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우의 한 컷 만화, 진보정당 STORY] 100. 통합진보당의 내파(內破)

100. 통합진보당의 내파(內破)

      : 비례대표 경선 부정과 중앙위 폭력사태


 

 

 

 

 

 

 

 

2012년 4.11 총선이 끝나자마자 통합진보당은 비례대표 경선 부정 시비로 수렁에 빠져들었다. 시민사회의 외부 인사를 영입한 개방형 명부를 제외한 나머지 경쟁 명부 비례대표 순번은 당원 투표로 결정되었다. 다른 정당에 비해 높은 수준의 당내 민주주의를 제도화 한 정당이 통합진보당이었으나 과도한 정파 경쟁과 부실한 선거관리가 화근이었다.

 

총선 비례후보 부정 경선 시비는 선출과정에서부터 불거졌다. 그러나 선거가 워낙 임박해 있는 상황이어서 진상조사를 선거 이후로 미룬 채 선거를 치렀다. 총선 후 진상조사를 통해 비례후보의 귀책사유나 순번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의 문제가 드러나면 의원직 사퇴를 포함해 책임진다는 전제하에서 비례후보 선출에 관한 온라인과 오프라인 자료를 모두 봉인하고 부정투표 논란 진상조사가 끝날 때까지 보관하기로 했다.

 

그것은 당을 내파시킨 시한폭탄이었다. 선거가 끝난 직후 4월 12일 통합진보당 제27차 공동대표단 회의 결정에 따라 조준호 공동대표를 단장으로 하는 진상조사단을 꾸려 조사에 착수했다. 5월 2일 발표된 진상 조사 결론은 ‘총체적 부실/부정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기성 정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깨끗할 것으로 기대했던 진보정당에서 부정경선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국민들은 충격을 받았다. 통합진보당은 혼란에 빠졌고 국민 여론도 악화되었다. 국회라는 국민의 대의 기관에 파견할 대표가 부실, 부정 경선을 통해 선출되었다는 것은 단순히 당 내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인 비례 1번 윤금순 당선자는 5월 4일 “비례대표 경선 파문으로 국민 여러분들께 실망과 걱정을 끼쳐 매우 송구스럽고 부끄럽게 생각한다"며 “비례대표 당선자로서 함께 책임을 지겠다”고 밝히고 사퇴했다. 이튿날인 5월 5일 통합진보당은 전국 운영위원회를 개최해 부정 경선 파문의 수습책으로 당 지도부와 비례대표 당선자 및 후보에게 동반사퇴를 권고하기로 의결했다.

 

러나 비례 2번인 이석기 당선자와 비례 3번 청년 비례대표 김재연 당선자는 사퇴를 거부했고, 이정희 공동대표를 비롯한 이른바 ‘당권파’들은 진상조사 보고서 자체가 부실하다며 엄밀한 재조사를 요구했다. 사퇴를 권고한 전국 운영위원회의 문제의식은 설령 당선자들이 직접 부정경선에 관여한 것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당의 선거관리가 부실했고 일부에서 저질러진 부정에 대해서는 ‘읍참마속’ 방식으로 국민을 향해 정치적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었으나 당권파는 비례후보의 귀책사유나 순번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의 문제였는지 불명확한 채 사퇴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진상조사단의 판단은 대리투표와 동일 IP 중복투표 등이 광범하게 드러났을 뿐만 아니라, 분명한 무효표를 유효표로 처리한 경우, 선관위원이나 참관인이 입회하지 않은 상태에서 개표하는 등의 투개표 관리의 부실만으로도 투표 결과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전국 운영위의 사퇴 권고 전에 스스로 거취를 깨끗하게 결정해 버린 비례 1번 윤순금 당선자의 사퇴는 당권파의 주장을 무색케 했다.

 

이정희 공동대표를 비롯한 당권파가 진상조사 보고서를 신뢰할 수 없다고 반발하면서 통합진보당 부정 경선 파문은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대립 양상을 띠게 되었다. 당권파는 부정경선에 대한 당의 대국민 사과 문제를 당권을 둘러싼 경쟁구도인양 프레임을 바꾸어버린 것이다. 그것은 정파의 이익을 위해 당을 희생시키는 또 다른 패권주의적 태도에 다름이 아니었다. 이렇듯 부정 경선에 대한 사후 처리가 깔끔하게 매듭지어지지 않자 언론은 유례없이 많은 보도를 매일 토해내며 통합진보당을 민주주의조차 제대로 못하는 정당이라고 비판했고 여론은 통합진보당에 빠르게 등을 돌렸다.

 

이런 가운데 5월 12일 개최된 중앙위는 당권파에 의한 조직적 의사 방해와 폭력으로 얼룩졌다. 진보정당 초유의 사태였다. 쟁점 논의는 시작도 하지 못하고 정회가 선언되었으나 이튿날 전자회의를 속개해 비례대표 사퇴 결의안을 가결하고 강기갑 원내대표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출하고 대표단은 총사퇴했다. 그러나 당권파는 속개된 전자회의가 무효라고 주장했고, 이석기, 김재연 당선자 또한 사퇴를 거부함으로써 갈등은 지속되었다. 민주노총은 5월 17일 중집에서 이석기, 김재연 의원의 제명을 염두에 둔 ‘조건부 지지 철회’ 결정을 내렸다. 통합진보당 혁신의 시금석이 두 의원 제명이라는 뜻이었다. 통합진보당 서울시당 당기위는 중앙위원회의 결의를 거부한 이석기, 김재연 의원과 비례후보였던 조윤숙, 황선 당원을 제명 결정했고 6월 29일 중앙당기위원회는 제명 결정에 반발한 피제소인들의 이의신청을 기각해 최종적으로 제명 처리했다. 중앙당기위는 “진상조사 과정에 일부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문제된 비례대표 후보 선거는 정당성과 신뢰성을 잃었다고 판단하기에 충분하며 이를 근거로 전국운영위와 중앙위가 ‘순위경쟁명부 비례 당선자와 후보자 총사퇴’를 결정한 건 당의 합당한 결정이며 당원이라면 거역할 수 없는 당명”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현직 국회의원은 정당법 제33조에 따라 의원총회를 거쳐 당 소속 국회의원 과반의 찬성으로 제명해야 법적인 의미의 제명이 완료된다. 통합진보당 의원총회라는 마지막 관문이 남은 셈이었다.

 

당권파와 혁신파간의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7월 15일 치러진 당대표 선거에서 혁신파를 대표하는 강기갑 비대위원장이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강기갑대표는 혁신을 바라는 당심과 민심이 다르지 않다며 중단 없는 혁신을 선언했다. 강기갑 대표는 당원 총투표에 자신의 거취를 맡기겠다던 두 의원이 대승적으로 결단해줄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두 의원은 자신들에 대한 사퇴 요구가 부당한 공격이라며 요지부동이었다. 설득과 호소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이제 실탄은 딱 한 발, 의원 총회에서 두 의원을 제명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7월 26일 개최된 통합진보당 의원총회에서 김제남 의원이 기권하면서 이석기, 김재연 의원의 제명이 부결되었다. 이로써 통합진보당 자력에 의한 혁신은 물 건너 가버렸다.

 

8월 14일 민주노총도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장장 10시간의 격론 끝에 그간의 배타적 지지를 완전히 거두어 들였다. 통합진보당 진성당원 7만5000여 명 가운데 3만5000여 명이 민주노총 조합원이었으니 민주노총의 지지 철회는 통합진보당 최대의 지지기반을 상실한다는 의미였다. 이어서 농어민, 빈민의 지지 철회가 이어지며 통합진보당의 조직 기반은 허물어졌으며 민주당 또한 통합진보당과의 야권연대를 파기했다. 연말 대선이 다가오고 있는 상황에서 통합진보당의 이 같은 장기 파행은 야권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으며 새누리당에게 좋은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다.

 

물과 소금까지 끊는 단식을 통해 마지막 호소를 하던 강기갑대표도 9월 10일 “이제 지푸라기 같은 한 가닥 희망의 끈마저 끊어져 버리고 분당이라는 산사태가 덮쳐오는 이 순간, 쓰라린 분열의 아픔을 딛고 새로운 진보의 길을 떠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임을 잘 안다”고 밝히며 혁신모임의 신당 창당에 대한 지지를 표시하고 자신은 통합진보당 탈당과 동시에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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