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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의공감 4호] 정의당소식 - 성산대첩 승리!
성산대첩 승리!
[2019.04.03 창원시 성산구 국회의원 보궐선거]
 


박종현 여영국후보 선거대책본부 상황실장
 
2019년 4월 3일 23시 28분 개표율 99.98% 상황에서 정의당 여영국 후보는 504표차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었다. 창원에 있던 지도부와 당원, 지지자는 물론이거니와 전국 곳곳에서 숨죽이며 개표방송을 지켜보던 당원들은 그날의 감동(?)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보고서는 당의 공식적인 평가는 아니나 120일간 (예비)선거운동과 승리에 대한 현장의 짧은 보고서로 보면 좋다.
 

성산대첩 120일, 정의당의 전략은 All in
각종 기자회견과 인터뷰마다 정의당의 창원성산 사수전략을 물어왔다. 우리는 별다른 전략이 없다고 답했다. 당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올인' 그것이 오직 하나의 전략이며 질수도 없고 져서도 안되는 숙명같은 선거에 사즉생의 각오로 임한다고 답했다. 2018년 12월 15일 선거제도개혁을 위한 전당원 총력행동의 날을 마친 후 12월 17일 6명의 중앙당직자들이 1차로 4개월의 파견 길에 나선 것을 시작으로 6명의 2차 파견에 이어 2월 20일부터는 당대표가 거처를 창원으로 옮겨 직접 선거를 지휘했고 3차, 4차까지 중앙당-시도당 30명의 당직자가 최소 1개월 이상 파견되었다. 뿐만 아니라 물적, 재정적 지원도 끊임없이 창원으로 쏟아부었다.

승리를 향한 모든 불확실성을 제거하라
초반 확실한 양강구도를 형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아직 보궐선거가 있는지 알려지기도 전부터 모든 역량을 쏟아 부은 이유였다. 마침내 2월 20일 KBS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자유한국당 후보와 1.6%차 초박빙 양강구도를 형성했다. 이 여론조사로 단일화 여론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고 진보개혁진영의 단일화 논의가 불붙었다. 다자구도하에서도 승리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여론에 부응하여 단일화에 적극적으로 응하면서도 이기는 단일화를 위한 원칙을 견지하였다. 민주누총 조합원 총투표를 요구하는 민중당에게 한발 양보하여 여론조사와 총투표 5대5를 제안했고(민중당이 거부함) 이를 기점으로현장의 민심은 급속도로 우리에게 넘어오게 되었다. 이어 민주당과의 단일화로 빠르게 이어지면서 결국 정의당으로 단일화에 성공했다. 양강구도 형성, 시민들의 뜻에 따른 단일화 과정은 승리를 향한 모든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과정이었다. 

국회의석 113vs5 본격적인 성산대첩의 막이 올랐다
민주당과 단일화 이후 지유한국당 강기윤 후보와의 여론조사 격차는 최대 20%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투표율이 낮아 조직력의 싸움인 보궐선거라는 점과 단일화 컨벤션효과의 거품을 고려할 때 박빙의 선거가 될 것으로 예측하였다. 이 때 자유한국당은 황교안 신임 당대표가 전면에 나서서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전국의 133명의 국회의원과 수천의 당원들이 창원으로 총 집중했다. 133석 제1야당이자 과거 수없이 집권했던 자유한국당에 맞서 5석 정의당은 진검 승부를 벌이게 되었다. 

ONE TEAM 정의당 5석이 133석 제1야당의 파죽지세 공성전에 맞서 창원성산을 사수했다
45일간 창원에 거주한 이정미 당대표는 물론 심상정 후원회장은 선거기간 내내 종횡무진 바닥을 훑으면서 선거를 지원했고 윤소하, 추혜선, 김종대 국회의원은 3개의 선거구를 각각 맡아 골목을 지켰다. 당의 부대표단, 상무위원, 전국 시도당위원장 모두 선거대책본부의 배치에 따라 골목 골목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선거달인의 진면목을 보여주었고 파견당직자 외에도 중앙당, 의원실, 전국 시도당의 당직자와 당원들은 연인원 1500여명이 집결하여 창원성산 곳곳을 지켜냈다. 당대표에서부터 당원들에 이르기까지 선거대책본부의 방침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우리는 이를 이순신장군의 勿令妄動 靜重如山(물령망동 정중여산)으로 명명했다. 가벼이 움직이지 마라. 태산과 같이 무거이 행동하라. 각자의 위치를 지키며 방침이 떨어지면 태산과 같이 움직인 원팀 정의당이 133석 제1야당을 막아선 승리의 비책이었다.

32년 노동운동, 8년간 도의원으로 탄탄한 지역기반을 가진 여영국이라 가능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승리의 전제는 무엇보다 탄탄한 지역기반을 갖춘 여영국 후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불의의 권력에 맞서 일당백으로 싸우면서 무상급식을 지켜냈고 언제나 낮은 자세로 묵묵히 주민들 편에서 싸워온 여영국이기에 가능했다. 120일 동안 매일아침 6시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조금의 쉼도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고 4월 3일 504표차 성산대첩 승리의 출발은 여영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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