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도자료] 심상정, “필리버스터가 끝난 이 자리에서 다시 싸울 것”

[보도자료] 심상정, “필리버스터가 끝난 이 자리에서 다시 싸울 것”

“힘이 부족해서, 소수라서 졌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대통령이 집회 시위 참가자 테러리스트에 견줘…어느 선진국가에서 자국민을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로 취급하나”

“국민 안전 지키고 사생활도 보호하는 테러방지법 왜 불가능하나…전 국민 사생활과 기본권을 국정원 수중에 넘겨줘야 테러예방 가능하다는 주장은 억지”

“야당 스스로 이긴다는 확신 없는데 어떤 상대가 두려워하겠나”

“여당이 다수당이라고 해서 절반의 국민의 목소리 내쫓을 권리는 없다”

“민주주의의 가장 큰 덕목은 한시적 권력…총선 결과에 따라 테러방지법 되돌릴 수 있어”

“정의당이 교섭단체 되는 것이 대한민국 정치 바꾸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각오 심장에 새기겠다”

 

정의당 심상정 상임대표가 테러방지법 표결을 저지하기 위한 필리버스터의 막바지 주자로 나섰다.

 

심상정 대표는 7시간 28분을 이어간 정진후 원내대표에 이어 2일 오전 5시 27분부터 7시까지 1시간 33분간 토론에 참여했다. 이로써 정의당은 5명의 소속 의원 전원이 필리버스터에 참여하는 헌정사상 초유의 기록을 세웠다.

 

심상정 대표는 단상에 서서 필리버스터를 지켜보는 국민들을 향해 “8박 9일 동안 눈 비비며 시청하고 국회를 직접 찾아 방청하고 댓글로 응원하고 후원금 보내고, 그렇게 오랜만에 야당에 마음을 모아주셨던 국민들께 진심으로 감사와 송구스럽다”는 뜻을 전했다.

 

심 대표는 “필리버스터는 의사진행을 합법적으로 방해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면서도 “필리버스터가 시작된 이후 새누리당은 여유만만 했다. 더불어민주당이 끝까지 가지 않을 것을 확신하고 있었던 듯했다. 유감스럽게도 새누리당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야당 스스로 이긴다는 확신이 없는데 어떤 상대가 두려워하겠나”라고 비판했다.

 

이어 “박근혜정부에 들어서서 옳은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밖에 없다. 야당도 틀렸고, 여당도 진실한 사람과 거짓된 사람으로 갈렸습니다. 집권당은 모든 대치의 책임을 야당에 전가하면서 조롱했다”며 “대통령의 뜻대로 일획일점의 법안도 고칠 수 없다는 완고한 자세가 집권당의, 집권세력의 책임감으로 둔갑하면서 야당은 설 곳을 잃다”고 토로했다.

 

심 대표는 “시민들이 동의하는 대테러방지법안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테러방지와 인권 사이의 균형과 조화”라며 “안보와 인권 사이에서 시민들에게 최대의 이익이 되는 그 좁은 오솔길을 열기 위한 열띤 논쟁과 토론은 정치가 해야 할 당연한 역할이다. 그것이 야당의 책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을 향해서는 “정말 이래서는 안 된다”며 “야당의 목소리에는 국민 절반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테러방지법에 찬성하는 국민도, 이를 우려하고 반대하는 국민도 다 우리 국민이다. 여당이 다수당이라고 해서 절반의 국민의 목소리를 내쫓을 권리는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국정원 믿어도 되겠나. 불과 얼마 전에 박근혜 대통령이 집회 시위 참가자를 테러리스트에 견주지 않았나”고 반문하며 “앞으로 테러방지법이 통과가 되면 이 테러방지법에 근거해서 아예 집회 시위 참가자들이 테러위험인물로 낙인찍힐 우려가 크다. 이것은 기우가 아니다. 대통령이 증거했다”고 강조했다.

 

또한 “도대체 국민의 안전도 지키고 사생활도 보호하는 테러방지법은 왜 불가능하나”며 “전 국민의 사생활과 기본권을 국정원 수중에 고스란히 넘겨주어야 테러예방이 가능하다는 주장은 억지다. 대체 어느 선진국가에서 자국민을 그렇게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로 취급하고 있나”고 거듭 비판했다.

 

심 대표는 “이번 필리버스터에 대한 국민들의 열렬한 성원에서 저는 야당다운 야당에 대한 국민들의 갈증이 얼마나 깊었는지 깊이 느낄 수 있었다”며 “민주정치의 수준은 야당의 수준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깨달은 점 역시 우리 정치 발전의 소중한 성과”라고 말했다.

 

아울러 “실력자들의 힘자랑과 반정치에 가려져 있던 국회의원들의 숨겨진 진면목이 드러났다”면서 “정치는 나쁜 거라는, 정치는 백해무익한 거라는 이런 반정치의 색안경을 벗어 던지자 국민 대표와 국민 사이의 거리가 많이 좁혀졌다. 저는 이것이 필리버스터가 준 작은 선물”이라고 말했다.

 

심 대표는 또 “박근혜정부 들어서서 정치에서 힘이 약한 것은 죄라는 사실을 부쩍 깊이 생각하게 된다”며 “진보정당이 분열과 시행착오로 지체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좀 더 빨리 성장해서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었다면 이런 일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최소한 국민들께 이보다는 더 나은 선택지를 드릴 수 있었을 것”이며 깊은 회한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번 필리버스터를 계기로 정의당이 교섭단체가 되는 것이 대한민국 정치를 바꾸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그런 각오를 심장에 새기겠다”고 다짐했다.

 

심 대표는 “우리 선거제도의 가장 큰 결함은 작은 지지를 얻고도 많은 의석을 가져간다는 데 있다. 새누리당 19대 의석 중에 24석은 부당한 의석이다. 그것은 민주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당 지지율에 비해 18석을 더 가져갔다”며 “이렇게 유권자의 민의가 왜곡되어서 반영되는 것이 큰 문제다. 이 자리가 우리 국민들이 잘못한 사람은 잘라 내고, 잘한 사람은 당선시키고, 국민들의 주권이 제대로 작동하는 그런 의회가 되어야 테러방지법도 고칠 수 있는 것이다”이라고 말했다.

 

필리버스터가 선거운동 아니냐는 일각의 비난에 대해서는 “모든 정치는 선거운동이다. 그것을 왜 부정해야 하나”고 반문했다. 심 대표는 “국민들이 뽑은 정치적 대표 또 정당의 정치적 실천을 평가하는 것이 선거”라며 “제가 테러방지법을 막을 수 없다는 점을 알면서도 이 자리에 선 것이 바로 그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심 대표는 “민주주의의 가장 큰 덕목은 권력이 한시적이라는 것”이라며 “오만한 독재 권력이 자주 하는 착각과 달리 민주정치에서는 입법과 정책, 외교협상, 모든 정치행위는 잠정적으로만 유효하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도 또 지금 논의하는 이 테러방지법도 되돌릴 수 있다는 얘기”라며 총선 결과에 따라 테러방지법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심상정 대표는 마지막으로 “힘이 부족해서, 소수라서 졌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그러나 우리는 패배의 자리에서 더욱 분명하게 느끼고 있다”며 “이제 우리 국민들은 불의와 불평등에 지쳤다. 기존 거대 양당의 정치와 시민의 의제에 입을 닫은 언론은 우리 국민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원래부터 불의한 것은 없다. 불평등과 대결은 우리의 전제조건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변화해야 한다”면서 “우리는 이 필리버스터가 끝난 이 자리에서 다시 싸울 것”이라고 다짐했다.

 

아래는 심상정 상임대표의 토론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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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정의당 대표 심상정입니다.

테러방지법 통과 저지를 위해 시작된 필리버스터가 8박 9일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서른여덟 번째 토론자입니다.

제 뒤를 이어서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마지막 발언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47년 만에 부활된 필리버스터는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국회방송 시청률이 평소보다 20배나 올랐다고 합니다. 국민들께서는 이번 필리버스터를 지켜보면서 ‘아, 테러방지법이 이런 문제가 있어서 야당이 그렇게 반대를 했구나’ ‘대한민국 국회에도 쓸 만한, 괜찮은 국회의원들이 많이 있구나’ ‘야당이 살아 있구나’ ‘우리 정치 희망이 있구나’ 하면서 많은 격려를 보내 주셨습니다.

 

대한민국의 희망을 함께 꿈꾸면서 함께 성원해 주신, 그 열렬한 국민들의 성원에 저도 놀라고 정치권도 놀라고 국민들도 놀라셨을 겁니다. 그러나 많은 국회의원들의 진심 어린 노력과 시민들의 아낌없는 성원에도 테러방지법은 한 조항도 고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몹시 아쉽고 분하실 겁니다.

 

제가 토론을 신청한 이후에 많은 시민들이 메시지를 보내 주셨습니다. ‘꼭 테러방지법 막아달라’ 호소하셨습니다. ‘토론하다가 쓰러져서 119에 실려 나와라’ 이런 간절한 주문도 많았습니다.

 

왜 안 그렇겠습니까? 8박 9일 동안 눈 비비며 시청하고 국회를 직접 찾아 방청하고 댓글로 응원하고 후원금 보내고, 그렇게 오랜만에 야당에 마음을 모아주셨던 국민들께 진심으로 감사와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그러나 저는 테러방지법을 막으려고 이 자리에 올라온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미 그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쓰러질 때까지 토론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우리 당의 의원님들, 또 조금 전에 말씀을 마친 우리 정진후 원내대표님의 토론이 그런 간절한 바람에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저희 정의당은 시민들의 간절한 마음을 가슴깊이, 깊이, 깊이 새길 것입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보다도 시민의 대표로서 헌법에 의해 보장된 대로 입법과 정치에 대한 제 견해를 밝힐 것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희망을 만들어 갈 수 있는 방법을, 그 고민을 교환하고자 합니다.

 

제가 테러방지법 통과를 막을 수 없다고 말씀드린 이유는 잘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필리버스터라는 칼을 과감하게 빼어들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집어넣기로 최종결정을 했습니다.

 

저는 정의당의 마지막 토론자입니다. 박원석, 김제남, 서기호 또 조금 전 우리 정진후 의원까지 다 하셨습니다. 오늘이 2일입니다. 10일까지 제가 이어가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아니, 10일까지 버텨서 막을 수 있다면 버텨볼 것입니다. 그러나 잘 아시다시피 버텨도 테러방지법 통과를 막을 수 없습니다. 정의당이 제1야당의 역할을 대신하기에는 여러모로 역부족입니다.

 

필리버스터가 계속되면 선거법 처리가 지연되고 선거사무가 중대하게 차질을 빚게 된다는 걱정, 이해합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우려하는 역풍도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의 곤혹스러움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 중단 결정 자체를 비판하고 싶지 않습니다. 또 ‘이럴 거면 왜 시작했느냐?’ 이런 말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미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다른 민주국가에서는 듣기조차 힘든 ‘야당 심판’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외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저는 그 이유를 늘 그렇게 말만 무성하고 결과를 맺지 못하는 야당의 ‘용두사미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뿌리 깊은 불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국민들은 필리버스터로 테러방지법을 막지 못해서 분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거법 처리를 외면하고 10일까지 이어가지 못해서, 그래서만 화를 내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일은 일점일획도 바꿀 수 없다고 밀어붙이는, 국회 탓하고 야당 탓하는 대통령의 태도에서 어쩌면 처음부터 예정된 것이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필리버스터를 꺼내 들었을 때 걱정이 앞섰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필리버스터는 의사진행을 합법적으로 방해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입니다. 그런 수단을 꺼내 들었을 때는 상대를 두렵게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에게 양보를 얻어 내려면 끝을 보겠다는 의지가 상대에게 전달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끝이 자신에게도 치명적일 수 있다는 그런 두려움이 있을 때 비로소 양보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필리버스터가 시작된 이후 새누리당은 여유만만 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끝까지 가지 않을 것을 확신하고 있었던 듯합니다. 유감스럽게도 새누리당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야당 스스로 이긴다는 확신이 없는데 어떤 상대가 두려워하겠습니까?

 

그러나 새누리당 동료 의원 여러분!

저는 오늘 이 상황에 기시감을 느낍니다. 1년 전에도, 2년 전에도, 3년 전에도, 4년 전에도 늘 반복됐던 우리 정치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19대 국회 지난 4년간 야당은 법안이나 정권의 일방적 정책을 저지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고, 대통령과 여당은 야당이 뭐라고 하든 다수의 힘으로 일방통행만 벼르던 일은 우리에게, 우리 국회에 아주 익숙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국회선진화법으로 물리적 충돌은 사라졌다지만 세월호 수습과 처리를 둘러싼 격렬한 대치, 국정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대치, 국정원의 선거개입을 둘러싼 격렬한 대치, 19대 국회 내내 수도 없이 반복된 이 격렬한 대치를 일일이 열거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 싸움들은 짧게는 4~5개월, 길게는 1년 이상 정치를 마비시켰습니다. 국회와 정치는 밥값도 못 한다는 시민의 비판과 불신을 받아야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4년은 정치가 아니라 불모의 싸움으로 점철돼 왔습니다. 국회는 협력을 통해서 시민이 직면한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는 공간이라기보다 서로 독한 말과 증오를 주고받는 전쟁터였습니다.

 

어떻게 대통령만 옳습니까? 어떻게 다수당의 뜻대로만 할 수 있습니까? 그게 어떻게 국회입니까? 그게 어떻게 민주주의입니까? 대통령도, 여당도, 야당도, 저희 같은 소수당도 다 부분적으로 옳습니다. 다 대한민국 국민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서로 갖고 있는 그 부분적인 옳음을 가지고 대화하고 타협하는 것이 정치의 책무일 것입니다.

 

그런데 박근혜정부에 들어서서 옳은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밖에 없습니다. 야당도 틀렸고, 여당도 진실한 사람과 거짓된 사람으로 갈렸습니다. 집권당은 모든 대치의 책임을 야당에 전가하면서 조롱했습니다. 대통령의 뜻대로 일획일점의 법안도 고칠 수 없다는 완고한 자세가 집권당의, 집권세력의 책임감으로 둔갑하면서 야당은 설 곳을 잃었습니다.

 

아무리 민주정치를 다수에 의한 지배라 한다 해도 이처럼 소수파의 목소리가 억압당하고 소수의 권리가 무참히 침해된다면 이것은 정치를 파괴함으로써 힘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오늘의 여당이 앞으로 늘 여당일 수는 없습니다. 지금 여당이 비판하는 이 필리버스터도 또 어느 날에는 새누리당의 선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때의 절박함에 집권세력이 된 야당이 눈도 돌아보지 않는다면 또 우리 정치는 어디로 가겠습니까? 저는 물론이고 우리 야당들도 테러의 위험을 잘 알고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여당만큼, 그 이상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사실 새누리당은 안보제일주의를 주장할 자격이 없습니다. 당과 정부의 최고위급 인사들이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기만 갖다 오지 않은 게 아니라 아버지도, 또 그 자식도 군대를 가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말할 자격이 있습니까? 또 천문학적인 방산비리는 다 누구 탓입니까? 인권의 사각지대가 돼 버린 군대는 또 누구 탓입니까? 야당 탓입니까?

 

서유럽의 예를 봐도 강력한 테러방지법안은 보수당이 아니라 노동당과 사민당에 의해 적극적으로 입법화되었습니다. 시민들이 동의하는 대테러방지법안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테러방지와 인권 사이의 균형과 조화입니다. 안보와 인권 사이에서 시민들에게 최대의 이익이 되는 그 좁은 오솔길을 열기 위한 열띤 논쟁과 토론은 정치가 해야 할 당연한 역할입니다. 그것이 야당의 책무입니다.

 

야당의 입장에서도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졸속으로 만들어진 입법으로 피해를 입게 될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단 한 번이라도 여야가 역지사지의 자세로 이 문제를 다뤘다면 이 법은 지금쯤이면 대통령 책상에 올라가 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요즘 필리버스터 때문에 본회의장을 오가는 새누리당 의원님들의 감출 수 없는 미소를 봅니다.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도 듣습니다. 야당과 힘겨루기를 하고 버티면 변함없이 이기니 어찌 안 그렇겠습니까?

 

그러나 새누리당, 정말 이래서는 안 됩니다. 야당의 목소리에는 국민 절반의 목소리가 담겨 있습니다. 테러방지법에 찬성하는 국민도, 이를 우려하고 반대하는 국민도 다 우리 국민입니다. 이 국회에서 다 껴안아야 될 우리 국민들의 소중한 목소리입니다. 여당이 다수당이라고 해서 절반의 국민의 목소리를 내쫓을 권리는 없습니다.

 

야당을 설득하는 일은 곧 국민을 설득하는 일입니다. 설득하고 타협해서 국민들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것이 집권여당의 책무입니다. 야당을 굴복시켰다고 좋아하고 기세등등한 새누리당에 묻고 싶습니다. 지금 당신들 발밑에 있는 패배자가 도대체 누구입니까? 여러분들의 국민입니다.

 

그래서 국민이 패배하는 이 비극의 주연은 더불어민주당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야당이 제시한 최소한의 수정안마저 완강하게 거부한 새누리당이 그 비극의 주연이 되어야 합니다. 법과 상식에 동떨어진 직권상정이 없었다면 없었을 비극입니다.

 

정의화 의장님은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소신과 실천으로 제가 평소 크게 존경해 왔습니다. 그러나 타협했습니다. 정의화 의장께서 이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비극의 진정한 주연은 시민의 자유와 기본권을 위협하는 발언을, 테러방지법이라 이름 붙이고 통과되지 않으면 국민들이 테러에 무방비로 노출될 것처럼 야당과 국민을 협박해온 박근혜 대통령입니다.

 

제가 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 사전에는 두 가지 종류의 테러가 있습니다. 특정 목적을 가진 단체, 개인이 행사하는 폭력입니다. 또 하나는 주권국가 권력자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휘두르는 폭력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독재시절을 겪어 왔습니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안기부 시절에 여느 집 밥그릇 숫자까지 세 왔던 그런 공포정치의 상처가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깊이 아픔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은 IS로부터의 테러 못지않게 권력에 의한 위협에 떨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테러 다 방지하는 테러방지법을 만들기 위해서 이 필리버스터가 진행이 되었습니다.야당이 모든 여론공세와 색깔공세와 이념공세를 감내하면서도 이 테러방지법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특정 목적을 가진 그런 테러, 권력으로부터 국민에게 가해지는 위협, 이 모든 테러를 다 방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선거법 처리를 공전시켰던 장본인들이 ‘선거를 치르지 말자는 거냐?’ 이렇게 목청을 높이고 있습니다. 지난 1년 선거법 논의 어떻게 되었습니까? 새누리당 현역 의원 밥그릇 지키기 위해서 1년이 허비됐습니다. 그러면서도 거대 양당의 부당한 특권을 챙기는 담합은 이미 12월에 다 이뤄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쟁점법안 통과를 위해서 선거법 처리를 공전시켰던 장본인이 바로 새누리당입니다. 양심이 있어야 합니다, 양심이!

 

또 야당이 테러 방지를 막는다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세상에 테러를 방지하자는 데 반대할 사람 누가 있습니까? 마치 야당이 테러리스트 동조 세력이라도 되는 듯 몰아세우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이견을 폭력적으로 억압하고 반대자에 대해 부당한 낙인을 찍는 것, 색깔을 씌우는 것, 이런 정부 여당의 배냇버릇을 고쳐야 합니다. 이런 행태는 열린사회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도 지역에서 어르신 말씀을 들었습니다. 테러를 방지하자는데 야당이 왜 그것까지 반대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많은 야당 의원님들께서 이미 누차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테러를 방지하는 법을 찬성합니다. 우리가 반대하는 것은 인권을 유린하는 법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테러 방지를 빙자해서 국정원에 더 쉬운 사찰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부여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국정원에 쉬운 사찰 권한을 마음 놓고 내줄 만큼 그렇게 국정원이 투명하고 민주적인가를 따져보자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당이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인정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열거하지 않더라도 전직 국정원장들 다 사법 처리되었습니다. 인정하셔야지요.

 

테러방지법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의원들께서 충분히 무엇이 문제인지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제가 드리는 얘기도 그것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세 가지 문제는 짚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현재 제출돼 있는 법에서 가장 큰 문제가 ‘테러위험인물’이라는 게 도대체 어떤 사람을 지목하는 것이냐 하는 겁니다. 법안 2조 3항을 보면 ‘테러 예비?음모?선전?선동을 했다고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누가 판단하느냐, 국정원이 판단하는 것입니다. 국정원이 지금까지 보여준 실례처럼 자의적인 해석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국정원의 의심만으로 테러위험인물로 간주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국민 여러분, 진짜 괜찮겠습니까? 국정원 믿어도 되겠습니까? 불과 얼마 전에 박근혜 대통령이 말씀했습니다. 집회 시위 참가자를 테러리스트에 견주지 않았습니까? 그러고도 국정원을 믿을 수 있습니까? 앞으로 테러방지법이 통과가 되면 이 테러방지법에 근거해서 아예 집회 시위 참가자들이 테러위험인물로 낙인찍힐 우려가 커졌습니다. 이것은 기우가 아닙니다. 대통령께서 증거하셨습니다.

 

이렇게 모호한 규정으로 국정원이 누군가를 테러위험인물로 지목할 경우에 그 사람의 휴대폰, 계좌 추적, 감시 다 가능해집니다. 논란 많은 테러방지법 제9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조항은 국정원장에게 테러위험인물에 대한 통신이용, 금융거래?출입국 정보 수집권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특히 금융거래정보는 영장 없이도 수집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기존에 금융정보분석원이 금융거래정보를 국정원에 제공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왜 안 했느냐? 국정원의 정치 개입과 국민 사찰을 막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을 차단하기 위한 안전장치, 이번 테러방지법에 의해 풀리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논란이 많은 개인의 통신내역, 도감청 남용의 가능성이 커지게 됩니다. 테러방지법 부칙에 국정원의 감청영장 요구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이 기습적으로 담겼습니다.

 

9조3항의 경우에는 국정원이 개인사업자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으로 개인정보 보호법이 정한 민감정보도 명시를 해 놓았습니다. 다시 말해 개인의 사상과 신념은 물론이고 노조 가입 여부, 정당 가입 여부, 건강과 유전정보, 이런 개인의 내밀한 영역을 국정원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과거 권위주의 시대 안기부 시절처럼 국정원에 의한 공안통치 시대가 도래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것입니까?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잘 아시다시피 국정원은 국회 정보위원회에서도 또 검찰도, 그 누구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는 성역 중의 성역입니다. 그런데 테러방지법은 이런 국정원에 무한대의 권한을 쥐여 주고도 그 남용을 견제할 어떤 장치도 마련해 놓지 않았습니다.

 

아니, 새누리당이 말하는 한 가지 대책이 있긴 있습니다. 제7조에 대테러 인권보호관 1명을 임명한다는 것입니다.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입니다.

 

국민 여러분, 단 한 명의 인권보호관으로 개인의 기본권 침해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새누리당에 묻습니다. 국정원의 권한 남용을 막을 수 있다고 실제 그렇게 믿고 주장하시는 겁니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슬며시 끼어들어 온 테러방지법 부칙은 참으로 위험천만한 내용이 모여 있습니다. 부칙 2조2항은 국정원의 감청신청 사유를 마구 넓혀 놨습니다.

 

구체적으로 국가안전보장에 상당한 위험이 예상되는 경우뿐만 아니라 대테러활동에 필요한 경우에도 국정원에 감청을 허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그 대테러활동이라는 것도 역시 모호하기 짝이 없는 용어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테러 관련 정보수집, 위험물질의 안전관리 그리고 국제행사의 안전 확보 등, 이 모든 경우에 국정원이 감청영장을 신청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이런 국정원을 우리 국민들은 믿을 수 있겠습니까? 국정원은 지금까지 많은 나쁜 짓을 했습니다. 국내 정치에 개입했습니다. 음지에서 일해야 할 국가정보기관이 양지를 활보하면서 정권의 보위기구로 전락했습니다. 불법행위를 동원해서 정치와 선거에 개입했고, 국민을 사찰하고 인권과 기본권을 침해했습니다. 국회나 검찰도 견제하지 못했습니다. 이미 무소불위의 권력집단이었습니다. 2013년 대선 여론조작 사건, 2014년 간첩 증거조작 사건 그리고 2015년 해킹 프로그램 사용 의혹까지, 아니라고 말하겠습니까?

 

그런 국정원에 어떠한 개혁도 없이, 어떠한 권력 남용을 견제할 장치도 없이 무소불위의 권한을 쥐여 주는 이 테러방지법이 통과된다면 결과적으로 우리 국민은 국정원의 총체적 감시 아래 놓이게 될 것입니다. 인권과 기본권과 사생활이 침해받고 민주주의는 크게 위축될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테러방지법이 없어서 대테러 위협에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거짓말입니다. 이 자리에서 많은 의원님들이 소상하게 설명 드렸듯이, 이미 우리나라에는 테러에 대응하기 위한 법제도와 관련 기구가 많이 있습니다.

 

법안도 많이 있습니다. 통합방위법도 있고 비상대비자원관리법도 있습니다. 또 대테러특공대라는 관련 기구도 있습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몰랐다고 하지만, 국무총리가 주관하는 국가테러대책회의도 있습니다.

 

사이버 안전의 경우 국가사이버안전규정으로 막을 수 있고 미래창조과학부의 사이버안전센터에서도 이와 관련된 사안을 다루고 있습니다.

 

기존의 형법과 특정범죄가중처벌법 등으로 내란?외환 관련 범죄를 수사하고 또 처벌할 수 있습니다. 그것 말고도 항공보안법, 선박위해처벌법, 철도안전법, 원자력안전법, 방사능방재법, 화학물질관리법, 총검단속법, 범죄인 인도법, 출입국관리법 등 공중안전을 위한 법제가 시행 중에 있습니다.

 

심지어 테러자금조달금지법으로 불리는 공중 등 협박목적 자금조달 금지법도 2008년 제정된 상태입니다. 외국환관리법도 UN과 우방국가의 긴밀한 공조 아래 시행 중에 있습니다.

 

국정원 역시 정보수집 권한을 이미 갖고 있습니다. 국가정보원법 3조를 보면 국정원의 직무로 대테러뿐만 아니라 대공, 대정부전복, 방첩, 국제범죄조직에 대한 정보수집도 명시해 놨습니다. 이렇게 많은 기존 법제와 기구를 어떻게 합리적으로, 통합적으로 운영할 것인가 이것이 테러 방지를 위한 법의 중심과제입니다.

 

그런데 이 법제와 기구를 어떻게 통합하고 합리적으로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보다 국정원에 어떻게 무소불위의 사찰 권한을 부여할 것인가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새누리당은 테러방지법과 함께 사이버테러방지법 처리까지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이버테러방지법은 민간 인터넷 전체를 국정원이 상시 관리?감독하도록 한다는 내용입니다.

 

국정원의 기존 권한에 더해서 테러방지법이 지금 부여할 권한과 사이버테러방지법이 통과될 경우의 그 권한까지 더해지면 국정원은 말 그대로 빅브라더가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국정원을 빅브라더로 만들어야만 하는 이유를 알아야겠습니다. 이것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따져야겠습니다. 그것이 야당의 책무입니다.

 

저는 정부여당이 대테러활동을 빙자해서 무소불위의 국정원을 만들고 무제한 사찰과 또 그 사찰의 합법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합리적 의심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에서 테러방지를 위한 제도 개혁의 논의과정을 여러 의원님들이 이미 소개한 바 있습니다. 미국에서 테러방지제도 개혁의 핵심은 CIA에 집중된 정보독점을 분산시키는 데 있었습니다. 정보기구에 강력한 권한을 집중시키는 것이 오히려 정보실패의 확률을 높인다는 교훈을 반영한 것입니다.

 

우리는 미국의 사례가 주는 시사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테러방지법으로 국정원 권한을 무한대로 키우는 데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국정원에 집중된 정보관리 권한을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조정하는 게 필요한 때입니다. 테러방지법은 이 같은 개혁방향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법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께 진심으로 묻고 싶습니다. 도대체 국민의 안전도 지키고 사생활도 보호하는 테러방지법은 왜 불가능한 것입니까?

 

전 국민의 사생활과 기본권을 국정원 수중에 고스란히 넘겨주어야 테러예방이 가능하다는 주장은 억지입니다. 대체 어느 선진국가에서 자국민을 그렇게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로 취급하고 있습니까?

 

많은 선진국들이 안전과 기본권 이 두 가지 목표가 충돌되지 않는 방안을 오랫동안 논의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만들어 왔습니다. 또 그렇게 실천하고 있습니다. 입만 열면 글로벌 스탠더드를 거론하는 정부여당이 테러방지 문제에서 왜 글로벌 스탠더드를 적용하지 않습니까?

 

박근혜정부에 들어서 우리의 민주주의가 참 많이 아픕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 시민들이 피로써 쟁취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힘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우리 국민들의 저력을 믿습니다. 지금은 아프지만 이번 필리버스터에 쏟아진 국민들의 응원과 격려에서 우리 민주주의가 반드시 건강함을 회복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사랑하는 국민여러분!

저는 필리버스터가 비록 테러방지법 법안을 한 점, 한 획도 바꾸지 못한다 해도 무의미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소중한 재발견이 있었습니다. 이번 필리버스터가 우리 민주주의를 한 발짝 성장시키는 계기가 될 거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가장 먼저 정치의 재발견입니다. 지역주민들 만나면 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있습니다. ‘제발 국회에서 싸움 좀 하지 말라’고 합니다. 한국정치는 왜 싸우는지 보다 싸운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비난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정부의 정책결정 과정도, 국회의 입법과정 어디에도 국민의 의사는 반영되지 않고 있습니다. FTA가 되었건 4대강 사업이 되었건 노동법이 되었건 우리 국민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슈와 법안들은 사회적 공론화 과정 없이 요식행위로 국민의 의견을 무시하고, 심지어 다수 국민의 의사에 반해서 처리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번 필리버스터를 통해서 여러 의원님들의 헌신적인 토론으로 정부여당이 이토록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테러방지법의 위험성에 대해서 많은 국민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또 지금 국정원에 줘야 할 것은 무제한의 사찰능력이 아니라 민주적인 통제라는 그런 공감도 높아졌습니다. 국민의 안전과 인권 사이에서 균형점이 어디인가 수준 높은 국민적 토론이 진행됐다고 생각합니다. 필리버스터에 힘센 세력들이 몹시 언짢아하는 이유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여러 중대 이슈에 대해 시민의 계몽된 이해가 커져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 국민들이 자각하게 되었다는 점이 저는 큰 소득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정당과 야당의 재발견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야당은 한국정치에서 들러리로 전락했습니다. 처음에는 대립하지만 끝에 가면 항상 일방적으로 양보하는 행태가 반복된 결과입니다. 왜 대립하는지 그 내용조차 제대로 국민들에게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국민들이 야당에 대해 갖는 기억은 무기력과 지리멸렬이었습니다.

 

이번 필리버스터를 통해 제1야당은 오랜만에 밀실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새누리당의 완력에서 벗어나서 국민들을 향해 테러방지법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호소했습니다. 국민들과 함께 국민들을 위해서 싸우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이번 필리버스터에 대한 국민들의 열렬한 성원에서 저는 야당다운 야당에 대한 국민들의 갈증이 얼마나 깊었는지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민주정치의 수준은 야당의 수준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깨달은 점 역시 우리 정치 발전의 소중한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필리버스터로 재발견한 것은 국회의원입니다. 그동안 우리 국민들에게 국회의원은 국민 위에 군림하고 ‘갑질’ 하고 세금만 축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없애야 될 대상이었습니다. 정치인들은 다 똑같다며 자신의 지역구 의원의 이름조차 알려고 하지 않은 국민들도 많습니다. 이를 부추기듯 기득권 세력과 보수언론들은 정치를 마구 욕했습니다. 국민들의 정치혐오를 적극적으로 조장했습니다.

 

김광진, 은수미, 박원석, 김제남 등등 우리 국회의원들의 소신과 능력이 유감없이 국민들에게 전달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실력자들의 힘자랑과 반정치에 가려져 있던 국회의원들의 숨겨진 진면목이 드러났습니다. 정치는 나쁜 거라는, 정치는 백해무익한 거라는 이런 반정치의 색안경을 벗어 던지자 국민 대표와 국민 사이의 거리가 많이 좁혀졌습니다. 저는 이것이 필리버스터가 준 작은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지금까지 말씀드렸던 필리버스터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테러방지법은 한 글자도 수정되지 않은 채 원안대로 통과될 것 같습니다. 이번 테러방지법의 처리과정은 우리 의회 민주주의의 오점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법안이 통과되면 통제에서 벗어나 무소불위의 권력을 얻게 된 국정원은 더 과감하게 나쁜 짓을 할 것입니다. 더 많은 국민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국회의원으로서 작지만 엄연한 원내 야당의 대표로서 이런 나쁜 법안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박근혜정부 들어서서 정치에서 힘이 약한 것은 죄라는 사실을 부쩍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진보정당이 분열과 시행착오로 지체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좀 더 빨리 성장해서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었다면 이런 일은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최소한 국민들께 이보다는 더 나은 선택지를 드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깊은 회한이 몰려옵니다.

 

이번 필리버스터를 계기로 정의당이 교섭단체가 되는 것이 대한민국 정치를 바꾸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그런 각오를 심장에 새기겠습니다.

 

그러나 모처럼 정치에서 희망을 보았던 우리 국민들께서 너무 상심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깊은 배신감과 무력감에 정치에서 관심을 거두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이번 테러방지법을 비롯해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굴욕적인 위안부 협상, 노동악법에 대한 비판도 이어 갔으면 합니다. 실패한 정책을 더 나쁜 정책으로 돌려 막는 박근혜정부의 행태를 똑똑히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어서 테러방지법이 만들어지게 된 정치적 배경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국민 안전과 인권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우리 정치에 대해서 말씀드릴까 합니다.

최근까지도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아무런 반성도 개혁도 없는 국정원에 어떠한 견제장치도 없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무리한 주장입니까? 이것이 테러리스트를 옹호하는 일입니까?

 

이런 정당한 야당과 시민들의 목소리를 묵살하고 정부 여당은 어떻게 이렇게 보무도 당당하게 역주행이 가능한 것일까요? 저는 우리 국회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대결적 담합정치, 그런 나쁜 정치의 필연적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대결적 담합정치는 서로 철천지원수처럼 싸우다가도 또 일정 시간이 되면 거짓말처럼 누이가 되고 매부가 되는 한국적 양당정치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저는 이런 양당의 대결적 담합정치가 기득권 성의 안팎으로 높이 세워진 승자독식제도가 만들어 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나쁜 정치는 나쁜 제도로부터 비롯된 측면도 많이 있습니다.

 

지금 이 19대 우리 국회의 비참한 자화상을 되짚어 보아야 합니다. 국민들과 공유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정치개혁이 무엇인지 국민들이 성원해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난해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정의화 국회의장은 이런 우리 국회의 비참한 자화상을 잘 묘사해 주셨습니다. ‘국회는 상임위 중심으로 예산과 법안이 논의되고 적법한 절차를 거쳐 법안과 예산은 의결되어야 한다. 국회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은 독립적인 헌법기관으로서 법안을 충실히 심의할 의무를 가진다.’

 

지금 우리 국회는 헌법이 부여한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원 그리고 상임위가 보이지 않습니다. 여야 지도부만 보입니다. ‘교섭단체 지도부에 의한 주고받기 식 거래형 정치가 일상화되었다’ 이렇게 당시 국회의장께서 한탄했습니다. 그런데 그 거래형 정치의 해법이 이런 위법한 직권상정이 될 줄은 정말로 몰랐습니다. 참으로 유감입니다.

 

교섭단체제도 이것을 좀 말씀드려야 될 것 같습니다. 교섭단체제도는 국회 운영상의 편의를 위해 도입되었습니다. 이 양당으로 이루어진 교섭단체는 국민 세금으로 공공재인 정치를, 정당을 잘 키우기 위해서 지원하는 국고지원도 독점하고 있습니다. 국회 공간도 독점하고 있습니다. 국회의 모든 의사일정, 의제 설정, 모든 권한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나와서 국회의원이 발언 하나하나 하는 것도 양당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국회의장도 의사진행을 양당 교섭단체의 합의 없이 함부로 진행할 수 없습니다.

 

국회의원의 입법권을 침해하고 상임위가 유명무실화되는 이유, 교섭단체제도 때문입니다. 비단 테러방지법만이 아니라 하더라도 19대 국회의 입법 과정은 철저히 망가졌습니다. 헌법이 국회의원에게 부여한 입법권은 수시로 박탈되었습니다. 이른바 쟁점 법안, 국민들의 삶에 민감하고 대한민국의 안전에, 지속가능성에 중요할수록 그것은, 국회의원이 더 많은 토론으로 더 많은 국민과 공유하면서 결정해야 할 이런 중대 의제들은 철저히 양당 지도부만의 관장 사항이 되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정치뉴스에 2+2 또는 4+4 회동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입법 과정은 철저히 양당 중심 지도부의 힘겨루기와 밀실 담합의 산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원내 정당인 저희 정의당도, 정의당 대표인 저도 언론을 통해서야 귀동냥으로 법안의 논의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소식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위헌입니다. 이런 국회 운영은 위헌입니다. 헌법은 국회의원에게 입법권을 주었지 정당에 입법권을 준 적이 없습니다. 무슨 권한으로 정당이 다 가져가서, 그것도 밀실에서 힘겨루기와 담합을 반복하는 것입니까? 이것이 저는 가장 심각한 문제의 출발점이라고 봅니다. 국회의원들도 국민이 부여한, 헌법이 부여한 헌법상의 권한에 책임을 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국민에게 먼저 복무해야 합니다.

 

큰 정당들은 그동안 국민에 의해 국회의원을 뽑는 게 아니라, 특정실세가 국회의원을 만들어준다는 그런 인식이 뼛속 깊이 박혀 있었습니다. 그런 분들은 권력정치에 의해서 또 팽 당합니다. 국민에게 달려가 봐야 국민들이 구제해 주지 않습니다.

 

도대체 이 테러방지법은 그 오랜 세월 동안 대체 무엇 때문에 여야가 다른지, 내가 뽑아 준 국회의원은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지, 논의는 충실하게 진행되었는지 국민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이번 필리버스터 과정에서 국민들이 놀랐던 국회의원들의 소신과 능력도 이런 국회의 현실에서 제대로 발휘될 수 없습니다.

 

300명의 국회의원 중에 우리 국민이 이름을 아는 국회의원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특히 19대 초선의원 이름, 국민들이 아는 이름이 얼마나 될까요? 저는 그 국회의원들이 무능해서 그렇다고 보지 않습니다. 국민들이 뉴스로 접하는 정치인은 점점 그 수가 축소되고 있습니다. 교섭단체 양당의 대표, 원내대표, 대변인, 이런 실력자들뿐입니다. 정책 능력을 많이 갖춘 우리 의원님들도 정책을 개발하고 입법화하는 데 재미가 없습니다. 누가 잘했다고 보도해 주지도 않고 칭찬도 잘 받지 못합니다. 그런 것을 하느니 당 대표?원내대표 수발을 드는 것이 더 빠르다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17대 국회의원으로 처음 국회에 입성을 했습니다. 지금 그나마 심상정이라는 이름을 국민들이 알아주는 것은 정책 활동을 열심히 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맨날 가두에서 시위나 하는 그런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저렇게 공부를 많이 하고, 저렇게 열심히 하고, 저렇게 좋은 법안을 내고, 그동안 이 국회에서 반세기 동안 듣지 못했던 경제민주화, 복지, 노동의 가치 이런 말들을 쏟아 내는 저의 노력을 높이 평가해주셨습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방송사 메인뉴스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좋은 정책을 내면 신문에 톱으로도 자주 걸렸습니다. TV 토론도 자주 나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유능한 정치인들이 길러지는 것입니다.

 

19대 국회는 거대 양당의 핵심 실세들이 폭력적으로 점유하고 있습니다. 정작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원들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이대로 놔두면 대한민국 국회에 희망이 없습니다.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주요법안이 통과될 때마다 이를 주도한 의원들과 더불어 관련 이익단체 대표자의 입장이 주목을 받습니다. 우리와 너무나 다른 모습입니다.

 

선진화법이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대결적인 담합정치는 선진화법 때문만이 아닙니다. 국회를 법안 자판기쯤으로 여기는 박근혜 대통령, 돌격명령이 하달되면 입법 대집행의 용역부대를 자임하는 새누리당, 무기력하게 끌려만 다니는 야당이 함께 만들어 낸 결과입니다.

 

국회에서 다수결의 원리는 가급적 지켜져야 합니다. 법안에 대해 충분한 심의를 보장하는 것만큼이나 너무 늦지 않게 통과되어 집행되는 것도 저는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선진화법을 고치자는 말을 꺼내려면 충분한 토론을 통한 의사결정이나 헌법상의 입법권을 부여받은 국회의원의 권한이 충분히 보장되고 상임위 활동 등 입법 절차가 충실하게 보장이 되어야 됩니다. 그게 전제되어야 합니다. 아무런 정당성도 없이 양당의 기득권 체제만 영구 보장해 주는 교섭단체 제도부터 스스로 뜯어고쳐야 합니다.

 

저는 이 교섭단체제도를 없애지 않고 또는 크게 손보지 않고 소모적인 대결정치와 기득권 담합정치의 무한반복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대결적 담합정치는 국민을 위한 정치가 될 수 없습니다. 누구나, 어떤 정당이나, 어떤 정치인이나 민생을 말하지만 좋은 민생정치를 봤다는 국민은 없습니다. 늘 공염불인 이유가 바로 이 양당의 대결적인 담합정치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또 하나, 이번 양당의 선거법 야합이야말로 나쁜 정치 과정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정치권이 선거 제도를 두고 1년 넘게 논의를 해 왔던 이유는 헌법재판소가 현행 제도는 투표가치의 평등에 위배된다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양당 담합정치의 결과는 엉뚱하게도 투표가치를 보다 평등하게 만드는 비례대표 의석을 줄이는 개악으로 끝났습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요체입니다. 우리 대한민국헌법 제1조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국민으로부터 어떻게 나옵니까? 선거를 통해서 나옵니다. 그래서 선거 제도는 국민의 의사를 실제 권력으로 전환하는 장치입니다. 선거 제도가 공정하지 않으면 우리 민주주의 과정도 왜곡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선거 제도의 결함이 곧 민주주의의 결함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민병주 의원님, 의제와 관련 없다는 말씀 하시려고 하지요? 다 관련이 있습니다. 테러방지법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왜 테러 방지와 인권은 그렇게 대결을 해야 하는 것인지, 왜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것인지, 테러 방지를 위해서 왜 국정원에 그렇게 무소불위의 권한을 주어야 하는 것인지, 그 합당한 야당의 지적이 왜 조금도, 한 점 한 획도 반영되지 않는 것인지, 그러면서도 대통령과 여당은 왜 그렇게 당당한 것인지 그런 정치를 설명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까지 필리버스터 과정을 보면서, 그렇게 7박 8일을 열렬히 응원하면서도, 수많은 국회의원들이 그렇게 진정성을 갖고 날밤을 새면서 호소를 하고, 수많은 시민들이 성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새누리당은 그렇게 보무도 당당하게 밀어붙이는 것인지, 그게 바로 이 국회 구조에 있다는 것을 제가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선거법도 양당이 마음껏 나누어 갖고 쟁점 법안도 양당이 다 주무르는데 이런 발언도 양해가 안 됩니까?

 

우리 선거제도의 가장 큰 결함은 작은 지지를 얻고도 많은 의석을 가져간다는 데 있습니다. 새누리당 19대 의석 중에 24석은 부당한 의석입니다. 그것은 민주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당 지지율에 비해 18석을 더 가져갔습니다. 이렇게 유권자의 민의가 왜곡되어서 반영되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이 자리가 우리 국민들이 잘못한 사람은 잘라 내고, 잘한 사람은 당선시키고, 국민들의 주권이 제대로 작동하는 그런 의회가 되어야 테러방지법도 고칠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2009년도에 유럽 선진 복지 국가를 체험하기 위해서 스웨덴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가 마침 EU 의원을 선출하는 선거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길거리에 가다가 조그만 부스 앞에서 열렬히 캠페인을 하는 한 여자분을 만났는데 나중에 이야기를 들으니 그분이 여성당 당수였습니다. ‘많은, 사민당을 포함한 큰 정당들은 주요 일간지에 통 광고로 당을 홍보하는데 여성당은 돈이 없어서 가두 캠페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이분이 우리로 치면 아침 방송 프로에서 호소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여러분도 좋아하는 그룹 아바(ABBA), 그 아바 그룹의 리더가 여성당이 다른 큰 정당처럼 모든 일간지에 홍보를 할 수 있을 만한 후원금을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여성당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정당은 국민에게 홍보하고 선전할 동등한 권리가 부여돼야 합니다. 그것이 올바른 민주주의입니다. 그 올바른 민주주의가 되도록 촉구하는 의미에서 내가 후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민주주의라고 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테러방지법 통과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안전과 인권을 함께 지키는 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참정권을 희생시키지 않고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높이는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입니다. 결국 민주주의에 길이 있습니다. 그리고 선거에 답이 있습니다. 선거가 특정 세력의 이해관계에 휘둘림이 없이 치러진다는 바로 그 사실이 민주주의와 민주주의가 아닌 체제를 구분하는 결정적인 기준입니다. 국정원과 같이 국가기관이 개입하고 동원되는 선거, 그런 관권 선거가 유지되는 사회라면 그 민주주의는 의심해 봐야 합니다.

 

저는 이번 선거가 오히려 늦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선거법 처리 때문에 이 지경이 됐는데 무슨 소리냐, 이렇게 국민들께서 힐난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민주정치에서 선거는 그 사회가 당면한 문제와 해법에 대해 국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고 결정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민주주의의 가장 큰 덕목은 권력이 한시적이라는 것입니다. 속으로 민주주의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결국 권력을 얻고 이어 가려면 투표용지에 이름 올리고 주권자들의 처분을 받아야 합니다. 정치인이 일을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힘은 오직 국민들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오만한 독재 권력이 자주 하는 착각과 달리 민주정치에서는 입법과 정책, 외교협상, 모든 정치행위는 잠정적으로만 유효합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도 또 지금 논의하는 이 테러방지법도 되돌릴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박근혜정부 이제 2년 남았습니다. 짧다고 느낄 수도, 길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총선 결과에 따라 테러방지법의 미래는 달라질 것입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위안부 협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필리버스터에 모아졌던 우리 정치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고스란히 투표장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필리버스터, 선거운동 아니냐?

모든 정치는 선거운동입니다. 그것을 왜 부정해야 합니까? 국민들이 뽑은 정치적 대표 또 정당의 정치적 실천을 평가하는 것이 선거입니다. 제가 테러방지법을 막을 수 없다는 점을 알면서도 이 자리에 선 것이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

 

선거가 계속되는 한 민주주의는 계속된다는 사실을, 정책도 사람도 투표용지에 올라서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잊고 있었던 이런 사실이 우리 시민들에게 작은 위로와 희망이 되었으면 합니다. 어쩌면 이 말을 드리기 위해서 제가 이 자리에 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 장의 투표용지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수십 명의 의원들이 필리버스터를 해도 글자 하나 고칠 수 없는 테러방지법, 그런 상황에서 뭘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의심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선거는 주관식도 아니고 객관식입니다. 한 표로 너무나 많은 말을 해야 합니다. 정부도 심판해야 하고 야당도 심판해야 하고 경제냐 안보냐 따져야 하고 정책이냐 후보냐 번호냐 이것을 두고 선택해야 합니다.

 

저는 이런 비유를 드리고 싶습니다. 선거는 교차로에 선 차량 앞에 놓인 신호등과 같습니다. 그 신호에 따라 차량은 직진을 할지 방향을 바꿀지 또 운전자를 교체할지 결정하게 됩니다. 박근혜정부에 단호히 경고하고 대결적 담합정치라는 나쁜 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신호등 불을 켜 주십시오. 그것이 무슨 색깔인지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그것이 얼마 후에 통과될 테러방지법의 대안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박근혜 대통령은 테러방지법이 처리되지 않으면 국민 생명과 안전이 노출된다고 자주 말합니다. 저는 진짜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방치하던 정부가 누군지 묻고 싶습니다. 박근혜정부 만큼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데 철저히 무능하고 무관심한 정부가 어디 있었습니까? 비극적인 여러 사건을 거론하지는 않겠습니다. 국가가 제구실을 했다면, 정부가 조금만이라도 주도면밀했다면 잃지 않았을 그런 소중한 생명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박근혜 대통령께서는 혹시 일어날지 모르는 테러에 대해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 그 진의를 의심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바로 이 순간에 우리는 우리 국민을 잃고 있습니다. 하루 평균 37.9명, 한 시간에 1.5명 꼴로 자살합니다. 산재로 하루에 5명, 5시간마다 한 명의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가난과 학대로 다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을 떠받쳐 왔던 어르신들, 아무런 돌봄도 받지 못한 채 홀로 죽음을 맞고 있습니다. 이 모든 희생이 뉴스조차 되지 못하는 대한민국입니다.

 

대통령께서는 테러방지법 반대토론을 벌이는 야당을 향해 국민의 희생을 치르고 나서야 통과시킬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혹시 모를 미래의 희생에는 그토록 민감한 정부가 현재 벌어지고 있는, 또 막을 수 있는 희생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둔감한지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 대한민국이 위태롭습니다. 경제는 출구가 없고 안보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방치되거나 무한경쟁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청년들은 일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습니다. 젊은 부부는 아이 낳기를 거부합니다. 노동자, 서민은 아무리 일해도 쪼들리고 중산층은 불안감에 짓눌립니다. 많은 어르신들이 폐지를 찾아 밤거리를 헤매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총체적 위기 앞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국민의 단결이 필요합니다. 국민통합이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국민들에게 솔직해야 합니다. 겸허해야 합니다. 국민의 안전과 인권의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분열시키는 우리 정치의 모습에 먹고살기 힘든 국민들은 서글픔을 느낍니다. 저는 대통령이 무엇보다도 야당을 적으로 생각하는 대결적인 정치관을 바꾸기를 촉구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남은 2년 대통령도 야당도, 무엇보다 우리 국민들도 참 힘든 2년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저는 사실 박근혜정부의 거의 모든 정책에 이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박근혜정부의 정책이 나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정치적 상대가 국민을 해치기 위해 정치를 한다는 생각을 갖고서 민주정치가 성립할 수 있겠습니까?

 

또 저는 야당이 또 우리 정의당의 정책과 의견이 모두 옳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른 정당이 다른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은 우선순위와 강조점의 차이에서 비롯될 수도 있습니다. 토론과 설득으로 얼마든지 공통의 논의 기반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동료 의원들을 존중합니다. 물론 워낙 다르기에 썩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존중하는 것은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국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국민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저는 국민의 대표가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적 상대를 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이견과 반대의 선한 의도를 부정하지 않는 것, 오류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 저는 제도개혁만큼 우리가 되찾아야 할 중요한 정치적 덕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테러방지법이야말로 너무나 명백한 근거들이 있습니다. 좋은 선례가 선진국에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시행착오를 줄이면서 배울 수 있는 모범도 많습니다. 상대를 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또 나쁜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면, 최소한 명명백백해진 국정원의 잘못만이라도 인정한다면, 그렇다면 대화와 타협으로 만들지 못할 이유가 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필리버스터 정국이야말로 격렬했지만 성과를 만들지 못한 19대 국회의 결정판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민의 삶을 바꾸는 입법적 성과보다 칼날 같은 평행선 대치가 계속되는 불모의 정치를 이제 거두어야 합니다.

 

힘이 부족해서, 소수라서 졌다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패배의 자리에서 더욱 분명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국민들은 불의와 불평등에 지쳤습니다. 기존 거대 양당의 정치와 시민의 의제에 입을 닫은 언론은 우리 국민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합니다.

 

원래부터 불의한 것은 없습니다. 불평등과 대결은 우리의 전제조건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변화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필리버스터가 끝난 이 자리에서 다시 싸울 것입니다.

 

세상은 바뀔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정의당이, 시민 여러분과 함께 세상을 바꾸겠습니다. 이것으로 제 토론 모두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6년 3월 2일

정의당 대변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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