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이여,

세기(世紀)를 밝힌 꽃넋이여

- 동학농민혁명 기념일 제정에 즈음하여

문병학 : 시인,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기념사업부장

1894년 갑오년
조선 왕조의 부패를 바로잡고자
서양 오랑캐의 앞잡이 일제를 물리치고자
분연히 떨쳐 일어선 넋이여 갑오년의 꽃넋이여

눈감고
귀 기울여보라
전라 경상 충청 경기 강원 황해 평안 함경
삼천리 팔도강산 갑오선열의 함성이 들리는가?

을사늑약 웬 말이냐
吾等은 玆에 我 朝鮮의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
들리는가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역사의 고비마다 겨레의 심장을 깨우던 노래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창포장수 울고 간다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수원
거리를 내달리며 호헌철폐 민주쟁취
민주화 하자는데 고문치사 웬 말이냐
두 눈 부릅뜬 형들의 성난 외침이 들리는가

들리지 않는다면
정녕, 들리지 않는다면
감히 이 땅의 자식이라 말하지 마라
대한민국 주권을 가진 민주시민이라 말하지 마라

1895년 4월 24일
한반도 심장 대한민국 수도 서울
종로 네거리에서 녹두꽃 한 송이 떨어졌다

꽃 진 자리 그 상처 위에
민주주의 열렸다 사람이 하늘이다
사람이 하늘이다 사람이 하늘이다

녹두의 후예들아
왼 가슴에 손을 얹어보라

심장이 뛰는가? 그대 살아 있는가?
목숨이 중하다고 역사보다 중하랴

보이지 않는 세기의 눈들이 번뜩이는데
어둠이 깊다고 아니 가고 말 것이냐

녹두의 후예들아
온몸에 햇살을 두르고
한 많은 세월 피맺힌 그리움으로
가자, 지뢰밭 철조망 넘어 평화의 꽃 피우자

꽃이여
녹두꽃이여
세기를 밝힌 꽃넋이여

아, 사람 사는 세상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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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학 : 시인, 1987년 『남민』을 통해 작품활동 시작하였다. 1989년 『노동문학』(창간호)에 시 ‘달개비꽃’이 <이달의 시>로 선정되었으며, 2000년 시집『지는 꽃 뒤에는』이 한국문학창작지원대상 작품집으로 선정되었다. 한편, 1993년 동학농민혁명100주년기념사업회 창립 때부터 지금까지 26년간 동학농민혁명 역사바로세우기에 헌신하고 있는 동학농민혁명 전문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