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전히 수많은 현장에서 불법파견 여부를 둘러싼 다툼이 계속되고 있다. (사진의 현장은 기사의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jsalvino on Unsplash
불법파견에 관한 논의는 아직, 한참 남았습니다.
1. 어떤 사람들은 불법파견이 해결되었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불법파견이 해결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제 더는 불법파견 문제로 다툴 이유가 없다고 합니다. 파견이란, 파견사업주(흔히 '하청'이라 불립니다)가 노동자를 고용해 사용사업주(흔히 '원청'이라 불립니다)의 지휘·명령에 따라 일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들은 이제 현장에서 불법파견이 많이 남지 않았으며, 특히 상당수의 원청이 자회사를 설립하여 하청 노동자를 고용하여 법적 분쟁은 해소되었기에 더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주로 사용자 단체나 원청에서 같은 주장을 반복합니다.
2. 하지만,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우선 대부분 해결되었다는 주장은 명백히 사실과 다릅니다. 여전히 수많은 현장에서 불법파견 여부를 둘러싼 다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충남지역에서만 해도 대표적으로 현대제철과 현대모비스 두 사업장은 현재도 불법파견 문제로 다투고 있습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 보건대, 실제로 다투지 않고 있는 사업장들까지 포함하면 불법파견은 말 그대로 어디에나 있습니다. 특히 대형 제조업의 경우 거의 모든 곳에 불법파견이 존재한다고 단언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다만 증거 수집의 어려움, 노동자들의 현실적 여건, 미온적인 정부의 태도 등 여러 사정으로 인해 소송을 제기하지 못할 뿐입니다.
3. '자회사 전환'은 해결이 아닙니다.
자회사 전환으로 해결되었다는 평가 역시 잘못되었습니다. 원청 사용자들은 자신들이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했다고 주장하기 위해 '자회사 전환'을 내세웁니다. 그러나 '자회사 구조'는 이름만 다를 뿐, 여전히 원청의 지휘·감독 아래에서 하청 노동이 이뤄지는 구조입니다. 엄마와 아들이 같은 사람이 아니듯, 모회사는 자회사와 다른 법인입니다. 아들이 엄마의 사업장에 노동자를 제공한다고 적법한 파견이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관들마저 공식 비공식적으로 자회사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어떻게 해결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진짜 책임자는 누구인가... 계속해서 묻고, 밝혀야 합니다
4. 해결되지 않은 이 문제는 한국 사회를 좀먹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한국사회에 심대한 해악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크게 세 가지의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 고용을 불안하게 합니다. 하청업체는 원청과의 계약이 끊기면 언제든 문을 닫을 수 있는 존재이며, 자회사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고용이 불안하다는 것은 노동자들의 삶 전반이 위태로운 상황에 있다는 것입니다. 불법파견은 범죄입니다. 그럼에도 계속되는 이유는 편하기 때문입니다. 자본의 '편의'를 위해 다수의 노동자들의 삶 전체를 위태로운 상태에 두는 것이 불법파견의 본질입니다.
둘, 노동조합 설립이 어려워집니다. 고용이 불안하기에 노동조합의 설립 자체가 어렵고, 천신만고 끝에 설립한다 하더라도 사용자가 둘입니다. 사용자의 전방위적인 압박이 너무도 쉽게 이루어집니다. 특히 원청의 압박은 쉽게 막아내기 힘든 것인데, 원청의 사용자성은 파헤쳐야 하는 것인 반면 원청의 현실적 지배력은 사업장 내에서 공고하기 때문입니다. 노동조합의 조직률이 지역사회의 행복도에 순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를 함께 고려한다면, 불법파견은 사회의 행복도 자체를 떨어트리는 일입니다.
셋, 교섭을 어렵게 합니다. 어렵게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나서도 교섭은 당연히 난항에 빠집니다. 하청이나 자회사는 사업장 내에서 현실적인 영향력을 가지지 않습니다. 교섭에서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원청은 교섭의 의무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교섭에 나오지도 않고, 하청에게 '이 정도 이상은 받아주지 말라'고 말하는 것만으로 간단하게 자신의 모든 의무를 회피합니다. 하청노동자들의 안전도, 임금도, 노동 강도도 모두 이 공허한 교섭 속에 방치됩니다. 중대재해로 수많은 하청 노동자들이 죽어가는 현실은 우연이 아닙니다.
5. 그래서, 우리는 아직 싸우는 중입니다.
지긋지긋한 '사용자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것이 어림잡아 20년이 넘었습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자신이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는지조차 명확히 알지 못한 채 일하고 있고,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은 책임에서 빠져나가려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묻고, 밝혀야 합니다. '진짜 사용자는 누구인가?' '누가 이 노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가?' 이 싸움은 단지 고용 형태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싸움은 권리의 문제이며, 정의의 문제이며, 사람을 사람답게 대우받게 하는 문제입니다. 불법파견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아직, 싸우는 중입니다.
* 위 기고문은 오마이뉴스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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