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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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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의공감 2호] 나의 삶, 나의 생각 - 어쩐지 어른
어쩐지 어른

 
김윤진 전주 당원
 
남성 직원들이 대부분인 설계회사에서 그야말로 '존버'하고 있는, 불이익을 당할지언정 할 말은 꼭 하는 여성 디자이너다. 전주 거주 13년째, 세상살이의 고단함과 외로움을 이겨내는데 덕질만한 것이 없다는 그녀가 매일 사직서를 품고 출근하는 이유를 들어본다. 
 


하루에도 수십 번 품안의 비장의 카드마냥 사직서를 내밀었다가, 다시 품안으로 넣고는 한다. 그리고 사직서를 내미는 내 모습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본다. 어떤 말로, 어떤 표정으로 어떤 행동을 취하며 이 사직서를 멋있게 던져버릴 수 있는가.

매일 아침마다 어제 뉴스를 재탕하는 아침 뉴스를 보며 잠자는 동안 식었던 분노를 일깨우고, 출근하는 동안 분노는 서서히 난로위의 주전자 마냥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무엇이 이렇게 화가 나게 하는 것인지... 로또, 하나만이 모든 소원을 이뤄줄 것 같은 구세주라니. 돈이 모든 것은 아니지만 결국 돈이 모든 것인 세상을 비웃을 수 없는, 결국 시작과 끝은 모든 게 돈인 세상을 살고 있는 나는, 어쩔 수 없이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고 출근을 하는 어쩐지 어른이다.

어른이 되는 준비도 되지 않았던 나에게 시간은 어른이라는 짐을 짊어지게 하였고, 부끄럽게도 항상 화를 품에 안고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보일러를 가지고 느리면서 위협적으로 생긴 기관차 같은 나는 어른이다.


어쩌다 어른이 되어서는 바뀌는 세상에 세상 놀라면서, 바뀌지 않는 세상에 새삼 놀란다.


어릴 적 생각하던 문제는 어른이 된 지금도 문제이고, 어째서인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도 한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인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옳은 말하기 좋아하던 내가, 그 옳은 말 한번 하려고 수없이 생각하고 머릿속으로 돌려보지만, 매번 실패하는 그 옳은 말하기가 너무나 힘들다. 계속 지속될 어른의 시간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건만,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가는 것 같으면서도 너무나 빨리 가는 시간에 불안을 떨칠 수가 없다.

 

오늘의 내 자리가 내일은 없어지지는 않을까? 오늘의 실수가 부메랑처럼 날아와, 나에게 상처주지 않을까? 생각할 틈 없이 빠르게 지나가버린 시간을 붙잡을 수도 없고 돌이킬 수도 없음을 알아버린 나는 어째서 어른인 걸까.

 

불공평하고 불공정하던 시절이 어른이 되면 끝날 줄 알았건만, 더욱 오래 지속되고 있고, 변화의 과정에서 보여지는 불안함은 피부로 와 닿게 되어 두려움을 만들어 내고 있다. '불안하지 않아' 라고 나를 다독이고 안도시키지만, 불안함은 매번 소름으로 돌아온다.


내가 느끼는 이 불안함을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는 걸까? 조용히 거세게 다가오는 밀물이 저들은 보이지 않는 것일까? 그렇다고 나는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지는 않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옳은 소리 하길 좋아했던 10대와 20대의 나는 30대가 되어서는, 타이밍만 재고있는 그런 어른이 되버렸다. 내가 옳음에도 나서서 말하지 못하고, 옳음에도 정당함을 주장하기 힘들며, 옳음에도 그 말을 어디에 말해야할지도 모르는 나는 어째서 인지 어른이다.

 

어른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알 것이라고 착각하던 그 시절의 어른들을 비웃던 내가, 지금은 그 비웃음의 대상이 되어가는 사실에 애석하게도 인정 할 수밖에 없는 나 역시도 뒤쳐져 따라가기도 힘들다.


세상은 너무나 빨리 변하고 있다.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세상이 오고 있음에도 변해가는 과정은 너무나 불안정하다. 그 불안정함을 인지하면서도 인지하지 못하고 살얼음 판 같은 급변하는 시간을 견디며 내 스스로의 행복을 찾아내야 하는데, 그 길이 어딘지 몰라 엄마와 아빠를 찾고 싶고, 정답이 있다면 정답을 달라며 갈구하고 싶다.

 

어째서인지 어른이 되버린 나는 아무도 관심주지 않는 긴 끈을 가진 가방을 자랑하며, 가방끈을 고쳐 매고는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으나, 배워 온대로 살아갈 것이다. 양심과 책임을 갖춘 어른... 하지만 저버리고 도망가고 싶고 숨어버리고 싶은, 나는 어째서인지 어른이기 때문에 사회의 통념과 암묵적 룰을 지키려고 또 노력할 것이다. 별수 없는 어른이기 때문에, 나름의 최선과 내 몫을 하기 위해라는 허울 좋은 옷을 입고, 오늘도 그렇듯 현실의 벽에 부딪혀 던지지 못할 사직서를 품고 출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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