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회견문] 심상정 대표 “정당 지지율에 비례하는 의석 보장이 이뤄진다면, 다른 모든 쟁점은 양보하겠습니다.”
정치개혁의 골든타임이 소진되고 있습니다.
선거제도, 의원정수 문제가 다시 현안으로 떠올랐습니다. 문제는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는 8월 13일까지 선거구 획정기준을 마련해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국회 정개특위는 자신들의 재량을 넘어선 문제로 옴짝달싹 못하는 실정입니다. 양당은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공식적 당론 확정도 없이, 난데없는 빅딜로 어수선합니다. 바쁜 걸음 또 발목이 잡힙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선거구획정위원회는 새로 부여받은 위상이 무색하게 개점휴업 상태에 놓일 것입니다. 선거제도 개혁은 물 건너갈 것이고, 시한에 쫓겨 정략적 짜깁기로 선거구 획정만 가까스로 마칠 것입니다. 모처럼 열렸던 정치개혁의 골든타임은 또 다시 국민들의 열망은 저버리고 불신만 가중시키며 소진될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이럴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결국 개혁의 핵심 과제는 정당지지율에 비례해 의석을 배분하는 선거제도를 실현하는데 있습니다. 단순다수제-소선거구제로 요약되는 현행 제도는 유권자의 민심을 반영하는데 있어 아주 박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를 보여주는 지표라 할 선거제도의 비례성에서 한국은 주요 민주주의 국가 36개국 중 단연 꼴찌입니다. 이는 의석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버려지는 표가 많다는 것입니다. 민주화 이후 매번 총선마다 유효득표의 절반에 달하는 1,000만 표가 버려진다고 합니다. 사표가 다량으로 발생한다는 것은 유권자의 투표가치가 평등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이번 선거제도 개편논의를 촉발시켰던 작년 10월 헌법재판소 결정의 핵심 취지는 표의 등가성을 지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방안이 바로 정당지지율에 비례해 의석이 보장되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독일식 연동제)의 도입입니다.
정당지지율에 비례하는 의석 보장이 이뤄진다면, 다른 모든 쟁점은 양보하겠습니다.
정의당은 지난 2월 중앙선관위의 선거제도 개편안에 공감하며, 세비 삭감 등을 전제로 △의원정수 360석(지역구 240, 비례대표 120)으로 증원,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독일식 연동제) 도입을 중심으로 한 선거제도 개혁안을 발표하였습니다. 당시 의원정수를 360석으로 제안했던 까닭은 농어촌 등 지역대표성을 일정하게 보완하는 동시에, 국가 규모에 비추어 지나치게 적은 국회의원 수를 늘려 국회의 대표성을 높일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국민들의 정치 불신 뒤에 숨어 의원정수 확대가 선거제도 개편 논의의 핵심 현안인양 본질을 호도해 왔습니다.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책임 있는 논의는 회피했습니다. 최근 들어, 헌재 결정에 따른 인구편차 조정으로 늘어나는 지역구를 대신해 비례대표 의석수를 줄이자는 반-개혁적 주장을 서슴없이 하는 실정입니다. 새누리당의 이런 입장이야말로 정치 불신을 볼모삼아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켜보겠다는 얄팍한 속셈입니다. 본질은 구부러진 선거제도를 펴자는데 있지, 그 과정에서 조금 늘어나게 된 길이가 아닙니다. 정치개혁의 요체는 정당지지율에 비례해 의석이 보장되는 제도인,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독일식 연동제)를 실현하는데 있습니다. 이것만 지켜진다면, 정의당은 의원정수와 비례대표 명부작성 방식 그리고 석패율제 도입여부 등 현재 쟁점이 되는 모든 사안을 양보할 용의가 있습니다.
개혁을 가장한 개악 시도에 대해서는 단호히 맞서겠습니다.
개혁의 공간은 기득권에게 반동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개혁으로 가는 길 곳곳에는 개악이 숨어 있습니다. 이번 경우 3가지 모습의 개악을 주의해야 합니다.
첫 번째 개악은 비례대표 의석수를 줄이자는 것입니다. 현재 비례의석은 54석으로 전체의석의 18%에 불과해, 비례성을 확보하는데 크게 부족한 실정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줄이자는 것은 표의 가치의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것으로,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에 역행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비례대표는 유명무실해질 것입니다.
두 번째 개악은 현행 비례대표제의 골간을 유지한 채, 권역별 명부만 도입하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이것은 오늘(10일) 국회의장 직속 선거제도 자문위가 발표한 내용입니다. 현행 ‘병립제’ 아래서 54석에 불과한 비례의석을 권역별로 나눈다면, 불비례성은 해소 되는 게 아니라 심화됩니다. 작은 정당들에 돌아갔을 의석이 거대 정당의 수중에 떨어집니다. 자문위 주장과 달리 지역주의 완화 효과도 크지 않습니다. 오히려 독일식 연동제의 지역주의 완화 효과가 더 큽니다. 이것이야말로 개혁을 빙자한 개악의 전형입니다. 또 “사표나 선거독식의 문제를 검토”해 “미래지향적인 선거제도개혁안”을 만들어달라는 것이 정의화 국회의장의 당부와도 동떨어진 안입니다.
세 번째 개악은 달랑 석패율제만 도입하자는 것입니다. 석패율제는 한 마디로 말해 거대 양당 중진 의원들의 호구지책 이상 이하도 아닙니다. 지역주의에 대한 지역주의적 접근의 전형입니다. 즉 석패율제는 병의 근원이 아니라 증상에만 매달리는 대증요법입니다. 연동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할 경우, 불필요한 제도입니다.
이 세 가지 주장이 개악인 것은 민심을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입니다. 유권자의 표의 가치를 더욱 불평등하고 만들며, 선거를 더욱 불공정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께 요청합니다.
저는 김무성 대표의 “공천권을 내려놓겠다.” 말에 담긴 진심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오픈프라이머리 도입 제안이 국민들의 참여를 높이겠다는 충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오픈프라이머리가 개별 정당 차원에서 도입할 수 있는 공직후보선정 방식으로 봅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이 선거제도 개혁에 비견되는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특히 오픈프라이머리를 법제화하려는 시도에 대해선 단호히 반대합니다. 정당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위헌적 발상이라 생각합니다. 다음 총선을 불과 8개월 앞둔 상황에서 오픈프라이머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럴 경우, 그 자체로 현직에게 유리한 오픈 프라이머리는 엄청난 프리미엄을 안겨주는 기득권 프라이머리로 전락할 것입니다.
김무성 대표에게 요청합니다. 오픈프라이머리는 다음 선거를 위한 당내 과제로 돌리고 선거제도 개편에 집중합시다. 소소하게 당의 공천 지분을 내려 놓는게 아니라, 민주화 이후 이어져 온 새누리당의 ‘철밥통’ 기득권을 과감하게 내려 놓길 바랍니다. 일시적으로 김무성 대표와 새누리당에 손해가 되고 타격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새누리당과 한국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만든 결단으로 평가될 것입니다. 역사적 지도자로 기억될 것입니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께 요청합니다.
선거제도 개혁 문제에서 정의당과 새정치연합의 목표는 다를 수 없습니다. 양당의 이해가 충돌할 이유가 없습니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빅딜론’은 새누리당의 완강한 반대를 피해, 평등하고 공정한 선거제도를 도입하려는 절박함에서 나온 것으로 짐작 합니다. 지난 만남에서 “모든 정당에 대해, 모든 지역에 대해 일률적으로 오픈 프라이머리를 강제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말씀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범주 자체가 다른 공천제도와 선거제도가 맞교환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선거제도 개편에 집중합시다. 정의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전열을 정비해야 합니다. 선거제도 개편의 전장에 함께 나서야 합니다. 2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안을 기반으로, 지금까지 제출된 시민사회의 다양한 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양 당이 내일이라도 공동 개혁안 마련에 나설 것을 다시 한 번 부탁 드립니다. 통 큰 결단은 이럴 때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양당 지도부에게 3당대표·원내대표 회담을 제안합니다.
교착상태에 빠진 현재 정개특위로는 선거제도와 의원정수는 물론이고, 선거구획정 기준조차 결정할 수 없습니다. 원내 정당의 책임 있는 지도부들이 머리를 맞대고 돌파구를 열어야 합니다. 원내 3당의 대표와 원내 대표 6자회담을 통해 통 큰 합의를 이룰 것을 제안합니다. 아울러 양 당과 대표님들에게 그동안 부당하게 누려온 기득권을 내려놓고, 국민주권주의라는 헌법적 가치를 실현과, 한국 정치의 발전을 위해 더욱 공정하고 평등한 선거제도를 만드는데 동참해줄 것을 충심으로 호소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5년 8월 10일
정의당 대표 심상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