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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칼럼

  • [장석준 칼럼(프레시안 공동)] 진보정당의 길, '갑질 없는 나라' 만들기에 있다. 장석준 부소장
진보정당의 길, '갑질 없는 나라' 만들기에 있다
[장석준 칼럼] 진보정치의 잠재력, 어떻게 끌어낼까
 

이번 지방선거 결과에서 더불어민주당 압승과 자유한국당 추락을 제외하면 그나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정의당의 선전(善戰)과 녹색당의 화제몰이다. 정의당은 광역의회 비례대표선거의 정당투표 전국 합산이 8.97%로, 바른미래당을 제치고 제3당의 위상을 점했다. 한편 녹색당은 서울, 제주 등지에서 광역단체장 여성 후보가 바람을 일으켰다.

한국 정치의 정당 지형이 좌우가 비등한 형세로 바뀌길 바라는 입장에서 반가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제주도의회 비례대표 선거 결과는 인상적이다.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양강 대결을 펼친 원희룡 후보가 바른미래당에서 탈당한 무소속이라 그랬는지 자유한국당 득표율이 20%에도 못 미쳤다. 반면 그만큼 민주당 왼쪽에 자리한 정당들이 약진했다. 정의당, 녹색당, 노동당, 민중당의 득표를 다 합치면 20%가 넘는다.  

그러나 진보정당, 그 중에서도 정의당의 성적이 자축하기만 하면 될 내용인지는 한 번 따져봐야 한다.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도 부설 정의정책연구소가 주최한 지방선거 평가 토론회에서 "정의당은 과연 승자인지 패자인지 애매하다"고 토로했다. 그럴 만도 한 게 광역의회 비례대표선거 외에 승자독식 선거제도인 단체장 선거나 광역의회 지역구선거에서는 여전히 제 자리 걸음이다. 게다가 광역의회 비례대표 정당투표도 애초 목표인 두 자리 수 지지율에는 못 미쳤다.  

과연 10% 못 미치는 지지율이 지금 한국 정치에서 원내 진보정당이 받을 수 있는 최대치일까? 아니면 더 많은 지지를 모을 수 있는데도 크게 놓치고 있는 대목이 있는 것일까? 지방선거 이후 정의당이 던져야 할 중대한 물음이다. 이 물음에 어떤 답변을 내놓느냐에 따라 2020년 총선에서 진보정당운동이 받아들 성적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오비이락'에 가려진 '갑질 없는 나라'  

이번 선거에서 정의당이 내세운 핵심 슬로건은 '오비이락(五飛二落)'이었다. 정당투표에서 기호 5번 정의당을 찍으면 2번 자유한국당의 지분이 줄고 위상이 추락한다는 것을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는 한자 성어를 활용해 표현한 구호였다. 단지 상징적인 차원에서만 그런 게 아니었다. 광역의회 비례대표 의석 배분 규칙상, 민주당이 과반 득표로 의석 절반을 가져가는 상황에서 정의당이 의석을 차지하면 그만큼 자유한국당 의석이 줄게 돼 있었다.

정의당의 이 구호에는 비판도 없지 않았다. 자유한국당만 공격할 뿐 민주당 이야기는 쏙 빠져 있다는 것이었다. 정의당이 민주당과 우호적 관계를 전제하기 때문에 언급을 피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정의당의 현재 입장이나 노선이 '민주당 2중대'일 뿐이라는 날선 공격이 따르기도 했다.  

그러나 '오비이락' 구호를 이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 지방선거 전까지 정의당이 보인 행보를 놓고 위와 같은 비판을 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오비이락' 자체는 촛불-한반도 평화 정세에서 상당히 의미 있고 유효한 구호였다. 이 메시지는 정의당이 정당투표 전국 합계에서 제3당으로 부상하는 데 한 몫 톡톡히 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오비이락'이 비례대표 정당투표의 민심을 제대로 포착했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은 지역구선거에서는 가장 지지하는 정당에 '소신' 투표하거나 승리 가능성이 높은 정당에 '전략' 투표한다. 하지만 비례대표선거에서는 이런 특정 정당을 향한 '소신'/'전략' 투표의 논리를 넘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정당 체계를 선택하려 한다. 즉, 제도정치 안에 어떤 정당들이 진입하고 이들이 어떤 상대적 위상과 세력으로 포진할지 결정하려 한다.

'오비이락'은 이 점을 잘 파고들었다. 촛불-남북미 협상 '이후' 상황에서 민심은 단지 자유한국당 심판만을 바라지는 않는다. 개혁의 장애물인 자유한국당을 타격할 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부-민주당에게 개혁을 압박할 정당 체계를 구축하길 바란다.

일단 지금 자유한국당 심판의 무기가 민주당이라면, 새로운 정당 체계 구축의 수단은 정의당이다. 정의당은 '오비이락' 구호를 통해 자신이 그런 수단임을 적절히 호소했다. 새 정당 체계가 최소한 2020년 총선은 거쳐야 구축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마도 총선 때까지는 '오비이락'식 접근법이 정의당에게 계속 쓸모 있는 무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의당이 '진보'정당이라는, 민주당 왼쪽에 있다는 평면적 사실만으로는 정의당의 부상이 새 정당 체계의 핵심 요소임을 설득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정의당이 무엇을 하려 하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다 입체적으로 제시하는 메시지가 필요하다.  

이번 선거에서는 이것이 없었다. 아니, 없지는 않았다. 정의당은 '오비이락'과 함께 '갑질 없는 나라'를 외쳤다. 그러나 '오비이락'만큼 부각되지 못했다. 오히려 가려서 묻혀 버렸다.

후보나 홍보 전술의 한계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니었다. 선거 닥치기 전, 일상 시기에 '갑질 없는 나라' 만들기를 중심으로 당의 정체성과 이미지를 확실히 다지지 못한 탓이 컸다. '갑질 없는 나라' 만드는 정당으로 인정받을 일상 활동을 벌이지 못한 결과였다.  

나는 정의당이 실제 얻은 9% 좀 안 되는 득표율과 애초 목표로 삼은 10% 대 어딘가의 득표율 사이의 간극에 바로 이 문제가 있다고 본다. 전자가 새로운 정당 체계를 바라는 민심을 득표로 연결시킨 결과라면, 후자는 여기에 사회 개혁의 구체적인 전망과 기대를 더해 얻을 수 있는 결과다. 이번에는 전자의 성취에 그쳤지만, 2020년 총선에서도 이 정도로 멈춰서는 곤란하다. 2년이 채 안 되는 남은 시간 동안, 정의당은 이번에 확인한 이 간극을 메워야만 한다.

'갑질 없는 나라'의 제대로 된 실천에서 출발하자  

기왕에 선거 슬로건으로 채택한 '갑질 없는 나라'는 이 작업의 출발점이 될 만하다. 이 구호는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것보다 훨씬 더 중대한 의미와 풍부한 가능성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도 '갑질'을 향한 공분은 한국 사회에 마침내 등장한 자생적 계급 담론이다. 그 전에도 사회과학자와 사회운동가들은 '자본가계급'이나 '노동자계급'이란 말을 쓰고 '착취'와 '수탈'을 고발했다. 하지만 이런 말들은 대중의 생활세계에 충분히 스며들지 못했다. 반면 '갑질'은 처음부터 대중의 경험 속에서 부상한 토착 언어다. 이 언어와 접합한 '갑질 없는 세상' 비전은 다음과 같은 방향과 과제를 포괄한다.  

첫째, '갑질 없는 나라'는 진보정당이 대결해야 할 세력을 명확히 지목한다. 그것은 '갑질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기업 규모와 지배력, 관료 체계, 부동산 소유, 학벌, 성별 같은 각종 위계에서 윗부분을 차지하며 여기에서 비롯된 권력으로 지대 수익을 착복하는 자들이다. 좌든 우든 경제학 교과서는 시장 경쟁에서 얻는 이윤과 지대를 엄격히 구분하지만, 현대 자본주의, 특히 한국의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이런 구분법이 잘 먹히지 않는다.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 지위는 세대를 넘어 상속된다.  

말하자면 '갑질하는 자들'이란 지대 수익 추구자들과 상속자들의 중첩 혹은 연합이다. 촛불 시민들은 더 이상 이들 새로운 귀족의 지배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외쳤지만, 지금 한국 정치에는 이들의 적수라 할 만한 세력이 눈에 띄지 않는다. 현 정부는 종합부동산세 조금 올리는 데도 몸을 사리는 중이다. 진보정당이 이 빈곳을 채우지 못한다면, 그 존재 의의를 달리 어디에서 찾겠는가. 지대 수익 추구자 + 상속자 연합의 적대자라는 것이 진보정당의 첫 번째 정체성으로 여겨질 정도로 이 과제에 매진해야 한다.  

둘째, '갑질 없는 나라'는 한국 사회의 긴박한 당면 과제가 무엇인지 말해준다. 그것은 다들 갑질에 고개 숙이지 않아도 그럭저럭 살만한 나라부터 만드는 일이다. 갑질이 횡행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런 갑에게라도 굽신 거리지 않으면 당장 생계가 막막한 현실이다. 그래서 갑질을 당하는 일자리라도 차지하려고 을들끼리 경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최소한의 생계를 해결할 다른 통로들이 있다면, 을들의 경쟁이 그리 치열하지 않아도 될 테고 굳이 갑질을 견뎌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그런 통로 중에 가장 기본적인 것이 바로 복지제도다. 최소 2년은 생계를 보장할 정도의 실업수당이고, 노인 빈곤과 자살을 줄일 수 있을 정도로 실질적이며 보편적인 기초노령연금이며, 민간 주택시장을 위협할 정도로 공급되는 공공주택, 사회주택이다. 그러고 보면 '갑질'이 도마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그 시점에 '복지국가' 역시 대중의 열망으로 부상한 게 우연은 아닐 것이다.  

한데 복지국가를 건설하자면 국가 재정이 대폭 늘어나야 한다. 복지와 산업정책을 중심으로 이제껏 국가기구와 시민사회가 경험하지 못한 수준으로 재정을 확대해야 한다. 복지 예산 점증 기조에서 벗어나 거의 충격 요법에 가깝게 복지 지출을 급증시켜야 하며, 그만큼 조세 기반과 규모도 늘려야 한다. 하지만 현 정부는 소득 분배가 악화되는 와중에도 복지 급증-증세에 주저하고만 있다. 여기에 진보정당의 긴급한 과제가 있다. 한국 사회가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재정 확대의 사회적-심리적 장벽을 돌파할 수 있도록 진보정당이 앞장서야 한다.

셋째, '갑질 없는 나라'는 진보정당이 어떤 성장 전략을 밟아야 하는지도 말해준다. 갑질을 없애는 가장 확실한 길은 실은 갑을 끊임없이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먼저 수많은 을들의 힘을 강화해야 한다. 갑이 공격받는다고 을이 강해지지는 않지만, 을이 강해지면 자연히 갑은 위축된다. 그럼 을들은 어떻게 강해지는가? 오래된 답이 지금도 정답이다. 단결해야 한다. 을들은 노동조합으로, 협동조합으로, 시민사회의 다양한 조직들로 뭉쳐야 한다.

이는 갑과 을의 세력 균형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진보정당 성장의 동전 반대면이나 다름없다. 을들이 무정형 상태를 탈피할수록 진보정당의 사회적 토대도 실체를 얻게 된다. 따라서 진보정당과 사회운동, 풀뿌리 조직들의 동반 성장 전략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진보정당 성장 전략이다.  

이처럼 '갑질 없는 나라'는 지금 진보정당이 어디에서 출발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많은 것을 말해준다. 정의당은 이를 선거 구호로 내세우면서도 정작 이런 내용들을 일상 실천의 중심으로 만들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굳이 '갑질 없는 나라'를 외치지 않아도 모두가 '정의당'이라는 이름만 들으면 이 내용을 떠올릴 정도가 돼야 한다. 그렇게 이 실천에 당의 명운을 걸어야 한다.  

'갑질 없는 나라' 만들기에 충실할 때 선거제도 개혁도 가능하다

'갑질'이 처음 회자될 때 이를 기민하게 당세 확장의 지반으로 삼은 것은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이었다. 민주당은 을지로위원회를 만들어 을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다고 했고, 실제 상당한 성과가 있었다. 을지로위원회의 성공으로 진보정당의 입지가 위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일었다.  

지금도 이런 우려가 있다. 문재인 정부가 개혁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정의당만의 색깔을 드러내기 쉽지 않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최근 정부의 행보를 보면, 기우인 듯하다. 최저임금, 부동산 보유세, 재정 운용 등등에서 정부 기조는 과감한 개혁보다는 현상 유지에 가깝다. 역설적으로 너무 폭넓은 지지가 개혁의 칼날을 무디게 하고 있다. 지나치게 광범한 지지연합을 유지하기 위해 갈등적 쟁점을 다루길 회피하는 분위기다.

이런 때일수록 정의당을 비롯한 진보 세력은 자신감을 갖고 사회 개혁의 지칠 줄 모르는 목소리가 돼야 한다. 앞으로 2년마저 원내 정당들 간의 상투적인 충돌과 협상에 휩쓸려서는 지방선거 결과에서 한 걸음도 더 나아갈 수 없다. 원내 정치조차 '갑질 없는 나라' 만들기라는 한 가지 목표의 하위 범주로 활용할 수 있어야만 2년 뒤에 전진을 이뤄낼 수 있다.

진보정당 성장의 최대 난제인 선거제도 개혁도 마찬가지다. 이런 실천을 통해 대중에게 "꼭 필요한 정당", "반드시 성장해야만 하는 정당"으로 더욱 굳건히 인정받을 때에 비로소 선거제도 개혁의 막힌 길도 뚫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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