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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제남][기고]폐지보다 정당정치 개혁,드러난 폐해 바로 잡아야

경향신문 8월 2일_오피니언

폐지보다 정당정치 개혁,드러난 폐해 바로 잡아야

 

얼마 전 민주당에서 당원투표로 기초단체 정당공천제 폐지를 결정하는 과정을 보면서, 그동안 국민들이 기성 정당정치에 느꼈을 실망과 분노의 깊이를 다시금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기초단체 정당공천제를 기성 정당정치에 대한 징벌의 수단으로 폐지하기에는 감수해야 할 정치적 손실이 크다. 헌법이 보장한 정당정치의 책임 있는 구현 수단을 제척하기 이전에 보다 정확한 진단과 대안 마련이 필요한 이유이다. 정당공천제 폐지 주장의 배경은 무엇보다 지역밀착형, 생활기반형 정치가 우선되어야 할 시·군·구 단위 기초선거에서마저 권력 줄서기, 지역파벌 만들기, 밀어내기식 공천 강요 등 계파싸움과 권력지향으로 점철된 중앙정치 폐해가 여전히 지배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도를 폐지하고, 개인의 무한경쟁에 맡겨 버리면 정직하고 좋은 지방자치 정치일꾼들이 다양하게 발굴되고 성장할 수 있는 풀뿌리 정치가 살아날 수 있을까?

근원은 정당민주주의와 책임정치, 공명정치를 감당하지 못하는 기성 정당과 양당구도에 있는 것이지 제도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근본부터 뜯어고쳐야 할 기성 정당의 구습(舊習)은 그대로 둔 채 겨우 첫발을 내디딘 책임정치의 기반을 훼손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초를 무너뜨리는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2006년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제와 비례대표제, 중선거구제가 시행된 이후 기초의원 여성 당선자가 2002년 2.2%에서 2010년 21%로 큰 폭으로 증가하고, 소수정당의 의석비율이 늘어나는 등 기초의회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됐음이 증명되고 있다. 아울러 2003년 이후 헌법재판소를 통해 수차례 기초단체 정당공천제 폐지가 위헌임이 밝혀진 바 있고, 한국정치학회 등 관련 전문가들도 폐지보다는 지방권력 비리 척결, 선거구 담합 중단 등 정치혁신 과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무엇보다 정당공천제 폐지로 인해 오히려 과거 낡은 정치로 퇴행할까 우려된다. 그나마 최소한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했던 공천심사가 사라지면서 기득권자라 할 수 있는 전·현직 지자체장 등의 권력이 더욱 비대해질 것이다. 재력과 조직력을 가진 토호세력의 발호로 지역주의는 더 심화될 수 있다. 엄연히 지역에 존재하는 중앙정치의 은밀한 손에 의한 내천(內薦) 비리의 싹도 키울 수 있다. 여성과 청년 정치인, 생명과 사회약자를 대변할 소수정당 등 정치 신인에게는 높은 진입장벽이 되고 정치 다원화의 길이 막힐 우려가 있다.

결국 정당공천제의 폐지는 애초 취지와는 다르게 기존 거대 정당의 기득권과 부패한 지방권력을 공고히 하게 될 것이며, 주민의 삶의 현장 속에 뿌리 내린 풀뿌리정치, 생활정치의 안착에는 오히려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지방자치·민생정치를 원한다면, 정당공천제의 폐지 논란에 앞서 정당개혁, 정치개혁 과제에 대해 거대 양당의 책임 있는 답변과 사회적 약속이 있어야 한다.

첫째, 투명하고 공정한 공천시스템 혁신은 물론 상향식 공천 도입 등 지역 당조직의 책임과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 아울러 지역의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소규모 지역정당의 설립과 활동을 보장할 수 있도록 현행 정당법의 개정을 논의해야 한다. 둘째, 현재 10%인 기초의회 비례대표를 50%까지 확대해야 한다. 이를 통해 여성을 포함한 다양한 세대, 직능, 계층의 참여가 보장되는 방향으로 기초의회 구성이 변화돼야 한다. 셋째, 중대선거구제 확대를 통해 현재 2인 선거구를 3~4인 선거구로 개편해야 한다. 그래야만 거대 양당의 지역지배 구도를 깨고, 신선한 정치신인의 발굴과 지역정치의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다.
 

 

새누리당이 내세운 일몰제나 민주당이 보완책으로 내놓은 여성명부제, 정당표방제 등은 또 다른 위헌의 소지가 있으며 미봉책에 그칠 수 있다. 오히려 지금 양당이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하는 것은 그동안 지방자치를 훼손해 온 밀실, 부정, 부패 공천에 대한 통렬한 반성문이다. 또한 폐쇄적·중앙집중식으로 유지해 온 정당 혁신 방안이다.

기초단체 정당공천제 폐지 요구에 담긴 국민의 뜻은 명확하다. 바로 삶의 현장이자 국민의 주권이 시작되는 지역부터 이전투구에서 벗어나 주민의 생활과 민생을 보살피고 살리는 책임 있는 풀뿌리정치를 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민의를 대표하는 정치인의 책무이자 존재의 의미다. 정당공천제라는 최소한의 책임정치마저 내던지는 정당과 정치인에게 진정한 정치의 소명을 가지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김제남 | 정의당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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