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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칼럼

  • [청년칼럼 시리즈] 심상정이라는 레퍼런스, 백상진 정의정책연구소 청년위원
심상정이라는 레퍼런스



백 상 진
(정의정책연구소 청년위원)


심상정 국회의원이 정개특위 위원장 자리에 앉는 장면은 여러모로 특별했다. 일단, 본인의 표현대로, ‘진보정당에 처음으로 주어진 위원장 자리’라는 것이 그러했고, 두 번째로는 그것이 교섭단체의 지위를 잃은 채 얻은 것이라는 점이  그러했고, 마지막으로는 자유한국당 의원이 운을 떼 추천됐다는 것이 또 그러했다. 그 장면은 심상정이라는 정치인이 해온 정치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청년 정치인에게, 심상정

심상정은 어떻게 군소정당의 정치인으로 굵직한 현안을 쥔 요새에 오를 수 있었을까? 그를 일약하게 만든 ‘사자후’만을 내뿜는 데 그쳤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일이다. 그는 비판의 대상을 매섭게 다그치는 일만큼이나 상대방과의 타협안을 마련하고 협상하는 데 유능한 정치인이다. 그에게 누군가를 정치적으로 공격하고 말고는 부차적인 문제다. 중요한 건 일이 되게 하는 것이다.

작고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세계평화에 필요하면 악마와도 대화해야 한다’고 말했고, 고 노회찬 의원은 ‘선거제도만 바꿀 수 있다면 물구나무라도 서겠다’고 했다. 심상정 의원은 어떤가? 그는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을 어떻게든 성사시켜야’ 하고, ‘그러려면 여야와 모두 연대’하겠다고 말한다. 또한 ‘선거제도 개혁에 대해 정의당의 구체적인 당론이 있’지만, ‘위원장으로서 이 안을 고집하지 않고 모든 안을 놓고 끈질기게 논의해 결론을 끌어내겠다’고 말한다.

이는 단순한 캐스팅 보터도, 중립지대의 협상자도 아니다. 자유한국당과 연대한다는 비난을 받거나 ‘이상한 야당’으로 매도될지라도, 그는 합리적인 절충안을 마련해 그것을 관철시키는 데 온 힘을 집중한다. 당파적으로 조직된 정치세계에서 그는 아예 다른 정치를 하고 있는 셈이다.

여야의 합의로 정치 개혁의 운전대를 잡을 수 있었던 데에도 합리적 소통과 타협을 위해 상대방의 출구를 열어둔 그의 정치가 있었다. 그는 그게 누구든 당위를 내세우며 코너로 밀어붙이기보다 상대방의 스탠스를 존중하며 대의를 향해 나아가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택했다. ‘서로의 발을 단단히 묶어서 국민들의 칼바람 앞에 겸허하게 나서자’는 식이다.

청년 정치인들에게 심상정이라는 레퍼런스는 ‘가능성’ 그 자체다. 개헌이 불발됐으니 선거제 개편도 힘들지 않겠냐는 질문에 ‘거꾸로 선거제 개혁이 가능하면 개헌 논의도 문을 열 수 있다’고 대답한 대목은 ‘가능성의 예술’로서의 정치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옳음을 쫓되 강요하지 않고, 변화를 요구하되 책임을 나누는 정치인. 진보정당이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심상정이 걸어갈 수 있었던 이유다.

여성들에게, 심상정

‘심상정은 좋은데 여성 대통령은 안 된다’고 했다. 심상정이 제19대 대선에 출마했을 때다. 한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여성인 대통령이 된 박근혜는 그 자신이 아니라 여성으로서 평가되기 일쑤였다. 자연스럽게 그가 남긴 과오 또한 여성 대통령의 것으로 치부되었다.

그런 그가 한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탄핵된 이후 치러진 대선이었다. 수많은 대선 후보들 중 유일하게 여성이었던 심상정은 시작부터 남들과는 다른 장벽을 하나 직면해야 했다. 그는 여성이었다.

그러나 그는 ‘나는 박근혜와 다르다’거나 ‘박근혜는 진정한 여성 대통령이 아니’라는 식의 대응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유일한 여성 대통령 후보’라는 식의 차별화 전략 또한 없었다. 그는 그냥 ‘정의당의 대통령 후보 심상정’으로서 발언하고, 토론하고, 유세하며 국민들 앞에 평가받는 길을 택했다.

여성을 위한 정치를 포기했다는 말이 아니다. 그는 대선을 마치고 ‘생리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절반 국민의 숙명’이라며 독성 생리대 역학조사를 요구했고, ‘여성의 몸은 공공재가 아니’라며 낙태죄 비범죄화를 주장했다. 그것은 그가 여성이어서가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물론 여성을 포함하여-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되고자 했던 이의 신념이자 품격이었다.

청년 정치인에게 청년 정책을 요구하고, 여성 정치인에게 여성 정책을 요구하는 것은 남들과 다른 출발선에 선 이에게 족쇄마저 채우는 일이다. 차라리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일은 모든 정치인의 의무라고 주장하는 편이 나은 선택이다. 심상정은 자신이 여성이기 때문에 독성 생리대나 낙태죄에 분노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이 후세대 정치를 하고자 하는 여성에게 어떤 족쇄가 될지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정치판에서 드물게 살아남은 여성이라는 점을 굳이 강조하지 않는 것이 정치인 심상정의 진정한 미덕이다.

여성인 정치인들에게 심상정이라는 레퍼런스는 ‘보편적 주체’다. 그는 ‘아빠들도 애 키우고 싶은데 직장에서 눈치보고 승진 안 되니까 문제’라며 여남 모두가 행복한 사회 구조를 고민하고, ‘나는 존재로서 페미니스트이지만 세상의 모든 불평등과 싸우는 정치가’라고 말한다. 여성들이 주체가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여성이라는 정체성과 조화롭게 공존하면서도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잊고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심상정은 그런 세상을 꿈꾸며 자기 자신의 정치를 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치에게, 심상정

대한민국 진보진영은 죽산 조봉암과 몽양 여운형을 ‘사회민주주의의 오래된 미래’로 추앙하며 오랫동안 그리워했다. 진보진영의 현실정치인이 본받아야 할 레퍼런스라고 생각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진보진영의 현실정치인이 갖춰야 할 미덕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해방공간으로 레퍼런스를 찾으러 갈 필요가 없게 됐다. 오래된 미래가 아닌, 눈앞의 미래 심상정이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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