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0 상황 - 단장면 동화전 마을에서 96번 철탑 밑에 황토방 농성지를 지지방문하기 위한 행렬이 끊이지 않습니다. 4백여명이 3시 30분 경 1차로 올라갔고 방금 4시쯤 대구에서 오신 분들이 경찰의 저지에 막혀 실랑이를 하고 있습니다. 헬기 한 대가 주변 상공을 선회하고 있다가 지금은 안 보이네요. ▲위로 1,2,3
아래는 30일 밤 7시부터 밀양역에서 진행된 '우리가 밀양이다' 콘서트랍니다. 정치적이지 않았고 투쟁일변도이지도 않았던 그저 소박한 바램을 담아 함께 울고 웃었던 두 시간여 동안의 기록과 콘서트 후 숙소인 동화전 마을 회관에서 ▼ 4,5,6,7,8,9
▲ 정의당 대구시당 여성 당원들
밀양에서 첫날밤 ▲
나는 오늘 대모당 당원이었다. 페북에서 보든 대모당 당수도 만났다. 나는 오늘 녹색당 당원이었다. 페북에서 보든 녹색당 활동가 이혜복 님도 만났다. 오늘 밀양은 녹색활동가들의 만남의 장이었고 해방구였다.
여인 세 명은 우리 정의당 당원분들이다. 만나서 무지 반가웠다. 내가 좀 떠벌떠벌 했더니 쫓겨났다. ㅠㅠ
모닥불 피워놓고 인사도 나누고 막걸리도 얻어 마시고 라면도 츠묵 했는데 잘 곳이 마땅치 않아서 아니 사실 어디의 금속노조분들이랑 같이 자라는데 그냥 차에서 별을 보며 자기로 했다. 어떤 분이 천체망원경을 가지고 오셔서 덕분에 생에 첨으로 천체망원경으로 행성을 보았다. 목성이다. 갈릴레오가 보았던 네 개의 위성도 볼 수 있었고 노랗게 보이는 목성의 두 줄의 띠도 보았다. 대적반은 안 보이네요?라고 하니 몇 해 전부터 안 보인다고 한다. 쌍안경으로 산개성단도 보았다. ㅜㅠ
아무튼 첫날밤은 군중 속에서 쓸쓸히 보내게 되었다. 끝~
밀양에서 아침. 12.1 ▼
밥 츠묵하고 걸개에 낙서를 하고 마을을 돌며 지신밟기?를 철탑이 뽑아지길 기원하며 풍물과 함께 하다가 보니 산으로 올라가는 곳곳을 경찰들이 지키고 서 있다. 채증 문제로 한바탕 실랑이를 벌였다. 젊은 여성의 사자후에 경찰이 기겁 하더라. ㅎㅎ
마을을 다 돌고 마지막으로 변소같이 생긴 선황당?에서 철탑이 뽑아지길 제를 올리고 마무리 집회 장소인 보라마을로 이동.
산외면 보라마을에서 마무리 집회중이다. 집에 가서 푹 쉬어야겠다. 경남도당 김치담기는 나도 모르겠다. ㅠㅠ 온몸이 찌뿌둥해서 쓰러러져야겠다. ▼10,11,12,13,14,15,16,17,18
여기까지는 성의 부족한 후기였고요. 경남도민일보의 기사를 발췌합니다. http://i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432122
| 희망버스로 언 몸은 녹았다…마음은 더 단단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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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 온 희망버스 2000여 명 참가 "우리가 곧 밀양" 투쟁 의지 선포 |
지난 10월 초 밀양에서 송전탑 공사가 재개되고 경찰병력 3000명이 투입됐을 때 '밀양에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고 걱정하는 이들이 많았다.
실제 송전탑 경과지에 거주하는 많은 노인들은 공사 예정지에 무덤을 파고 목에 쇠사슬을 감고는 "내 주검 위에 철탑을 세워라"고 외쳤다. 그 결기는 그대로 피부에 와 닿았다.
그러나 한국전력과 경찰의 작전이 주도면밀해서인지 송전탑 공사는 민가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부터, 강경파(?) 주민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2개월이 흘렀다.
상동면, 산외면, 단장면, 부북면 곳곳에서 경찰과 주민들의 충돌이 발생했고 수십 명의 주민들이 병원에 실려갔으며 경찰에 연행되는 이들도 속출했다. 송전탑 1기가 완공됐다.
'죽어도 이 싸움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수그러들지는 않았으나 '우리가 고립되고 있는 건 아닌지, 귀를 틀어막은 저 거대한 공권력을 과연 이길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하루도 떠난 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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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밀양시 산외면 보라마을에서 '우리 모두가 밀양의 친구들'이라고 적힌 펼침막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구연 기자 |
그러나 11월 30일 '희망'이 도착했다. 전국에서 모인 2000여 명의 희망버스 참가자가 밀양에서 "송전탑 공사 중단"을 외쳤다. 그리고 그들은 '밀양 주민들을 연민하고 지켜주겠다'는 뜻을 표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밀양이다'고 선언했다.
그래서인지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힘겹게 송전탑 공사를 반대해온 주민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려고 했다. 11월 30일 문화제에는 딱딱한 정치구호 대신 풍자와 해학을 담으려 했고, 12월 1일 보라마을에서 열린 마무리 집회 때는 힙합과 록 음악을 선보이는 젊은이들이 등장해 함께 즐기려 했다. 그동안 경찰에 막혀 가보지 못한 송전탑 공사 현장으로 올라가 '언제든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공사를 중지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공유하기도 했다.
노인 몇몇이 외롭게 걸어 다니던 시골길은 활기가 넘쳤다. 희망버스가 있는 동안은 더이상 외롭지도 힘들지도 않은 싸움이었다.
유서를 품에 넣고 다닌다는 한옥순(여·66) 씨는 "한전과 경찰에 개 끌려가듯 하면서 싸우고 있었는데, 이제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다. 져도 이긴 싸움이다.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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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밀양시 산외면 보라마을에서 마무리 행사를 끝낸 후 희망버스 참가자들과 마을 주민들이 이별의 인사를 나누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구연 기자 |
그러나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살아서 함께 이기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희망버스에 동참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은 밀양에 도착한 수천 명의 인파를 보며 "이미 우리의 싸움은 이긴 것"이라고 힘있게 읊조리기도 했다.
동화전 마을의 한 주민은 "일이 잘못되면 죽어야겠다는 생각도 했는데 이제 새로운 신념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 주민은 "밀양송전탑 반대 운동이 이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길 때까지 싸울 것이기 때문"이라는 희망버스 참가자들의 메시지가 가슴에 와 닿았다고 했다.
희망버스 참가자 10명을 자신의 집에 재운 산외면 보라마을 윤모(여·70) 씨는 "기분이 좋다. 우리를 돕겠다고 멀리서 오니 위로가 된다. 밤에 떡국 끓여 먹으면서 사는 이야기도 하고 좋았지"라고 반가워했다.
보라마을 김응록(71) 씨는 밀양의 일부 관변단체가 희망버스를 '절망버스'라고 한 데 대해 "왜 이렇게 주민들이 반대하는지 들어와 보지도 않고 '절망'이라고 할 수 있나? 그렇게 낱말을 써먹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이번 밀양 방문을 일회성 반짝 행사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데 뜻을 함께했고 2차, 3차 밀양 희망버스를 이어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이 있는 곳이 곧 '밀양'인 것처럼 적극적으로 송전탑 반대 운동을 펼치겠다고도 했다.
희망버스가 밀양에 머물렀던 이틀 동안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사랑합니다"를, 밀양 주민들은 "고맙습니다"를 연호했다. "이길 때까지 싸우겠다"는 말은 이 두 집단을 묶는 신념이 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