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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장/소장 칼럼

  • [김정진 소장 칼럼]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조치에 대한 단상, 정의정책연구소김정진 소장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조치에 대한 단상


1.

일본의 조치에 대한 냉정한 대응이 불가능한 이유는 기존 한일 관계 틀을 유지한 체 우리가 일본을 압박할 수단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일부 수출기업이 피해를 보기는 하겠지만 일본 경제 전체 입장에서 보면 조족지혈인데, 한국의 반도체산업은 한국경제의 중추이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일본은 한국의 경제적 기반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일본이 참의원선거 때문에 이렇게 하고 있다는 시각도 맞지 않는 것 같다. 단지 하나의 선거 때문에 이렇게 하기에는 일본이 사용한 것은 너무나 강력한 수단이고 일본 정부의 담당자들 또한 이를 모를 리 없다. 이것은 아주 협소한 의미의 정치나 경제 문제가 아니다. 일반적인 정치나 경제문제라면 해법이 없을 리 없지만 일본의 이 조치를 보면 일본은 대 한국 전략의 근본적 전환을 하겠다는 의사를 보인 것이다.

2.

구한 말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해서 한 여러 가지 조치를 보면 지금이야 그것이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수단이라고 이해했겠지만 동시대인들은 그렇게 이해했을까. 20세기 초까지도 한반도에서 일본의 우위는 명확하지 않았고, 독립문의 건립도 청나라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독립협회의 창설에 기여한 주요인사 중의 하나가 이완용이고, 이완용도 처음에는 친러파였다는 것을 본다면 러일전쟁으로 일본의 우위가 확립되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러일전쟁 이전에 일본의 여러 행위에 대해서 동시대인들은 단지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조치는 한국의 총체적인 정치적, 경제적 굴복을 요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불현 듯 들었다. 미국이 존재하는 한 무력수단에 의한 분쟁으로까지 발전이 되지는 않겠지만, 마치 중국의 GDP가 미국의 50%에 육박하는 시점에 트럼프가 자유무역의 틀을 허물면서까지 미중 무역분쟁을 일으킨 것처럼, 한국이 일본의 GDP에 3분의 1 정도에 육박하는 시점이 되자 일본은 이 번 사태를 촉발시킨 것이다. (1인당 GDP는 일본과 한국이 차이는 이미 근소하다.)

아마도 트럼프의 방식에서 아베 또한 영감을 얻었을 것이고, 세계 자유무역을 흔들고 있는 국가안보라는 전가의 보도를 꺼낸 것이다. 특히, 트럼프가 임기가 만료된 WTO 항소기구 위원들의 선임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에 WTO는 이미 작동불능이다. (어쩌면 우리나라도 나중에는 이런 방식을 우리보다 힘이 약한 나라에 사용할지도 모르겠다. 론스타가 조세협약을 악용해서 세금을 회피하려고 한국 사람들은 맹비난 했지만 우리나라의 사람들 또한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제3세계 국가에 대해서 세금을 내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3.

혹자는 일본 엘리트들이 한국정부의 거듭된 약속파기와 사과요구에 대한 피로도가 누적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측면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던 전직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불가역적’이라고 합의했을 때 그 발표를 들은 외교부 기자실의 기자들은 진보/보수 신문을 할 것 없이 탄식을 하였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합의를 해 놓고 이를 파기하는 한국 정부를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지 이 피로도 때문에 이번 일이 촉발되었을까? 사실 한국 정부가 이런 식으로 행동했던 것은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한 당이 사실상 장기집권했던 일본과 달리 대통령이 누구인가에 따라 대일정책이 널을 뛰었던 한국을 과연 몰라서 피로도 운운하는 것일까?

계엄령 발포까지 야기하며 6.3 사태의 원인이 된 그 한일 협정을 타결했던 JP의 증언록을 보면 다음과 같은 일화가 나온다. 2001년도에 위안부가 강제동원됐다는 사실은 꾸며낸 일이라고 요미우리 신문이 보도하자 JP는 한일의원연맹 회원들과 요미우리 신문사 회장실을 항의방문하였다는 것이다.

[당시 자민련 명예총재로 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나도 가만있을 수 없었다. 마친 일본에 체류 중이던 3월 7일 한일의원연맹 회장 자격으로 유흥수, 장재식, 이윤수 의원과 함께 요미우리 신문사 본사로 쳐들어갔다. 사장실 문을 열고 들어간 나는 와타나베 쓰데오 사장 겸 주필에게 다짜고짜 쏘아 붙였다.
“어이, 쓰네오 상. 이럴 수가 있어? 당시 나이가 나하고 같으니까 주의를 기울였으면 이런 글이 나오지 않았을 거다. 이 글 누가 썼어? 이거 쓴 논설위원들 다 불러와라.” ....(중략) .... “당신들, 지나 사변(중일전쟁)이 일어났을 때 몇 살이냐. 그 당시에 일본 군대 일을 도와주는 사람들의 복장을 아느냐. 헌팅 모자 쓰고 쓰메에리(깃이 못을 둘려 바싹 여미게 지은 양복) 하얀 것 입고, 그 위에 윗도리 걸치고, 아래는 단코바지(아래는 좁고 허벅지 부분은 넓은 승마복 같은 바지)입고, 게토루(각반)찬 놈도 있고, 지카다비(일할 때 신는 일본 신) 신고, 뒷주머니에 허연 수건 꽂고... 이런 놈들이 돌아다니면서 ‘전부 군대 나가는 바람에 생산수단이 없어 사람들이 모자란다. 그래서 여자들이 생산기관에 가서 일하면 돈 벌고 그 돈을 어머니 아머지에게 보낼 수 있고 좋지 않으냐’ 이렇게 속였다. 이 장면들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이렇게 모집한 여선들의 일부는 생산기관에 배치했겠지만 대부분은 즉각 강제로 중국으로 보내 가지고 위안부 노릇을 시켰는데, 뭣이 어쩌고 어째. 꾸며낸 일(뎃치아게루)이라고?”

이건 내 머릿속에 사진처럼 남아 있는 나의 중, 고교시절, 고향에서 일어났던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한 것이다. 일제 강점기 위안부로 끌려간 조선의 누이들을 두 눈으로 직접 본 나의 호통에 와나타베 회장은 물론 논설위원 중 누구도 대답을 못했다......] [김종필, JP 증언록 1, 중앙일보사, pp.237-238]

이 일화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JP는 이 항의를 유창한 일본어로 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JP와 동년배인 일본의 세대 또한 아무리 후안무치하더라도 자신들이 저지른 짓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심지어 일본의 인사 중에 이러한 내용을 양심선언한 인사들 또한 상당수 존재한다. 그러나, 이제 아베와 같은 세대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짓도 아니고 자기는 본 적도 없는 일이기 때문에 아무런 죄책감이나 책임감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분들은 1980년도에 고등학생인 나경원, 김진태와 육사 재학 중인 이종명과 대학원생 정도의 나이였을 김순례를 생각해보라. 이들은 정말로 5.18은 자신이 한 짓도 아니기 때문에 아무런 책임감이 없는 것이다. 과거 5.18의 주범격인 민정계조차도 이 네 사람처럼 말한 사람은 없다.) 그냥 이들에게 한국은 우리 전직 대통령 말같이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할 대상인 것이다. 이제 일본의 엘리트들은 1965년 한일협정 당시 형성되었던 한일관계의 근본 틀을 변화시켜 속된 말로 누가 우위에 있는 국가인지를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고 그 결과 한국의 굴복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4.

전쟁을 할 수 없기에 협상을 할 수 밖에 없는 남북관계처럼, 한일 관계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정부는 사실 협상의 수단이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는 정부를 비난하기보다는 그래도 부족한 협상력을 높일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래서 사실 단지 냉정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좋지 않을 수도 있다. 보수정부 하에서도 한미방위비 협상국면에서 반미단체들이 미대사관 앞이나 국방부 앞에서 시위를 하면 국방부 관계자들은 어찌 되었던 협상에는 도움이 된다는 식의 비공식적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는 기사도 다수 존재한다.)

정부당국자가 의병이라고 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왜냐하면 그것인 이미 ‘의병’이 아니기 때문이다. 곽재우는 벼슬한 적이 없고 주는 벼슬도 마다하고 도망다녔고 나중에 신선이 되었다는 것이 민간의 설화다. 금모으기 운동도 김수환 추기경 등 사회 원로가 나섰으니 효과가 있었지 정부에서 주도적으로 나서서 했으면 아마 실패했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람들의 대중동원에는 분명히 특수한 측면이 있다. 식민지 치하에서 무장투쟁을 하면 했지 장기간에 걸쳐 3. 1 운동 같이 특수한 대중운동을 일으킨 나라들은 사실 많지 않다. 독재권력에 악용될 수도 있지만 그 힘을 경시하거나 단지 대중들의 광기라고 하는 것은 분명히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대중들의 분노는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고 이를 잘 승화시키는 것은 시민사회의 여론 주도층이 할 일이라고 생각된다.

지금 일본은 대 한국 전략을 바꾸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명치유신 이후 정한론을 채택했고, 1965년 한일협정을 통하여 일본은 경제와 정치를 분리하는 실용적 전략을 취하였는데 이제는 우리가 일본에 경제를 의존하고 있는 것처럼 정치적 영역에서도 일본에 종속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아닌가. 당장의 협상도 중요하겠지만 일본의 전략 변동에 부응하여 우리는 일본에 대해서 어떤 전략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아마 몇가지 정도가 중장기적인 쟁점이 될 것이다. (1) 일본이 한국에 대한 엄청난 적의를 드러낸 상황에서 한미일 군사동맹이 지금과 같은 형태로 유지되는 것이 가능한가? (동아시아의 안보는 일본은 주축으로 담당한다는 미국의 전략에 한국은 어느 정도 부응할 수 있는가?) (2) 북핵문제가 해결된다면 이후 북일수교가 현실화될텐데 남북과 일본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되어야 하는가? (3) 일본과 장기적으로 자유무역이 불가능하다면 교역에 있어서 어떠한 원칙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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