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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친구 박창완(윤서아빠님 글)

이 글은 중앙 당원게시판에 올라온 윤서아빠(전 KIST 노조 지부장)님의 <내 친구 박창완>이라는 글입니다.공유하고자 시당 게시판으로 옮겨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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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하기 짝이 없는 민주당이 있습니다. 어렵게 국정조사를 시작해 놓고 새누리당에 끌려가고, 정보기관의 대선개입이라는 메가톤급 폭발력을 가진 사안을 단순한 정쟁의 흥정꺼리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민주당 보다 더 무기력한 진보정당이 있습니다. 아니 가장 무기력한 것은 제 자신입니다. 최초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당적이 바뀔 때마다, 그리고 나이를 더 먹을수록 정당활동에 대한 참여도와 세상을 바꾸겠다는 열망은 지속적으로 감소했습니다.

그런 저였기에 박창완에게 물었습니다. 이제는 그만둘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좀 쉬시고 다른 길을 찾아보시지요? 주말에 같이 산을 갈 때 어렵게 이런 말을 꺼낸 적이 있습니다. 그와 저는 12살 차이 띠동갑입니다. 하늘같은 형님이지만 제가 싸가지가 없어서 저는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질문에 약간 고민하는 척 하면서 하는 답변은 늘 똑같았습니다. “내 청춘을 걸었다. 나는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고, 진보정치를 위해 더 할 일이 남았다”. 제가 정말 친구라면 한심하다고 면박을 주고 싶었습니다. 진보정치에 한결같은 그의 마음이 존경보다는 집착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박창완을 처음 만난 건 2002년 대선 후 당 송년회였습니다. 그리고 말을 섞고 대포한잔 하기 시작한 건 2004년입니다. 아마 그 시절부터 주말이면 자주 북한산을 그와 올랐던 것 같습니다. 요즘도 그렇지만 그 시절의 박창완은 정말 까칠했습니다. 산행을 하다가도, 내려와서 막걸리를 먹다가도 진보정치와 관련된 주제에 관한 토론에서는 한치의 양보도 없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가끔 농을 하곤 했지요. ‘인상쓰지 말고 주름 빼고 이야기 하라고’

그의 까칠함이 어디서 왔을까 그와 친해지면서 나름 연구를 했습니다. 내가 연구한 그의 까칠함의 출발은 바로 주류와는 거리가 먼 진보정당 운동에서 비주류라는 것입니다. 박창완 후보의 삶의 이력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인생역정이었습니다. 집안형편 때문에 중학교를 중퇴하고 남들이 학교 다닐 나이에 직업전선에 뛰어듭니다. 그 후 회사에 취업해서 야간공고를 졸업하고 회사생활하면서 다시 야간 대학에 입학해서 졸업을 합니다. 모두가 부인하고 싶지만 진보정당에서도 학벌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박창완 후보는 그런 학벌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진보정당에서 보기 드문 한국노총 조합원입니다.

2007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날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민주노총과 시민단체가 주최한 집회가 열렸습니다. 굳게 닫힌 건물 철문을 열기위해 전경과 몸싸움을 하고 물대포도 맞았습니다. 그런데 자정이 지날 무렵 민주노총 협상단이 협상결과를 발표하며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자는 이야기를 했고 흥분한 집회참가자들이 항의를 했습니다. 그중에 박창완 후보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민주노총의 간부가 박창완 후보를 알아보고 “한국노총 조합원이 왜 여기에 와서 설치냐”라고 말을 하더군요. 아마 민주노총의 조직적 기반을 박창완 후보가 가지고 있었다면 진보정치에서 지금보다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박창완의 진면목은 까칠함 보다 추진력입니다. 문제제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결말을 내는 추진력입니다. 성북구의회 구의원들이 업무추진비로 단란주점을 출입했다는 사실을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입수하자마자 박창완 후보는 기자회견과 함께 주민서명을 받아 서울시에 감사청구를 했고 서울시가 이것을 묵살하자 전국 최초로 주민소송을 시작했습니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것을 박창완 후보가 만들어냈고 주민소송을 전국적 이슈로 만들어냈습니다. 성북구 구의원들의 터무니없는 의정비 인상에 대해서도 주민감사 청구를 하고 주민소송을 주도한 사람도 박창완입니다. 그는 흐지부지 일을 끝내지 않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추진력과 세상에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비판적 까칠함이 있기에 그는 아직 진보정치의 전장에 서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그가 또다시 서울시당 위원장으로 출마했습니다. 당원과 서울시민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는 본인의 믿음을 존중합니다. 1992년 이후 노동자, 서민을 위한 정치라는 명징한 노선을 꿋꿋하게 지켜온 그의 신념을 믿기에 까칠한 친구 박창완을 서울시당 위원장으로 추천합니다.

ps : 근래에는 까칠함의 빈도는 줄어들고 눈물의 빈도가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참으면 병이 됩니다. 남자도 울 줄 알아야지요. ㅋㅋ

 

참여댓글 (1)
  • 푸른호호
    2013.07.15 10:29:23
    선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