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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부 왜 정당인가

8강. “지역주의 망국론”은 왜 잘못인가 2

1) 여덟 번째 시간이다. 오늘은 호남출신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특정 집단의 해석 틀”이 아닌, 여야와 진보-보수를 가로지르는 “지배적 해석의 틀”로 자리 잡게 된 과정을 살펴본다. 정치학 이론으로 말한다면, “지배 집단의 세계관이 피지배 집단에게 수용, 동의되는 것”을 뜻하는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ideological hegemony)”를 갖게 된 과정을 분석하는 것이라 표현할 수도 있다. “헤게모니”란 용어가 어렵다면, “다수의 동의를 획득할 정도의 지배력”으로 바꿔 이해해도 되겠다.

2) 호남에 대한 편견이 직접적으로 호남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언어로 표출된다거나 혹은 그렇게 노골적인 방식으로 지배의 욕구를 실현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너무도 순진한 생각이다. 모름지기 어떤 이데올로기든 헤게모니적 효과를 갖기 위해선 나름대로 ‘보편의 옷’을 걸쳐야 하기 때문이다. 1987년 대선 직전 지역주의의 망국적 행태를 비판하는 다음의 인용을 보자.

“모두가 걱정스러운 눈치고, 심지어 두려움 같은 것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이러다가는 나라꼴이 엉망이 될 것이라고 개탄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그것은 지역감정을 두고 하는 말이다. …… 최근에 와서 지역감정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려는 경향이 노골화(되고 있으며) …… 어느 쪽이 먼저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런 상황은 서로 꼬리를 물고 상대방을 자극해서 악순환의 고리에 불을 댕길 것이며 그것이 경우에 따라서 어떤 폭력적 양상으로까지 발전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같은 시기에 주장된 또 다른 인용을 보자.

“오늘의 상황이 어쩌면 적어도 외견상 1980년 4~5월의 상황과 그렇게 비슷하게 돌아가는지 기분 나쁠 정도다. ……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대통령에의 꿈을 버리지 않고, 오로지 매진하는 [그때 그 사람들의 지금 모습]인지도 모른다. …… 3김 씨의 80년 재연을 덮어놓고 사시할 생각은 없다. ……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한가하지가 않다. …… 두 김 씨의 이름이 결코 우리 정치의 마법이 아니고 두 사람 아니면 우리는 일어서지도 못할 것 같은 맹신이 언제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두 사람의 추종자들이 깨닫도록 하는 방법은 정말 없을까.”

지금이나 그때나 지역감정은 심각했고 그래서 이처럼 우려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위 인용문은 “지역감정” “돌아온 3K”라는 제목으로 조선일보 주필이 쓴 칼럼 내용의 일부이다. 당시 조선일보가 지역주의 문제를 어떻게 정의했는지를 요약하면 이렇다.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지역당 체제이다. 이는 3김이라고 하는 지역 지배 엘리트가 유권자의 지역감정을 경쟁적으로 자극하여 만들어 낸 지역 할거주의의 내용을 갖는다. 지역주의는 출신 지역이 동일한 정치 엘리트를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전근대적 의식 행태로 유권자의 정치적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3김은 유권자의 지역주의를 볼모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따라서 지역당 체제의 극복을 위해서는 구 정치 엘리트의 퇴출과 함께 유권자의 탈지역주의 의식 개혁이 필요하다.’

이런 논리에는 권위주의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이 전혀 없다. 민주화에 대한 기대나 고민은커녕 민주화한다고 해서 결국 지역주의의 혼란만 있지 않느냐 하는 식이고, 야당 지도자들은 추종해 봤자 지역감정만 자극할 것이고 그들만 배불리는 결과를 낳지 않았느냐 하는 식이다. 자연스럽게 지역주의 문제는 권위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추종하는 양김의 문제가 된다. 광주와 호남이 적극적인 정치 참여의 욕구를 표현한 것을 맹목적 지역감정이라 말할 때, 이 논리 안에서 5공화국과 전두환, 노태우의 책임 문제는 모두 사라진다. 나아가 정치의 방법을 통한 민주화의 길을 비관적으로 조망하게 함으로써 반권위주의 연합 전선을 약화시키는 효과도 낳았다.

3) 지역주의를 이렇게 보고 지역주의를 극복하자고 하면 그건 결국 양김 내지 3김이 아닌 노태우 후보의 당선, 즉 권위주의 정당이 재집권하는 대안을 추천하는 것이 된다. 야당의 집권을 싫어할 수 있고 노태우의 당선을 바랄 수도 있지만, 그것을 위한 알리바이를 지역감정 때문이라 말한다면 확실히 인과적으로 전도된 생각이라 할 수 있는데, 당시 조선일보만큼 이를 잘 보여 준 사례는 찾기 힘들다. 이처럼 “인과관계를 전도시키는 것(inverted causality)"이야말로, 지배담론 내지 지배이데올로기의 핵심 기제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지역주의 망국론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이런 논리가 비단 조선일보만의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주류 언론 전체가 조선일보의 뒤를 따랐다. 우리 사회 기득 집단과 그 이데올로그들도 민주화 이후 선거 때마다 망국적 지역주의를 앞세웠다. 지식인들도 대부분 그랬다. 선거 및 정당을 전공하는 정치학자들의 분석도 “이번에도 여전히 지역주의가 압도했다”라는 말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불행하게도 지역주의에 대한 이런 해석의 틀을 수용하고 재생산한 것은 현실 정치에 참여하고자 했던 많은 재야 세력과 진보파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민중당이 있다. 1992년 총선에서 좌절을 경험한 이후 김문수·이재오·이우재 등 민중당 지도부 대부분은 망국적 지역주의 극복과 3김 청산을 내세우며 권위주의 후계 세력인 신한국당에 참여했다. 좌에서 우로 이동하는 데 망국적 지역주의 극복만큼 좋은 알리바이 담론은 없었다. 또 다른 예는 제3의 정당을 모색하고자 했던 재야 정치 세력이다. 시민운동의 대표적인 지도급 인사들이 참여한 ‘정치개혁시민연대’, ‘개혁신당’, 그 밖에 여러 정치 지향 재야 세력은 통합민주당으로 결집하여 1996년 총선에 참여했으나 참패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지역주의와 3김 정치에서 찾았다. 이듬해 대선을 위해 ‘국민통합추진회의’라는 이름으로 다시 세력을 결집한 이들은 “오늘의 정치 현실은 망국적인 지역 할거주의에 기초한 맹주 정치와 붕당정치로써 정쟁만을 일삼고 있다”며 독자적인 정치 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이들의 일부가 차기 후보로 영입하려 했던 이회창은 한나라당의 후보가 되었다. 또 다른 일부가 옹립하려 했던 조순은 선거 막바지에 “지역주의 극복, 3김 시대 청산”을 이유로 이회창 지지를 선언했다. 재야 출신의 대부분 사람들 역시 동일한 이유를 내세우며 뒤따라 한나라당으로 가버렸다.

4) 지역주의 망국론은 이처럼 주류 언론, 보수파의 이데올로그 지식인, 학자, 전문가, 마지막으로 여기에 재야 출신 정치 지향 세력이 가세하면서 확산되었다. 그러면서 언제부터인가 한국 정치의 갈등과 대립이 지역주의에 의해 지배되고 정당은 대개 이 지역주의를 이용해 정치적 이득을 보고 유권자는 이들에 의해 이용당해 지역주의 투표를 한다는 주장이 아무렇게나 개진되게 되었다. 누구도 이런 엄청난 주장을 따져 물으려 하지 않았다. 명실상부한 지배 이데올로기가 된 것이다. 지역주의가 영호남을 넘어 모든 지역을 지배하는 망국적인 문제로 정의될 때, 당연히 가장 심한 지역주의의 “문제 지역”은 호남이 된다. 요컨대 “DJ 지팡이 하나로 모든 것이 끝나는 지역", 혹은 "차별과 소외를 ‘한’으로 푸는 지역"이라는 해석은, 망국적 지역주의론의 다른 짝인 것이다.

1997년 김대중이 집권하고 노무현이 호남의 지지에 힘입어 후보가 되고 대통령도 되면서 지역주의 망국론은 잠잠해지고 사라진 듯했다. 지역주의에 온 몸으로 맞서 싸웠다고 말하는 정치인 노무현이 다수 유권자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이 되고, 영남당과 호남당으로 규정되었던 한나라당과 민주당 주도의 탄핵 사태가 오히려 이들을 궤멸 직전 상황까지 몰고 가는 계기가 되고, 반지역주의를 모토로 등장한 열린우리당이 민주화 이후 최초로 총선에서 과반수를 획득할 수 있는 상황에서 지역주의 때문에 나라 망한다는 주장을 했다면 정말 이상했을 것이다.

취임 초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의 유권자를 민주주의의 승리를 가져온 “위대한 국민”으로 정의했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 “모든 것은 국민의 뜻에 따라 하겠다”고 말했다. 탄핵 반대 촛불시위가 전국을 덮고, 열린우리당이 압승하고, 그야말로 잘 나갈 때야 모두들 위대한 시민을 찬양했다. 그런데 2005년 들어와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대연정”을 제안하면서 담론은 급격히 달라졌다. 갑작스럽게 한국의 시민들은 “지역주의에 사로잡힌 유권자”로 호명되었고, 지도자의 결단이 역사를 이끄는 데 따라야 하는 존재로 정의되기 시작했다. 어제의 위대한 시민은 하루아침에 지역주의 투표나 하는 비이성적 존재로 야단맞게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었다. 2009년 6월 3일, 국정 기조를 전환하고 내각과 청와대를 대대적으로 개편해 달라는 당 안팎의 요구에 대해 입장을 밝히면서 이명박 대통령은, “지역주의와 같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힘을 쏟아야지 왜 엉뚱한 이야기를 하느냐고 응수했다. 현실의 문제를 회피하는 데 “문제는 지역주의다”라는 담론만큼 좋은 알리바이가 없음을 잘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식의 유사한 예는 수도 없이 많다. 왜 이럴까? 그때마다 갑자기 망국적 지역주의가 시민들 사이에서 다시 고개를 들고 있어서 그랬을까? 고개를 들고 있었던 것은 시민이나 유권자들 속에 있는 지역주의가 아니라, 모든 문제를 지역주의로 설명하면서 상황의 어려움을 지역주의 때문으로 합리화하려는 집권 세력의 욕구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5) 호남에 대한 편견을 그야말로 “허위의식(false consciousness)”이다, 망국적 지역주의론은 그것이 변형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한국 정치를 지역주의로 몰아붙이는 대책 없는 논리를 비판적으로 보아야 한다, 이런 식으로 말했지만, 혹자는 그래도 지역주의는 있는 것 아니냐고 반론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근거로 지역별로 표의 큰 편차가 존재한다는 사실, 특정 지역이 특정 정당에 의해 독점적으로 대표되는 선거 결과의 문제를 들 것이다. 요컨대 적어도 표의 지역별 편차만큼 지역주의 문제가 존재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지역주의를 비판하는 많은 사람들은 규범적 판단의 기준으로서 모든 지역에서 표의 분포가 동일해야 한다고 전제한다. 그러나 한국과 같이 중앙정부의 자원 배분 능력이 크고, 주요 정당의 이념적 분포가 협소하고 계층적 기반의 차이도 약하며, 정치 엘리트의 집단적 결속에 있어서 학연이나 지연과 같은 1차적 유대가 크게 작용하고, 주류 언론이나 거대 재벌과 같이 권위주의 구체제의 영향력도 강한 분단국가에서 표의 분포가 동질적이기를 기대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신화에 가깝다.

이런 사회구조에서는 못 배우고 못 가진 하층에 대해 배제하고 차별하는 지배자적 심리 구조가 커질 수밖에 없다. 어떤 집단이든 이에 도전하고자 한다면 그에 대한 배타적 낙인과 편견은 얼마든지 작위적으로 만들어지고 동원될 수 있다. 과거 4·3 사태 이후 제주가 그랬고, 그 뒤 호남이 그랬으며, 지금은 같은 피를 나눴다고 하는 조선족이 외국인 노동자보다 더 차별받는 운명이 되었다. 따라서 지역이나 출신과 같은 1차적 유대가 인위적으로 동원되는 구조나 조건을 문제 삼지 않고 선거 결과의 지역적 차이를 무작정 지역주의 때문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사태를 왜곡하는 것에 불과할 때가 많다.

6) 정당들의 지지 기반이 지역이라는 변인에 크게 영향 받게 된 것은 선거 경쟁만 개방되었을 뿐, 권위주의 하에서 주형된 우리 사회의 불평등한 권위 구조가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가권력과의 거리에 의해서 과도하게 좌우되는 가치의 분배 구조, 그것의 공간적 특성이라 할 수도권으로 초집중화된 사회구조, 소수의 집단이 사회 여러 부분의 혜택을 독점하는 동심원적 엘리트 카르텔 구조, 좁은 이념적 범위 안에서 조직되고 계층적 차이에 의해 차별화되지 못한 보수 독점적 정당체제, 이런 구조와 조건에서 만들어진 하층 배제적 사회 문화 등등, 민주화 이후 응당 개혁되어야 할 것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지역적으로 큰 편차가 나는 선거결과는 이런 구조와 조건들 때문에 만들어지고 지속되어 온 것이며, 당연히 이런 구조와 조건들이 변화되고 개혁되면서 개선될 문제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한국의 유권자와 정당을 사로잡는 지역주의적 욕구 때문이라며 흥분하면서 정작 개혁해야 할 문제를 보지 못하게 하거나, 그러한 개혁 과제를 회피하는 알리바이로 삼을 일이 아니다.

7) 거시적 차원에서 본다면, 이상 살펴본 잘못된 “지역주의적 해석 틀”은 한국의 정당체계가 사회의 갈등 구조와 좀 더 상응하는 방향으로 좋아지면서 서서히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모든 문제를 거시 구조적인 것으로 다루는 것은 문제가 있다. 어떤 경우든, 제한된 조건에서든, 인간의 실천적 노력을 적극적으로 이끄는 접근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장기적으로는 정당체계가 좋아질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단기적으로는 우리의 언어 습관 내지 이해 방법에 작은 변화가 있었으면 한다.

무엇보다도 아무런 내용 없이, 과도한 규범성과 이데올로기적 특성만으로 갖게 된 지역주의적 해석 틀이 절제되기를 희망한다. 한국정치가 지역을 둘러싸고 또 지역성을 매개로 갈등이 표출되게 된 수많은 차원의 문제와 개선해야 할 문제가 많은데, 이를 일률화해서 이데올로기화 하지 않았으면 한다. 지역주의 용어의 사용도 줄었으면 한다. 사실 지역주의라는 용어는 1990년대 이전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그 이전에는 보통 지역감정, 지역 차별, 지역편견과 같은 용어가 사용되었고, 1987년 대선과 이듬해 총선을 거치고 나서야 지역갈등이나 지역균열, 지역구도과 같은 개념이 등장했다. 그러다 1990년 3당합당 이후 지역과 관련된 갈등을 뭔가 더 세고 강하게 표현하려는 의도에서 지역“주의”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했고, 탈지역주의, 반지역주의, 망국적 지역주의, 호남지역주의, 영남지역주의, 저항적 지역주의, 패권적 지역주의 등과 같은 이른바 “조어 만들기” 경쟁이 이어졌다. 그러면서 과거 사용되었던 지역 관련 용어를 대신해 지역주의라는 표현이 확고하게 자리잡게 되었고, 지역민 일반의 의식과 행태를 통칭하는 의미 내지 해서도 가져서도 안 되는 의식과 행태라는 부정적 규범성을 가리키는 지극히 이데올로기적 용어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아졌다.

솔직히 지역주의라는 지나치게 통칭되는 용어보다는 (전라도에 대한) 지역편견, 차별과 같이 구체적인 용어가 그보다는 훨씬 정확하고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선거 결과를 말할 때는 지역균열, 지역구도 등 얼마든지 객관적 용어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개념들 대신 지역주의라는 용어를 써서 얻을 수 있는 더 나은 토론이나 의사소통이 가능하면 모를까, 사태를 이데올로기화하는 데 기여하기만 한다면 아무 데나 지역주의 갖다가 붙여대지 않았으면 한다.

휴우. 이상으로 지역주의와 관련된 긴 내용의 강의를 마쳤다. 다음 시간에는 새로운 주제로 만나자. 복잡한 지역주의 문제를 생각해보느라, 모두들 고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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