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우의 한 컷 만화, 진보정당 STORY] 80. 정파 대립으로 몸살을 앓는 민주노동당

80. 정파 대립으로 몸살을 앓는 민주노동당

 

 

 

 

 

2005년 10월 울산북구 국회의원 재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김혜경 대표를 비롯한 전 지도부가 총사퇴했다. 비상대책위원회(임시대표 권영길) 체제로 운영되던 민주노동당은 2006년 1월 20일부터 24일까지 문성현, 조승수, 주대환 세 후보가 경합하는 당대표 선거를 치렀다. 김혜경 대표까지는 정파 간의 합의추대였으나 2006년 당대표 선거는 창당 이후 최초로 자주파와 평등파 간의 정면승부였다. 2차까지 가는 접전 끝에 2월 10일 자주파의 지지를 받은 문성현 후보가 평등파가 민 조승수 후보를 누르고 새 대표로 당선되었다.

 

사실 당대표 선거는 여러모로 개운치 않았다. <프레시안>에서는 선거 자체가 당이 처한 ‘위기’ 돌파의 계기가 되지 못했고, 선거 결과도 특정 정파 일색으로 채워짐으로써 쇄신의 동력을 애당초 상실했다는 평가가 주종”이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당시 여러 언론에서 지적했듯이 당내 선거는 국민들이 볼 때도 진보정당으로서 감동을 주지 못했을 뿐 아니라 ‘혼탁 선거’라는 씻기 힘든 흉을 남겼다. 일례가 조승수 후보에 대한 마타도어다. “조승수 후보가 당 대표가 되면 국고보조금도 못 받고, 선거에도 당 후보가 아니라 무소속 후보로 나갈 수밖에 없다. 왜냐면 조승수 후보가 대법원에서 선거법으로 의원직이 박탈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흑색선전으로 당심은 상처를 입었다. 문성현 체제는 이전과는 달리 통합형 리더십 구축에 실패, ‘반쪽의 대표’로 출범했다.

 

최장집 교수가 분석한 것처럼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운동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심화로 나아간 노동운동과 반미 통일운동으로 급진화한 부분으로 나뉘어졌다. 민주노동당 창당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심화를 주요한 운동실천으로 수용한 측에서 선택한 조직전략이었다. 그에 비해 전국연합과 같은 세력은 여전히 민족통일이라는 강령적 과제에 복무하는 ‘민주대연합’이라는 정치노선을 고수하면서 독자적인 정치세력화에 대해 동요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그와 같은 정치노선이 ‘독자적인 정치세력화의 길’을 걷겠다는 민주노동당 속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당이 결정적 국면에서 심각한 갈등 요소를 안게 되는 것을 의미했다.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던 이들도 “민주노동당이 뭔가 보여주는 게 없다"고 실망하고 있었다. 사실 '삼성 X파일'로 노회찬 의원이 반짝 뜬 것 말고는 동료시민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정치활동은 별로 없었다. 물론 민주노동당이 아무 것도 안한 건 아니었다. ‘황우석 열풍’이 불 때 생명윤리, 연구윤리, 의료산업화 반대 등의 논리로 대응했고, 사학법 개정에서는 보다 더 급진적인 사학법 개정을 촉구했다. 많은 쟁점에 개입했고, 또 진보정당다운 입장을 취했다. 노무현 정부의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인정과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 스크린쿼터 축소 등의 현안에 대해서도 강력한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뭔가 보여주는 게 없다“고 하면서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민주노동당은 자신을 어떤 당으로 규정하건 지난 총선에서 서구의 복지국가 선도정당 정도로 국민들에게 각인되었고, 또 그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국민들은 기존의 보수 양당 체제에서 틈을 비집고 나서서 “부자에게 세금을 걷어 서민복지를 실현하겠다”는 진보정당의 활약에 기대를 건 것이다. 문제는 그런 진보정당 고유의 정치활동이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데 민주노동당은 자신만의 ‘정치담론’을 능동적으로 생산하지 못하고 2004년 총선 때 제기했던 무상의료, 무상교육 아젠다마저도 사장시키고 있었다. 그 바람에 참여연대에서 조세개혁 전문가로 활동했던 윤종훈 회계사를 떠나보내야 했듯이, 민심이 실망하고 지지를 거두는 걸 안타깝게 지켜봐야만 했다.

 

2006년 2월 1일 MBC 여론조사에서 민주노동당 지지율이 총선 당시보다 반 토막난 6.2%를 나타냈다. 열린우리당의 지지율 등락에 묶여 동반하락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 여당의 실정에 대한 반사이익은 한나라당으로 쏠리고 이른바 ‘개혁정권’의 실패 책임은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같이 뒤집어쓰고 있는 형국이었다.

 

자주계열의 활동가들 일부가 당으로 옮겨 오면서 무리하게 당권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벌였고 이 때문에 당이 심한 몸살을 앓았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건 쉽지 않다. 신임 문성현 대표는 민주노동당의 위기를 “통합과 혁신으로 뚫겠다”며 자신을 지지해 준 자민통(자주파) 그룹도 나를 놓아 주어야 한다고 요청했다. 그리고 부유세 등 양극화 해소 대책과 지방선거 대응에 대선 예비주자로 꼽히는 권영길, 노회찬 의원을 전면 배치해 대중적 관심을 높이고 서울시장 후보도 김종철 전 최고위원, 박용진 대변인, 정종권 서울시당 위원장 등 30대의 젊은 후보들을 경쟁시키겠다는 등의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지방선거 돌파라는 절체절명의 과제가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글은 필자가 지난 2006년 2월 24일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을 바탕으로 작성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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