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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칼럼

  • [장석준 칼럼(프레시안)] "심상정, 유승민, 홍준표는 대선 완주하라", 장석준 부소장(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심상정, 유승민, 홍준표는 대선 완주하라"

[장석준 칼럼] '양당 정치' 대 '다당 정치'

 

 

장 석 준(미래정치센터 부소장)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박근혜 정권의 몰락과 촛불혁명을 둘러싼 제도적 맥락으로 흔히 이야기되는 것은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다. 기성 정치에 보다 깊이 발을 담근 사람들일수록 모든 문제가 여기에서 비롯된 것처럼 말한다. 과연 그럴까?

내 생각은 다르다. 한국의 정치 제도와 정당정치 관행이 뒤얽힌 더 중요한 다른 문제가 있다. 그것은 양당 구도에 따른 정치(줄여서 '양당 정치'라 하자)냐, 아니면 다당 구도에 따른 정치(줄여서 '다당 정치')냐의 문제다. 이 틀은 이미 과거사가 된 박근혜 시대뿐만 아니라 지금 진행되는 조기 대선의 여러 양상을 이해하는 데도 유용하다. 어쩌면 ‘문재인 대 안철수’라는 표면적 대립 구도보다 더 눈여겨봐야 할 물 밑 쟁점일지도 모른다.



양당 정치의 정점이었던 2012년 대선과 그 산물, 박근혜 정권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에서는 양당 구도를 강요하는 힘이 마치 중력처럼 작동했다. 이 힘의 토대는 권력구조와 선거제도다. 내각책임제가 아닌 대통령중심제인데다 대통령 선거는 결선투표제가 없다. 그래서 한국의 대통령 선거는 전형적인 미국식 승자독식 선거다. 국회의원 선거 역시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이고, 그나마 있는 정당명부비례대표제는 장식품에 불과하다. 이런 제도 탓에 모든 관심이 1, 2위 정당으로 쏠리는 게 당연시돼왔다.

정당들은 이 제도에 적응해왔다. 아니, '적응'이라고만 하면 정확하지 않다. 민주화 초기에 이런 제도를 앞장서서 선택한 것은 주요 정당들 자신이기 때문이다. 카리스마적 대중정치가인데다 열렬한 지역 지지 기반을 지녔던 김영삼, 김대중에게는 이런 제도 조합이 유리해보였고, 실제로 이를 통해 대권을 쥐었다.  

이후 한국 정치에서 여당이나 집권 유망한 제1야당이려면, 카리스마를 지녔거나 아니면 지닌 것처럼 보이기라도 하는 정치인을 갖춰야 했다. 이게 김대중 정부가 노무현 정부로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이고, 지금에 와서는 한낱 소극으로 느껴지지만 이명박, 박근혜 시대의 한나라당-새누리당이 전성기를 구가한 비결이다.  

흔히 차기 대권 주자로 불리는 이런 카리스마적 정치인의 정당들은 통상적인 보수-진보 구분을 넘어서는 포괄 정당, 잡식 정당이었다. 차기 집권을 위해 상하, 전후, 좌우를 가리지 않고 모든 자원을 빨아들였다. 양대 정당 중 어느 쪽이든 고위 관료, 재계 출신이 재야운동가와 공존했다. 둘 다 시장경제를 강조하면서 복지도 힘주어 말했다. 그러다 보니 이념이나 정책은 쟁점에서 늘 뒤로 밀려났다. 주요 정당 간에 별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간 진보정당이 성장하기 힘들었던 데는 정치제도뿐만 아니라 이런 실용주의 정치 지형 탓도 컸다.

정치제도와 이를 둘러싼 정당들의 적응 전략이 맞물리며 양당 정치의 틀이 짜였다. 그렇다고 양당 구도가 완전히 정착된 것은 또 아니었다. 다당 구도가 등장하기 무척 힘든 제도 여건에도 불구하고 양당 구도를 흩뜨리는 힘 또한 계속 작동했다. 매번 대선에는 상당한 득표를 하거나 의미 있는 위상을 점한 3위(혹은 4위까지도) 후보가 존재했다. 그리고 이런 대선 구도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 정당 부상으로 이어졌다. 양당 정치에 만족하지 못하는 시민사회 내 흐름이 분명히 존재한 것이다.  

이 점에서 양당 정치의 최고 정점은 2012년 대선이었다. 이 대선에서 처음으로 어떠한 의미 있는 제3후보도 없이 양강 후보가 접전을 펼쳤다. 87년 헌법과 선거제도가 수립되고 25년이나 지난 뒤에야 양당 정치가 가장 순수한 형태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 결과, 민주화 이후 최초로 50% 넘는 득표율을 기록한(부정선거 효과는 일단 논의로 한다면) 대통령이 탄생했다.

그 사람이 박근혜였다.  



박근혜 정권의 몰락은 양당 정치의 모순 폭발 과정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중은 '블록(bloc)'으로 존재한다. 계급도 있고 세대도 있고 정체성 집단도 있지만, 이를 가로지르거나 아우르는 블록이야말로 권력에 영향을 끼치는 실체다. 정치를 배제한 일체의 환원론(계급 환원론이든 세대 혹은 지역 환원론이든)이 설명력이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이런 까닭에 대중정당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기도 하다. 블록이 구성되고 해체되고 다시 구성되는 데 촉매 역할을 하는 것은 항상 대중정당이기 때문이다.

박근혜가 51%의 지지를 모았다는 것은 한 번의 기록 경신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51%의 대중 블록이 등장했다는 의미다. 편의상 이를 ‘박근혜 블록’이라 불러보자.

박근혜 블록에는 한국의 양당 정치 경향에 나타나는 모든 특징이 집약돼 있었다. 박근혜 블록은 참으로 다양한 집단들을 하나로 이었다. 그러지 않고야 51%가 만들어질 수 없었다. 잡다한 집단들 사이의 이음매 구실을 한 것은 아버지 박정희의 카리스마를 빌린 박근혜였다. 지금이야 카리스마적 정치인은커녕 정치'인'인지도 의심받지만, 아무튼 새누리당은 그가 그런 인물인 듯 내세우는 데 성공했다. 인물 정치의 끝판은 이렇게 인물로 남을 속이고 자신마저 속이는 사기극이었다.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은 실용주의 정치의 끝판 또한 보여주었다. 야권 결집을 막고 자기 지지층을 확산하기 위해 야권의 핵심 담론을 날름 삼키는 곡예를 벌였다. '복지'와 '경제 민주화'를 들고 나온 것이다. 그 덕분에 야권 핵심 지지자가 박근혜 후보 쪽으로 넘어오지는 않았어도 박근혜 핵심 지지층하고 거리가 먼 수도권 자가 소유자들이 별 고민 없이 박근혜 지지를 선택하는 데는 분명 큰 도움이 됐다.  

마지막은 승자독식 정치제도의 끝판이었다. 사실 노무현 정부 실패 이후 한국 정치는 전에 없던 다당 구도를 보였다. 그러나 2012년 대선은 이를 전에 없던 양강 구도의 절정으로 반전시켰다. 박근혜는 한 표라도 더 많은 자가 승리하는 승자독식 선거 논리를 '51 대 49'라는 거의 수학적인 아름다움을 갖춘 비율로 구현해냈다.  

실은 야권이 맞장구를 쳐주었기에 가능했던 결과다. 2008년 촛불 시위 이후 범민주당 세력과 시민사회 내 그 지지자들은 다당 구도를 어떻게든 양당 구도로 되돌리려고 무진 애를 썼다. 20년만에 민주대연합 담론이 다시 유행했고, 범민주당의 정권 탈환에 장애가 될 만한 잔가지들은 모두 정리됐다. 가장 이질적인 방해 요소인 진보정당들마저 순치시킨 뒤에 다시 안철수 현상이 등장했지만, 이마저도 막판에 결국 정리해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한국 정치사에 전무후무한 양강 대결 구도가 구축됐다.  

이 모든 양당 정치화 노력의 결말은 무엇이었던가? 패배한 49%는 철저히 무시됐다. 박근혜 정부의 '복지', '경제 민주화' 공약 폐기는 박근혜 블록에 큰 균열을 내지는 않았다. 이것들은 51%한테는 박근혜 지지의 정당성을 높여주는 의제였지 지지 여부를 좌우하는 의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블록 바깥의 시민들에게는 충분히 큰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집권 첫 해부터 49%의 '좌절'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촛불혁명이 타오를 수 없었다. 박근혜 블록의 와해가 필요했다. 세월호의 비극, 메르스 사태를 통해 박근혜 정부의 무능이 확인되자 완만한 속도나마 와해가 시작됐다. 그러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이 파도는 해일이 됐다. 49%의 '좌절'에 더해 51% 중 상당수의 '실망(더 나아가 환멸)'이 더해지면서 촛불혁명의 대열이 완성됐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게 있다. 난공불락 같던 박근혜 블록이 결정적으로 무너지는 과정이다. 여기에서 양당 정치는 별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의 반대편이 영향력을 늘려 박근혜 블록의 가장자리를 허물어뜨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다당 정치의 물꼬를 트려는 힘이 박근혜 정부를 둘러싼 좌절/실망과 결합하면서 박근혜 블록의 상당 부분을 중심(지금도 박사모-탄기국으로 남아 있는)으로부터 떼어냈다.

첫 번째 계기는 국민의당의 등장, 즉 양당 구도의 야당 쪽 분화였다. 이 당은 박근혜 블록 이탈층을 정치적으로 실체화하는 도구가 됐다. 덕분에 4월 총선에서 여소야대 국회가 출현하면서 촛불혁명의 무대 배경이 완성됐다. 안철수나 국민의당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와 상관없이 이 사실은 냉정하게 인정해야 한다.  

두 번째 계기는 새누리당의 분당, 즉 양당 구도의 여당 쪽 분화였다. 촛불혁명의 강력한 힘이 새누리당을 관통해 바른정당과 자유민주당이 경쟁하는 정치 지형을 낳았다. 이 지형 위에서 박근혜의 탄핵, 파면, 구속이 실현됐고, 정권 교체가 기성사실이 돼버린 조기 대선 구도도 짜여졌다.  

이렇게 보면 박근혜 정부의 몰락이란 2012년 대선으로 정점을 찍었던 양당 정치의 모순이 폭발한 과정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다당 정치화 경향은 대중의 쓸모 있는 정치적 무기가 되어주었다. 촛불혁명에는, 의식했든 못했든, 다당 정치화 경향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문재인 대 안철수'보다 중요한 쟁점 – 양당 정치 회귀인가, 전면적 다당 정치인가

물론 지금 진행 중인 조기 대선의 양상은 또 다르다. 다시 양당 정치 회귀 경향이 나타난다. 역사적 관성도 관성이려니와 제도의 강한 규정력 때문이다.

5인의 주요 후보가 경쟁하는 양상 자체는 다당 정치의 모습이다. 그러나 1, 2위를 다투는 두 후보 진영에서는 양당 정치로 돌아가려는 힘이 작동한다. 문재인 지지자들 일부와 언론은 심상정 후보가 중도 사퇴하는 것을 기정사실화한다. 다당 정치화의 틈을 연 안철수 후보 진영에서조차 '반문 연대'라는 익숙한 프레임이 등장한다.  

말하자면 지금 한국 정치는 양당 정치와 다당 정치 사이에서 동요하고 있다. 조기 대선과 이후의 정치적 각축에서 핵심 쟁점은 양당 정치 회귀인가 아니면 전면적인 다당 정치인가 이다. 어쩌면 이것이 문재인과 안철수 중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느냐보다 우리의 미래에 더 중요한 쟁점일지도 모른다.  

양당 구도와 다당 구도의 선택은 선악의 판단과는 관계없다. 둘 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다만 한국 사회는 이미 복잡하게 발전한 사회임을 고려해야 한다. 게다가 그 동안 양당 정치로 해결하지 못한 모순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더욱 복잡해졌다. 이런 사회에는 이제 다당 정치의 처방이 더 필요한 게 아닐까.  

물론 이론상으로는 양당 정치에서도 다양한 이해관계들의 협상과 합의는 불가능하지 않다. 굳이 다수 정당이 분립해서 경쟁, 협상하지 않아도 거대 대중정당 안에서 분파들 사이의 경쟁과 타협을 통해 사회 갈등을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민주당 대선 후보 예비경선이 한 사례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서로 이질적인 안희정, 문재인, 이재명 진영이 경합해서 만들어낸 결론인 문재인 후보는 안희정 지지층과 이재명 지지층이 바라는 바의 종합을 구현한다(?). 

하지만 너무나 오랫동안 한국 사회는 이게 공론에 불과함을 경험해왔다. 가령 잡식성 양대 정당은 늘 아파트 담보 대출을 끼고 있는 중산층과 무주택 서민, 청년층을 동시에 대변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두 집단 모두 이익을 얻는 정책이 추진됐던가? 아니다. 언제나 좀 더 영향력 있는 계층의 입장이 당론이 됐다. 두 거대 정당에서 모두 결론이 이러하니 제도 정치에서 무주택자와 같은 진짜 약자의 목소리는 듣기 힘들었다. 이들 계층에게는 대의제 자체가 작동하지 않았다. 

이런 경험이 쌓이고 또 쌓이다 보니 인물 정치가 과도하게 부각되기도 한다(이른바 '빠'의 정치). 얽힌 매듭을 풀라고 하니 칼로 댕강 잘라버렸던 알렉산더 대왕처럼 그간 양당 정치의 부조리 때문에 꼬일 대로 꼬인 모순들을 일거에 타파할 영웅을 대망한다. 대선 때마다 그렇다. 그러나 그런 영웅은 없다. 과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도 그런 영웅은 아니었고, 더군다나 21세기에 기적을 대망한다는 것은 자기기만일 뿐이다.  

이런 점들을 따져 보면, 아무래도 지금 한국 정치에 필요한 처방은 다당 정치의 강화다. 이념과 정책의 차이, 계급-계층 대표성을 분명히 하는 여러 정당들이 분립하면서 시민사회 안의 다양한 이해관계들을 협상, 합의해야 한다. 이러는 편이 거대 정당 내부의 분파 투쟁이나 막후교섭보다는 훨씬 더 '투명하고' '지속적으로' 이해관계들을 협의, 조정하는 방식이다. 다당 정치의 강화는 꼬인 실타래를 (끊어내는 게 아니라) 하나하나 풀어내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심상정, 유승민, 홍준표는 끝까지 분투하라  

나는 이번 대선이 다당 정치 시대를 여는 결정적 계기가 되길 바란다. 누가 대통령 자리를 차지하든 말이다. 그래서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양강 접전의 틈바구니에서도 힘든 싸움을 포기하지 않길 바라며,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도,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도 그러길 바란다.

이들이 완주한다고 해서 곧바로 바람직한 다당 구도가 자리 잡는 것은 아니다. 기존 양당 구도가 무너졌다는 점만 제외하면 지금 국회는 촛불혁명 이후의 민심으로부터 한참 동떨어져 있다. 20대 국회는 다당 정치에 맞는 선거제도(가령 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 스스로 임기를 단축해 새 국회 선거를 앞당기는 것이 역사적 사명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게 국회가 마지막까지 촛불혁명에 부응하는 길이다.  

하지만 이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도 일단은 다당 정치 시대를 더욱더 돌이킬 수 없는 현실로 굳혀야 한다. 그러니 심상정, 유승민, 홍준표 후보는 분투하라. 어김없이 '단일화'를 훈수 두는 구태의연한 언론보다 당신들은 훨씬 더 멀리 앞에서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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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justicei.or.kr/695?category=567220 [정의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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