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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비상구

  • [13화] 노란봉투법, 싸우는 사람들을 위한 시작
    중요한 것은 이 법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점

▲노란봉투법 환영하는 노동계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노란봉투법)'이 통과되자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과 조합원, 진보당 당원들이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4일 국회를 통과한 '노란봉투법' 개정안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와 제3조를 고친 법입니다. 사용자 범위를 넓히고,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의 노조 활동을 인정하며, 정당한 노조 활동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당장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일 수 있지만, 노동 현장과 일터가 더 건강하게 바뀔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개정에서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의 권리 확장입니다. 그동안 배달 기사, 대리운전 기사, 학습지 교사, 플랫폼 앱을 통해 일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은 법적으로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해 노조를 만들거나 교섭할 수 없었습니다. "근로자가 아니니 노조도 아니다"라는 이유로 최소한의 목소리조차 내기 어려웠습니다. 노조법상 근로성 인정 여부를 두고 노동위원회와 법원을 오가는 지난한 절차를 거쳐야 했고, 이는 사용자가 교섭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번 개정에서 근로자 추정조항이 반영되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쉽습니다. 이 조항이 포함되었다면 종속적 형태로 일하면서도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수많은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문제가 어느정도 해결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번 개정으로 "노동자가 아니어도 조합원이 될 수 있다"는 점이 명문화되면서,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조 설립과 가입이 가능해졌고 교섭의 문턱이 낮아졌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또 다른 중요한 변화는 원청의 사용자성이 법으로 명시된 점입니다. 그동안 원청은 실질적으로 채용·해고, 업무 지시, 임금 구조 등 핵심적인 의사결정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적으로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손쉽게 교섭을 회피해왔습니다. 이로 인해 하청 노동자들은 원청과의 교섭을 요구하기 위해 길고 지난한 쟁송 절차를 밟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노조의 조직력은 약화되고 교섭력은 크게 제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원청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노동 조건을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지 개별 사안마다 판단을 거쳐야 하는 한계는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으로 원청의 사용자성이 명시된 만큼, 실제 권한을 가진 주체와 직접 교섭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고, 노동 현장에서 힘의 불균형을 바로잡는 중요한 시작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노란봉투법 개정의 중요한 의의 중 하나는 쟁의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여 노동자의 단체행동권 보장을 실질화했다는 점입니다. 종전에는 사용자가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 손해에 대해서만 노조나 노동자에게 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었지만, 개정법은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만 규정되어 있던 손해배상 규정을 '그 밖의 노동조합 활동'까지 확대하고, 쟁의행위의 목적 범위를 기존의 임금·근로조건 등에서 '경영진의 주요 결정'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확대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기업이 손배·가압류를 남발하여 노조 활동을 위축시키던 관행을 제도적으로 차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2008년 쌍용자동차 파업처럼 정리해고 반대를 위한 투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위법한 쟁의행위로 몰아 손배·가압류로 노동자들을 옭아매던 사례는 적어도 막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노란봉투법은 결국 싸우는 사람들을 위한 법입니다. 부당함을 참지 못해 목소리를 낸 사람들, 파업과 농성의 최전선에 섰던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방패를 쥐여주는 법입니다. 그동안 시민들은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을 돕기 위해 '노란 봉투'를 모아 건넸습니다. 이제 그 연대의 상징이 법과 제도의 이름으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이 법 하나로 모든 갈등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용자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지, 경영상 결정을 둘러싼 쟁의가 어디까지 허용될지, 앞으로 수많은 판례와 해석이 필요하고, 또 싸우는 노동자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법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점입니다. 눈에 띄는 변화는 당장 크지 않을 수 있지만, 노동 현장은 분명 달라질 것입니다.

* 위 기고문은 오마이뉴스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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