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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미경과 함께 노원! 함께 정의당!

▲일러스트_박수정(영등포당원)

그럼에도 다시 정의당 후보로 나서며
노원구 구의원 후보 박미경, 그는 여러 개의 직함을 거쳐 정의당의 후보가 됐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에 선전국장으로 상근활동을 했고, 지역아동센터 아동복지교사를 하며 어린이?청소년들을 만나왔다. ‘함께노원’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지역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섰고, 노원공동체라디오 노원FM 방송국장, 노원여성회 회장 그리고 최근 노원의 인권사랑방 ‘자람’ 공간까지 마련하며 노원의 풀뿌리 운동의 구심점을 만들어 온 활동가 박미경. ‘그럼에도 다시 정의당 후보’로 나선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진보정당 생활의 시작
박: 학생 때 민주노동당을 시작했어요. 졸업할 즈음 입당했고, 그땐 당 생활에 꽤 재미를 붙였던 것 같아요. 청년회도 활발했죠. 학교가 광진에 있었고 노원에 거주했어요. 그래서 자연스레 민주노동당 노원구위원회 활동을 시작했죠. 그땐 엄청 열심히 해야지, 라는 생각보다 선배들이 졸업하고 이어온 학생운동이 점차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뼈아팠던 것 같아요. 학부 때부터 유지해온 사회운동 성향을 버리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조직을 찾았고, 조직을 필요로 한 셈이죠. 실상 진보적이고 급진적이라기보다는 시민의 양심을 지키는 정도의 상태였죠. 민주노동당 노원구위원회 생활을 재밌게 시작했어요. 청년시절 입당해 지역위원회 활동을 한다니까 매우 반기는 분위기였죠.


지역위원회 활동의 의미
박: 다들 동네 사니까 편했던 것 같아요. 어떤 역할을 많이 맡기보단 실상 친교를 쌓았죠. 사실 지금은 정해진 일정을 소화하기도 빠듯한데, 그때는 지역위원회 활동이 그저 즐거웠어요. 당시 지역위 출마자를 돕고 자연스럽게 당 생활에 적응했죠. 그때 민주노동당은 당중심성이 강했고 당의 가치를 중심으로 내세워 여러 사회 의제들을 주도했어요. 대표적으로 무상급식 운동 같은 것이죠. 그런 의제들은 우리를 결집시키는 힘이 있었죠.


어쩌다 출마까지
박: 처음부터 출마를 결심하진 않았어요. 지역위 활동을 활발히 했는데, 선거는 매년 다가오잖아요. 여성할당제가 있었어요. 여성할당제를 지키자는 뜻에서 지역에선 늘 여성후보를 찾기도 했죠. 그런데 제가 여성이더라고요? (웃음) 출마에 대한 고민을 안 하다가 그때 문득 이어온 활동과 사회운동적 마인드랄까, 그런 걸 유지하기 위해 출마에 대한 고민을 안 할 수 없겠구나. 언젠가는 출마에 대한 입장을 정할 날이 올 꺼라 예감했죠.


2018년 생에 첫 출마
박: 2018년 지방선거 때 정의당 노원구 후보로 출마했어요. 후보로 뛰는 게 낯 설지는 않았죠. 배우자가 민주노동당 구의원이었고, 여러모로 선거에 익숙해져 있었어요. 제가 정의당 입당할 때 배우자와 의견이 갈리기도 했는데, 서로 그런 부분으로 소모전을 하지 않고 존중하고 터치하지 않는 방식을 택하기로 했죠. 후보의 배우자 역할을 하다가 이제 반대로 제가 받게 생긴 거죠. 그런데 거기에도 입장 차이와 정서적 거리가 생겨 한계가 존재하더라고요. 


진보정당 후보지만 마을활동가로서의 입지
박: 2012년 지역활동을 본격화하면서, 당적을 가지고도 사람들을 편하게 만날 수 있는 단체가 필요하단 생각을 했어요. 마을공동체사업이 활발히 전개되던 시기였죠, 제가 지역으로 들어와 활동할 때랑 딱 맞아떨어졌던 것 같아요. 2012년~13년 즈음 마을공동체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제도화된 시기였어요. 공모사업도 많았고요. 민주노동당 때는 열성당원이었다면 지역에 뿌리내리면서 마을공동체 활동가, 지역활동가로 자리 잡히게 되었어요. 정당활동보다는 조합활동을 많이 하게 됐는데 제가 출마한다니 반가워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지지해주는 분들도 꽤 있어 뜻 깊었죠. 그 자체가 시너지였고, 후보활동의 동력이 되기도 했어요. 선거 때 직접적인 지지와 도움을 받으면서 여러 번 감동했고 자신감을 얻었던 것 같아요.


선거운동의 어려움
박: 체력적으로 힘들고 벅찬 일정이 감당 안 되고 이런 문제는 오히려 없었어요. 열심히 하는데 막막함이 더 문제였던 것 같아요. 선거기간에 새벽 출근 전하고 낮에 상가 돌고 저녁에 술집 투어도 했는데, ‘나’를 지지하는 조직, 확실한 표를 줄 수 있는 집단, 이런 직접적인 지지자 단체나 유권자를 만나기가 어려웠어요. 일단 열심히는 하는 데 이러한 활동이 표와 연결될까? 혹은 낮 시간에 보이는 저분들이 내 지역구 유권자일까? 등등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방식이 맞을까? 이런 막연함이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에요. 예비 선거운동이 짧진 않은데 일단 닥치는 대로 다니는 게 맞나? 전략의 부재가 고민이고 가장 우려되는 지점이었죠. 


출마 경험이 남긴 것
박: 다소 추상적이긴 하지만 대략의 틀을 마련하고 준비 태세를 갖추게 되면서 구체적인 선거운동 전략을 스스로 생각해보게 되었죠. 그러면서 주요 거점별 피케팅을 매일 하는 데 유권자분들이 저를 알아봐 주실 때 신기하고 반가웠어요. 또 주민자치 등의 활동에 참여했을 때 후보였죠? 라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간혹 계셨죠.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있어 스스로 놀랍기도 하고 고맙고 책임감도 느껴졌어요.


소위 ‘당의 세’ ‘당의 바람’ 등이 내게 준 영향
박: 제가 출마한 지역구의 구도가 좋지 않은 편이예요. 당의 세는 사실 중요한데 지난 대선 때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심의원의 1분 발언 등은 그 나마 진보정당의 선명성과 차별성을 부각 시켜준 쾌거였죠. 그런데 사실 다음 지방선거는 걱정이죠. 언론에 거대양당 외에 존재감 자체가 사라졌고, 이슈도 실종된 셈이죠. 당의 ‘세’가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부인할 수 없고, 그런 측면에서 사실 다음 지방선거는 막막해요. 노원은 노회찬의 지역구이기도 해서인지 노회찬 의원의 빈자리도 큰 편이예요.




생리대보편지급 운동을 시작하며
박: 이 의제를 보편적 인권의 문제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왔어요. 서울시당 지방선거아카데미에 참여해 김희서 의원님 강의를 듣고 전략적으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느꼈어요. 확실한 지지자 15% 전략에 많은 공감을 했고, 그런 측면에서 찬성 반대가 첨예하게 갈리는 의제라도 상관없다고 느꼈어요. 관련해 노원에 우리 구의원이 있어 의원발의를 하겠지만 주민의 공감대를 얻기 위해 여론을 많이 모을 생각이에요. 이와 관련해 예상되는 고민은 보편이냐 선별이냐 논란일 테고 이에 대해 자료조사하고 준비해두려고 해요.


왕성한 활동 ‘번아웃’의 위기는 없었나 
박: 저는 생각보다 지치지 않는 사람인 것 같아요. 예전에도 상근활동을 많이 해서 지방 출장이 잦았거든요. 이미 학생 때부터 운동에 정신적 육체적으로 좀 단련된 면이 있어요.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면 오히려 에너지를 받아요. 어쨌든 혼자만의 힘으로는 할 수가 없는데 주변 분들이 긍정적으로 봐주고 믿어주고 응원해 주시는 편이죠. 그리고 가족의 지지도 한몫해요. 제가 일을 많이 벌이는 것에 대해서 배우자도 이미 적응한 편이죠. 간혹 주말에 일 안하고 쉬면, 뭔가 불안해지는 거죠. (웃음) 그런 저를 보고 주말은 쉬라고 있는 거라고 배우자가 일깨워 줄 때도 있죠. 


청소년 페미니즘 의제 사업들
박: 페미니즘 의제로 현수막을 내걸고 직접 당사자들을 만나요. 청소년 페미니즘 캠프를 운영하면서 여전히 학교 내의 성차별적 구조가 철폐되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죠. 함께 분개하고 공감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청소년 월경용품보편지급 운동도 학생회 학생들을 직접 만나고 제안할 생각이고 페미니즘, 성평등 성인지적 관점 이런 내용은 끝도 없이 교육하고 양성하고 담론을 만들어야 해요. 뿌리 깊은 성역할 고정관념과 이데올로기 등이 우리 생활 곳곳에 숨 쉬고 있죠.


긴급한 사안들이 쏟아지지만
박: 사실 지금 노원의 활동가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학습하고 실천하는 것은 기후위기에요.  기후위기는 지금 비상한 시기고 매우 시급한 문제죠. 기후위기운동에 대한 관심을 놓치지 않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 정의당 기후위기 정치인 양성과정도 듣고 있는데, 그럼에도 제가 중심에 두고 활동해야 하는 것은 ‘인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대신 인권과 기후위기를 결합하는 거죠. 그래서 기후위기 문제에 대해 꾸준한 관심을 유지하며 운동의 방향은 결국 제가 해온 운동의 본질을 놓지 않으려 하고 있어요. 저는 ‘인권’ 활동가고 ‘인권’의 측면에서 의제들을 고민하고 파악하려고 노력해요. 그간 해왔던 공동체의 가치, 인권의 가치, 활동에서의 연장선으로 여성 의제들을 고민해왔고 이를 실현하는 데 주력하고 다양한 활동들을 묶어내고 엮어내는 중이예요. 페미니즘 잡지 ‘깨다’도 그 연장선상에서 기획된 거죠. 그리고 지속적으로 젠더거버넌스를 구축해 노원구 사업들의 성평등 정책 제안 활동을 해 오고 있어요.  


정치적 중립성이 아닌 당파성을 내세우며
박: 마을활동가로 시민사회에 활동을 하면서 정치적 중립성을 표방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죠. 하지만 저는 활동의 시작이 ‘당’이었고 ‘당’ 중심성의 운동에 확고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당’을 전면에 내세우고 싶었어요. 단체 회칙을 만들 때도 당에 대한 제한 규정을 없애려고 했고 자신이 속한 당을 홍보하는데 제약 없는 활동을 하고 싶었어요.  


기억에 남는 활동
박: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 그리고 그 가족들과 뮤지컬 ‘빨래’ 보기를 했어요. 뮤지컬 ‘빨래’에 들어있는 내러티브 자체가 공감대가 있을 거라 생각했고요. 해고노동자분들과 가족분들이 문화생활도 전혀 못할 만큼 몸도 마음도 지쳐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뜻 깊은 시간이었어요. 티켓 금액을 모금하고 대관하고, 이러한 기획 자체가 신선했고 자칫 무겁고 엄중할 수 있는 활동의 영역을 넓히고 새로운 연대방식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코로나 시대의 활동가
박: 자주 모이고 얼굴도 봐야하는 데 코로나라는 악재로 사업이 모두 취소되거나 비대면으로 전환됐죠. 하지만 여기에 굴하지 않고 소모임으로 모임을 운영해요. 기획의 방향성을 바로 바꾼 거죠. 적은 인원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의외로 만남의 질이 깊어지고 보다 끈끈해지기도 했어요. 코로나라는 제약 속에서도 어떻게든 만나고 이야기 나누고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껴요. 코로나라는 악재를 차라리 활동의 방향과 형식을 바꾸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쉽지 않은 길을 걸어 온 그는 이번에도 가장 고단한 선택 ‘정의당의 후보’를 자처했다. 인권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만들고 지역의 풀뿌리 단체와 교류하며 공동의 의제를 발굴해 왔다. 

박미경이 걸어온 일상의 정치, 마을공동체 운동은 당이 주도해온 방법이자 궤적이 되었다. 지치지 않고 굴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 온 박미경은 노원과 정의당의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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