준법의 모든 책임을 일괄적으로 부과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의 가혹한 처사가 될 수 있으며, 이는 고용 감소나 사업 폐쇄로 이어져 결국 노동자와 사용자 모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그렇다면 낡고 형식적인 '일괄 적용제외'의 틀을 과감히 부수되, 보편적 권리와 진짜 영세 사업주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은 무엇일까? 그 해답은 실질적인 심사를 통해 보호가 필요한 사업장을 선별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찾을 수 있다.

필자는 각 지방고용노동지청에 독립적인 합의제 행정기관으로서 '적용제외심의위원회(가칭)'를 설치하는 것을 제안한다.

이 위원회는 노동법, 회계, 경영, 인권 등 각 분야의 외부 전문가들(교수, 변호사, 노무사, 회계사 등)과 함께 노동자 대표 및 소상공인 대표가 참여하여 전문성과 공정성, 그리고 사회적 대화의 가치를 담보해 근로기준법의 적용제외 여부 및 적용제외 범위를 결정하는 기관이다.

사업주가 근로기준법의 일부 조항(예: 근로시간, 휴게, 휴일 및 가산수당, 연차휴가 등)에 대한 적용 유예를 신청하면, 위원회는 서류 심사와 현장 실사를 통해 다음과 같은 실질적인 기준들을 종합적으로 심의하여 그 여부를 결정해야 할 수 있을 것이다.

* 객관적 경영 지표: 사업장의 총 근로자 수, 최근 3년간의 매출 규모, 영업이익률, 부채 비율, 동종업계 평균과의 비교 등
* 사업주의 생계 수준: 사업주의 소득 및 재산 상태, 부양가족, 질병 여부 등 개인적인 상황
* 업무의 실질적 내용: 근로자가 실제로 수행하는 업무의 강도, 난이도, 위험성, 자율성, 감정노동의 수준 등
* 근무 형태의 특수성: 근로시간 산정이 객관적으로 어려운 재량적 업무인지, 업무 시간의 대부분이 실질적으로 자유로운 이용이 보장된 대기시간으로 구성되는지 여부
* 근로자에 대한 보상 정도: 근로자에 대한 금전적 보상(임금) 수준이 불이익하지 않은지 여부, 최소한의 휴게시간과 휴일이 보장되는지 여부

이러한 다면적이고 입체적인 심의를 통해 "근로기준법의 특정 조항을 전면 적용할 경우 사업의 존속이 현저히 위태롭거나, 노동자가 수행하는 업무의 특수성이 특정 조항의 적용을 배제할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서만 한시적인 적용제외를 승인하는 것이다.

이때 두 가지 중요한 민주적 통제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첫째, 적용제외 승인에는 2~3년의 유효기간을 두어, 기간 만료 시 사업주는 위원회의 재심사를 통해 갱신 여부를 결정받도록 해야 한다.

둘째, 해당 사업장에서 근무 중인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 또는 노동조합의 신청이 있을 경우 언제든지 위원회가 재심의를 열어 적용제외 승인을 중지하거나 변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제도의 실제 당사자인 노동자의 목소리를 절차에 반영하는 핵심적인 장치로서, 제도가 사용자의 이익만을 위해 남용되는 것을 방지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될 것이다.


결론: 합리적 예외를 통해 보편적 원칙을 완성하다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고 모든 노동자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은 건강한 사회의 근간이다. 우리가 제안하는 '적용제외심의위원회' 제도는 이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실질적이고 정교하게 완성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이다.

형식적인 잣대로 무 자르듯 예외의 섬을 만드는 낡은 방식을 버리고, 전문가들의 심도 있는 논의와 민주적 참여를 통해 꼭 필요한 곳에, 꼭 필요한 만큼의 합리적 예외를 허용하는 것. 이것이 바로 법의 허점을 막고, 가장 취약한 노동자와 진짜 영세한 사업주 모두를 보호하며, 우리 사회의 노동 정의를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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