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원교육
  • 당비납부
  • 당비영수증
    출력
  • 당비납부내역
    확인

연구소 칼럼

  • [남아공 현지에서 보내는 칼럼] 남아공 과거사 청산과 한일관계, 장영욱 남아공 스텔레보쉬대학 연구원

[남아공 현지에서 보내는 칼럼]

남아공 과거사 청산과 한일관계

 

                                                장영욱 (현 남아공 스텔레보쉬대학 연구원)

 

사진 출처: Encyclopædia Britannica (출처 링크)

 

 남아프리카공화국 (이하 남아공) 가장 최근까지 제도화된 인종차별을 경험한 나라이다. 1948 국민당 집권 이후 45년간 지속된 인종분리 정책은 남아공 비백인 인구의 자유와 인권을 심각하게 제한하였다. 끈질긴 투쟁 끝에 평화로운 정권교체를 이루어 만델라 정부가 가장 먼저 하나는 과거사 청산이었다. 만델라는 대통령 당선 이듬해인 1995, '국가통합과 화해 증진법' 서명하고 이에 기초하여 데스먼드 투투 대주교를 위원장으로 하는 '진실화해위원회 (이하 진화위)' 발족하였다.

 

 진화위의 목적은 크게 세가지로 뉜다. 첫째는 인종차별과 인권침해 범죄의 진상을 밝히는 , 둘째는 적절한 보상을 통해 피해자들의 존엄성을 회복시키는 , 셋째는 진실을 공개한 가해자를 사면하는 것이다. '인권침해조사위원회', '보상과명예회복위원회', '사면위원회' 세가지 소위원회는 각각 1960년부터 94년까지 일어난 살인, 납치, 고문, 학대 "중대한 인권침해" 사례를 피해자 가해자로부터 수집하고 보상 범위를 정하였으며 사면 여부를 심사하였다. 2 이상의 피해자와 유가족 등이 참석하여 피해 사실을 생생하게 증언한 공개 청문회는 전국으로 생중계되었으며, 이외에도 2 이상의 증인들로부터 받은 진술들이 보고서에 기록되었다. 또한 7 명의 사면 신청 가해자 1 5 정도가 실제 사면을 받았다.

 

 진화위가 응보적 정의(retributive justice) 보다 회복적 정의 (restorative justice) 초점을 맞췄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가해자가 가해사실을 공개하고도 그에 응당한 처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면을 받은 것은, 그렇게라도 진실을 밝혀 피해자가 회복하도록 돕는 것이 진화위 활동의 1 목표였기 때문이. 이는 백인 엘리트들이 여전히 사회, 경제적으로 권력을 지니고 있는 상황에서 신생 흑인정부가 선택할 있는 대안이 제한적이었다는 이유로 설명할 있다. 사면을 약속하지 않으면 진상을 규명할 있는 기회를 영영 놓쳐버릴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가해자를 사면하는 대신 피해자가 적절한 보상을 받게 해주는 분배적 정의 (distributive justice) 역시 회복적 정의를 보조하는 중요한 장치였다. 진화위의 궁극적 목적은 가해자의 처벌이 아니라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보상이었다.

 

---

 진실의 완전한 공개, 보상과 명예회복, 사면을 통해 과거사 청산을 시도한 진화위의 활동은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계도 뚜렷하다. 그간 진화위의 진상규명은 개인적인 인권침해 범죄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사면을 신청한 가해자의 대부분은 경찰이나 관계자 인권침해 범죄에 직접 가담한 사람들이거나 흑인해방 운동가 폭력을 저지른 사람들이었다. 전체 사면자 흑인 비율이 80% 달했다고 알려졌는데, 이는 정작 백인 기득권층의 참여는 저조했음을 보여준다. 그나마 참여한 일부 백인들도 말단 행동대원들에 불과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토지 몰수, 강제 이주, 무리한 인종 구분, 기본권 박탈 비백인 인구들을 향한 폭력적인 제도들로 점철되어 있었다. 거시적인 차원의 "중대한 인권침해" 인종분리 정책을 디자인한 주요 권력기구 책임자들에 의해 발생했다. 진화위 역시 이를 인지하고 기업, 언론, 종교계, 법조계 등을 대상으로 별도의 청문회를 개최하였으나, 이에 대한 백인 기득권 층의 호응은 미비했고 이들을 처벌할 근거도 실행력도 부족했다. 오히려 백인기득권층의 일부는 아프리카민족회의 (ANC)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권력층의 핵심부에 자리 잡고 있기도 하였다.

 

 실제로 구조적인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문제는 민주화 이후에도 제대로 다루어진 적이 없고, 인종분리의 흔적은 지금까지도 사회 곳곳에서 관찰된다. 백인 지역과 흑인 지역이 나뉘어 있고 부는 백인들에게 집중되어 있다. 농장이나 사업체의 소유주는 대부분 백인인 반면, 이들 밑에서 일하는 흑인이나 컬러드 (혼혈인종의 통칭)들의 급여는 3000랜드 (한화 24만원) 미만이다. 급여로는 백인지역의 집세를 감당할 없어 비백인 빈곤층은 주로 도시 외곽에 위치한 타운쉽 (남아공 빈민촌) 정부가 지어준 집에 살며 얼마 되는 월급과 정부지원금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한다. 아파르트헤이트가 공식적으로 종식된 25년이 넘어가지만 구조적으로 고착된 인종간 분리는 여전히 남아공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는 것이다.

 

 진화위 활동을 통해 개인에 가해진 인권침해 행위는 어느정도 해결이 되었지만, 보다 근본적인 인권침해를 낳는 사회 구조적 불평등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래서 급진적인 흑인운동가들은 토지소유권의 강제이전, 누진적 세제 개혁, 주거 이전의 보장, 경제 권력구조의 변혁 없이는 진정한 사회통합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실행 방법에는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사회 구조 자체를 개혁하는 것만이 피해자들의 진정한 치유와 회복을 가져온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있을 없을 것이다.

 

---

 남아공의 과거사 청산을 톺아보며, 오늘날 경색된 한일관계를 생각해본다. 정치, 경제, , 외교, 역사, 사회 문제가 촘촘하게 얽힌 복잡한 이슈여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시점에 결코 외면 받아선 안되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거 잔혹한 세월에 삶을 유린당한 피해자들이다. 일제 치하 인권과 자유를 박탈당한, 위안부 피해자들과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가장 먼저 고려되어야 한다.

 

 다행히 박근혜정권 일본과 맺은 굴욕적인 위안부 합의는 사실상 철회되었으며 강제징용에 대한 배상 재판은 우여곡절 끝에 원고 승소로 결론 났다. 일본은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빌미로 소재 수출 통제 경제보복을 단행하였으나, 정부는 과거사 청산의 핵심이 피해자중심주의임을 기억하며 대책을 강구해야 것이다. 2000 대부터 유엔과 유럽연합 국제기구에서도 회복적 정의를 바탕으로 피해자 보호와 지원 제도를 적극 권고하고 있어 국제법의 흐름 역시 우리나라에 유리하다.

 

  최근 수출규제에 대한 타협안으로 한국기업과 일본기업이 공동 출자하여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배상하는 1+1 , 여기에 한국정부를 더하는 1+2 등이 거론되는데 정작 피해자 측과는 충분히 논의하지 않은 정황이 발견되고 있다. 이는 한국 정부의 도덕적 우위를 저버리는 어리석은 행위로, 무엇보다 우선하여 시정되어야 것이다.

 

 이에 더해, 일제 자행된 자유의 박탈과 인권유린이 지금까지도 지속, 고착화되어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구조를 만들어 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봐야한다. 노동착취, 성차별, 군대식 상명하복 문화, 외국인근로자 차별 청산하지 못한 반인권, 반평화 제국주의의 잔재들은 오늘날에도 우리 사회에 새로운 피해자들을 양산해 내고 있다. 진정한 과거사 청산은 구조를 바꿔내는 노력으로만 완성될 있다. 우리 정부가 이번 경제보복을 한국과 일본 사이의 전쟁으로 인식하고 있다면, 전쟁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무기는 죽창과 거북선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복지 확대, 우리 사회 안의 타자에 대한 포용과 환대일 것이다.

 

 

 

참여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