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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칼럼

  • [미래정치센터 칼럼] 행정부의 월권, 사법부의 월권, 입법부의 무기력

 

이기중(미래정치센터 부소장, 공인노무사)

 

 

노사정위원회가 13일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편에 관한 합의를 타결했다.

 

일단 실제로 합의된 것은 통상임금, 휴일근로의 연장근로 포함, 실업급여 확대 및 출퇴근 재해의 산재인정 등이다.

 

첨예한 쟁점에 대해서는 당장 결론을 내리는 것을 피해갔다. 일반해고에 관해서는 ‘근로기준법 규정 및 판례에 입각하여 근로계약 해지 등에 관한 기준과 절차를 명확히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취업규칙 변경요건에 관해서는 ‘단체협약 및 취업규칙 개정을 위한 요건과 절차를 명확히 하고 이를 준수한다’는 내용이다. 행정부의 가이드라인 발표를 전제로 한 것이지만, 여전히 ‘방안을 노사와 협의하기로’ 했으니 실제로 합의된 것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기간제 사용기간 4년 연장과 파견근로 확대에 대해서도 당장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합의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이 합의사항인 셈이니, 앞으로도 계속 지켜봐야 할 것이다.

 

나름 노동법을 공부하고 그것으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으로서, 이번 행정부의 ‘노동개혁’을 보며 이 나라에서 노동법이 얼마나 무기력한 것인지, 다시 한 번 느낀다. 노동법은 행정부와 사법부의 월권으로 끊임없이 훼손되어 왔고, 입법부는 이를 그저 구경만 해왔다.

 

통상임금 문제. 정기상여금, 식비, 교통비 등의 명목으로 고정적,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금품은 통상임금으로 인정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고 법원이 그렇게 판결해왔다. 행정부는 행정해석을 통해 매월 지급되고 이름이 ‘기본급’이어야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사법부의 판단에 배치되는 입장을 계속 유지했고 이 때문에 수많은 노동자들이 임금체불진정이 아닌 소송을 통해서만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었다. 사법부가 판단해야 할 통상임금의 해석에 관한 문제를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에서 GM회장에게 ‘해결하겠다’고 약속한 후, 대법원은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기로 한 노사합의에 반하여 연장수당을 청구하는 것이 기업의 경영에 어려움을 초래할 경우 신의칙에 반한다’는 기상천외한 판결을 내놓았다. 행정부가 대법원의 판결에 영향을 미치고, 대법원이 행정부의 청부를 받들어 ‘강행법규도 회사가 어려우면 무효가 될 수 있다’는 최악의 선례를 남긴 것이다. 행정부는 만족했고, 이제야 행정해석을 대법원 판례에 맞게 바꾸겠다고 한다.

 

휴일근로의 연장근로 포함 문제. 근로기준법은 1주의 근로시간을 40시간으로 하고, 연장근로는 12시간을 한도로 정하고 있다. 1주일이 7일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자명한 사실인데도 행정부는 1주일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이고, 그래서 휴일에는 8시간씩을 더 일할 수 있으니 1주일의 근로시간 한도는 68시간이 되어야 한다고 우겨왔다. 법원은 당연히 1주일이 7일이라고 판단해왔으나, 최종심에선 또 어떤 괴이한 논리가 등장할지 모를 일이다.

 

위 두 가지가 이번에 노사정위원회에서 실제로 합의된 사항이다. 애초부터 행정부가 사법부의 판단에 따랐으면, 아니 일반의 상식에 맞는 법 해석을 했다면 쟁점이 될 일조차 없는 문제였다. 1주일이 대체 7일인지 5일인지가 노사정의 합의의 대상이 되었고, 행정부는 고맙게도 ‘앞으로는’ 1주일이 7일이라는 것에 동의해준다고 한다.

 

일반해고 문제. 근로기준법은 해고의 구체적인 사유를 나열하지 않는다. 그저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해고 사유를 법에 나열하면 법에 명시되지 않은 사유로는 해고할 수 없고,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해고 사유를 법에 명시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당한 이유가 무엇인지는 오로지 사법부가 판단해왔다. 징계해고나 정리해고 뿐 아니라 저성과, 근무불량을 이유로 하는 ‘일반해고’는 이미 노동법 교과서에도 있고 현실에서도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며 법원이 수차례 정당하다고 확인해준 바 있다. 그럼에도 행정부는 세상 어디엔가 불성실하고 성과도 못 내면서 철밥통을 차지하고 있는 노동자를 해고할 방법이 없어 고통 받는 사용자가 있다면서 법적 효력도 없는 가이드라인을 반드시 알려줘야 한다고 말한다.

 

임금피크제 문제, 사실은 취업규칙 변경 요건 완화다. 근로기준법은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할 때는 과반수 노동조합이나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조항은 이미 형해화된지 오래다. 법원은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지 못한 취업규칙도 제정 후 신규입사자에겐 유효하게 적용된다는 판결을 내렸고, 그 다음엔 동의요건을 갖추지 못했어도 합리성이 있다면 유효하다고 인정했다.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법이 정했는데 ‘얻지 않아도 유효하다’고 판결했으니, 이 또한 사법부의 월권적 판결이다. 이렇게 형해화된 조항을 행정부가 확실하게 손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개별 쟁점은 구체적으로 보면 복잡하고 어렵지만 흘러가는 방향은 비슷하다. 행정부가 법에 반하는 해석을 한다. 사법부가 행정부와 반하는 해석을 할 경우, 행정부가 사법부를 압박하여 자신의 입장을 따르도록 한다. 당연한 법 해석은 ‘쟁점’이 되고 ‘합의’의 대상이 된다. 행정부는 해석이 아닌 법이 문제라며 법을 고치자고 한다. 행정부의 초법적 행정해석과 사법부의 정치적 판결로 형해화된 법 조항은 개정의 대상이 된다.

 

행정부의 월권, 사법부의 월권이다. 사법부의 월권은 행정부의 압박에 의한 것이니 사실상 행정부 독재다. 이러한 월권행위를 바로잡고 독재를 견제해야 할 입법부의 역할은 보이지 않는다. 입법부가 법을 만들어도 행정부가 그 법을 따르지 않고 사법부가 그 법을 제멋대로 해석한다면 대체 입법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정부의 ‘노동개혁’이 입법인지 가이드라인인지 행정해석인지 프로파간다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연일 반노조발언을 쏟아내는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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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justicei.or.kr/482?category=567220 [정의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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