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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칼럼

  • [장석준 칼럼] 이 정국의 변수는 촛불을 든 우리다! (프레시안-미래정치센터 공동)

<조선일보>, 박근혜 도려내고 권력접수?

이 정국의 변수는 촛불을 든 우리다

 

 

 

 

장 석 준 (미래정치센터 부소장)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힉위원

 

  

“민주공화국이 위기에 처했다!”

 

지난 며칠간 정국이 숨 가쁘게 요동치는 가운데 내 가슴 속에 그리고 동료 시민들의 아우성 속에 끊임없이 반복된 말들은 결국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공화국이 위기에 처했다!”

 

눈이 아플 정도로 선명한 빨간 불이 켜졌고, 귀를 틀어막고 싶을 만큼 시끄러운 경보음이 울렸다. 그간 심각하게 부패했으리라 짐작만 하던 정치 체제가 실은 더 이상 회생 불가능할 정도로 껍데기만 남은 신세라는 사실이 갑자기 눈앞에 드러나며 우리 모두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체제의 약속을 그대로 믿었던 우리는 아니다. 민주공화국이라면 시민혁명 정신이 살아 있는 나라일 테고 대한민국 헌법 제1조만 해도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며 시민혁명 이념을 요약하고 있지만, 이걸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촛불에 물대포로 답하는 나라에서 그럴 수는 없었다. 

 

하지만 헌법의 약속과 실상이 다름을 뻔히 알면서도 그 격차에 그래도 한도는 있을 줄 알았다. 국가가 사회주의 고전에서 말하는 ‘자본가계급 집행이사회’ 쯤은 될 줄 알았다. 어느 것 하나 사리사욕 아닌 것 없는 안건들을 다루겠지만 어쨌든 회의실에 모여앉아 어엿한 회의 문서를 넘기며 제 욕심 챙기는 정도의 격은 갖추었을 줄 알았다.

 

오판이었다. 미몽이었다. 부패는 우리 머릿속의 막연한 한도를 훌쩍 뛰어넘었다. 공화국을 실제 통치한 것은 무슨 이사회 같은 게 아니라 이성의 불빛이 잠자는 어두컴컴한 사당이었고, 또 아직 확인되지 않은 풍문에 따르면 유흥업소의 밀실 혹은 유한부인들의 마사지실이었다. 이렇게 좁고 음침한 공간에서 기획된 부패이지만, 그 정도는 가히 ‘영혼’과 ‘우주’의 수준을 넘나들었다. 이제야 실상이 드러난 청와대의 무능력자는 이 부패극의 한낱 괴뢰였다. 지난 4년간 이렇게 공화국은 실종 중이었다. 우리는 존재하지도 않는 공화국의 시민이었다.

 

지금이라도 실상을 알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할까. 껍데기조차 무너져 내리기 전에 민주공화국을 되살릴 기회가 생겼으니 말이다. 우리 모두 그런 마음으로 지난 며칠을 넋 나간 듯 보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우리’ 안에 낯선 이들이 섞여 있더라는 것이다. 이른바 ‘조중동’. 보수언론들이다. 한편으로는 이제 이들까지 우리 편이냐며 마음이 들뜨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계속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정말 그들은 ‘우리’인가?

 

제1막은 궁정혁명

 

지금 그들은 단지 ‘우리’ 안에 섞여 있기만 한 게 아니다. 곰곰이 따져 보면, 지난 1주일 동안 정국 급반전에 마침표를 찍은 것은 “박근혜는 끝났다”는 보수언론의 단호한 판단과 결연한 논조였다.

 

물론 최초의 파문은 <한겨레>, JTBC(이 방송 또한 중앙일보의 종편 채널인 점은 논외로 하고) 등의 잇단 폭로 보도에서 비롯됐다. 폭로가 너무도 충격적이어서 보수언론으로서도 어느 편에 설지 고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주말 조중동의 어조는 단순히 시류에 끌려가는 것 이상이었다. 심지어 이들의 사설 논조와 종편 채널의 시위현장 중계방송이 거리에 나선 시민들의 자신감을 높여줄 정도였다. 

 

현 국면에서 보수언론은 결코 조연이 아니다. 어쩌면 주연은 이들이다. 박근혜와 최순실을 둘러싼 추악한 진실들이 조금씩 드러난 것은 이들의 손아귀 바깥에서 벌어진 우연들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우연의 고리들을 엮어 필연의 사슬로 만들고 있는 것은 누구보다 보수언론이다.

 

청와대가 유명무실해졌고 새누리당이 무력한 상황이기에 더욱 그렇다. 일선 정치 담당자들이 치명타를 입었기에 이제 보수언론이 이들 대신 사령부로 나서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지배층을 대표하는 ‘정당’은 조중동이다.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은 <조선일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조선일보>는 이미 청와대와 치열한 권력 암투에 돌입해 있었다. 그런 <조선일보>이기에 JTBC의 폭로 보도 이후 가장 기민하고 선명하게 입장을 정할 수 있었다.

 

이후 <조선일보>는 매일 아침 사설과 기명 칼럼에 지침을 담아 내보내고 있다.

 

“박근혜는 끝났다. 그러나 탄핵과 하야는 해법이 아니다. 거국중립내각을 이끌 총리부터 임명하라. 그러고는 개헌 정국으로 돌입하라.”

 

지금 새누리당은 정확히 이 지침에 따라 움직인다. 

 

실은 새누리당만이 아니다. 사령부의 지령을 직접 따르지는 않더라도 결과적으로 그 손발 노릇을 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이 있어서 보수언론이 그리는 전체 그림이 맞춰지고 있다. 바로 민주당과 국민의당이다. 두 당은 만약 탄핵이나 하야를 추구한다면 대립 전선이 크게 바뀔 것이라는 보수언론의 신호에 우호적인 답신을 계속 보내는 중이다. 말하자면 기득권층의 비상 사령부가 내놓은 가이드라인을 철저히 준수하고 있다. 공포인가 아니면 교감인가. 아무튼 적어도 지금까지 두 당의 태도는 이렇다.

 

이렇게 탄핵이나 하야 가능성을 차단한 후에 보수언론이 노리는 바는 개헌 정국이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이미 당론으로 받아들인 이른바 ‘거국중립내각’을 통해 박근혜 따위는 잊고 개헌 논의를 시작하자는 것이다. 김종인, 손학규 등 총리감까지 이야기되고 있다. 모두 개헌론자들이다.

 

이 시국에 왜 하필이면 개헌인지는 4월 총선 이후 보수 세력이 위기 대응책으로 줄곧 개헌 카드를 만지작거렸던 이유와 다르지 않다. 개헌은 정치 세력들을 위로부터 새로 재편할만한 쟁점이기 때문이다. 사령부는 기성 거대 정당들 사이의 상층 논의를 통해 기존 지배 질서와 발 맞춰 나갈 새 정당 체제를 짜려 한다. 

 

한데 개헌 논의는 박근혜가 참혹한 몰락이 시작되기 몇 시간 전에 마지막으로 던졌던 승부수가 아닌가? 그 개헌 카드를 계속 꺼내든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보수언론이 구상하는 바의 핵심과 마주한다. 그것은 바로 ‘박근혜 없는 박근혜 체제’다.

 

JTBC 보도 이전부터 알고 있었건 그제야 알게 됐건 박근혜-최순실은 보수언론이 보기에도 한도를 너무 넘어선 추문 덩어리였다. 청와대의 무능력자야말로 민주공화국의 외양을 유지하면서 기득권을 챙기던 안온한 관성에 가장 치명적인 위협으로 밝혀졌다. 그래서 보수언론은 청와대 무장 해제 작전의 사령부를 자임하고 나섰다. 박근혜만 도려낸 채 이제껏 박근혜 정권이 추진해온 전략과 정책을 이어가기 위해서 말이다. 그 전략 중에는 개헌도 있다.

 

이런 점에서 지난 1주일간 벌어진 일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은 ‘궁정혁명’이다. 궁정동의 총탄을 대신하는 펜과 카메라의 반란이다. 자칫 대선 닥쳐서 폭로됐으면 지배 세력에게는 대파국이 됐을지 모를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려는 ‘예방혁명’이고, 그대로 놔뒀다가는 지배층 전체를 낭떠러지에 빠뜨릴 성 싶은 박근혜를 숙청하려는 ‘자정혁명’이다. 이 위로부터의 혁명은 일단 지금까지는 거침없이 승리하고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주연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궁정혁명에는 딜레마가 있다. 무능한 왕을 몰아내려면, 성난 민심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민심은 어느 정도는 민란으로 터져 나와도 좋다. 궁정혁명 주역들이 사태를 수습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라면 말이다. 하지만 한 번 터져 나온 민심은 그침을 모른다. 위로부터의 궁정혁명은 자칫 아래로부터의 대중혁명으로 비화할 수 있다. 그 칼끝은 이제 시체나 다름없는 왕뿐만 아니라 궁정혁명 주역들에게도 향한다.

 

10월 29일(토) 첫 번째 촛불 시위를 생중계하는 종편 채널들의 시선에서 이런 딜레마를 읽을 수 있었다. 이들은 청와대 포위 작전을 신속히 끝내기 위해 당장은 시위 참여자가 많았으면 하면서도 시위대가 철저히 자신들의 가이드라인 안에서만 움직이길 바라는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여기에서 우리는 최초의 주연이 직면한 딜레마뿐만 아니라 또 다른 주연의 등장과 마주하게 된다.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촛불 시민, 바로 촛불을 든 우리다.

 

우리야말로 이 정국의 최대 변수다. 우리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야말로 밀실 기획가들이 예측하기 힘든 변수다. 이 말에는 어떤 과장도 없다. 지난 토요일 이 ‘우리’가 처음 모습을 드러내자 궁정혁명이 힘을 받기도 했지만 또한 미묘하게 흔들리기도 했다. 원내 양대 야당조차 무기력하게 끌려가는 중인 개헌 정국 시나리오에 시끄럽게 딴 소리를 낼 단 하나의 세력이 최초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 세력은 박근혜의 ‘2선 후퇴’가 아니라 ‘퇴진’을 원한다. ‘책임총리’가 아니라 ‘조기 대선’을 원한다. ‘개헌’이 아니라 ‘개혁’을 원한다. 무엇보다도 이 세력은 ‘박근혜 없는 박근혜 체제’를 원하지 않는다. ‘괴뢰’ 박근혜의 퇴장과 함께 그를 내세워 연명하던 체제도 해체하길 원한다.

 

해체 뒤에 그 자리를 차지할 내용들은 차고 넘친다.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권리 확대, 공공부문 사유화 중단, 복지의 대폭 확충, 사드 배치 철회, 핵발전소 폐지, 정치 개혁 ... 오랜만에 열린 광장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이야기가 너무도 많다.

 

이제야 우리의 말문이 터지려 하고 있다. 얼마나 소중한 광장인가. 마땅히 이 광장은 전국 방방곡곡으로 확산돼야 한다. 그렇게 확산된 광장들이 제2막의 주 무대가 돼야 한다. 궁정혁명이 아니라 광장혁명이 시작돼야 한다. 그러자면 전두환을 놔두고도 새로운 미래의 설계가 가능할 것처럼 생각했던 1987년을 반복할 수는 없다. 박근혜는 퇴진해야 한다. 기성 정당들이 저희들끼리의 밀실 협상으로 새 헌법을 짜는 꼴을 지켜만 보던 1987년을 재연할 수는 없다. 개헌 정국은 대중이 열어야만 한다. 우리는 30여 년 전의 우리가 아니다.

 

우리는 이제 이 진실을 입증해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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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justicei.or.kr/650?category=567220 [정의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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