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이 다투고 소통하는 초록바위에서
강주영 정의당전북도당 기획위원장
지난 글에서 풍패지관 전주 객사를 산책하였다. 객사에서 전주 남부시장 싸전다리 너머 초록바위로 왔다. 서학으로 조선을 개화하려던 서학인들이 처형된 곳이다. 동학으로 '다시개벽'하려던 동학인들도 이곳에서 숨졌다. 초록바위에서 전래 동요 「두껍아」를 부른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어릴 때 모래 놀이하며 불렀다.
그때는 무슨 뜻인지 몰랐다. 다만 형, 누나에게서 배워서 불렀다. 정신의 유전자가 질기다. 지금 생각하니 '두껍아'는 반역의 노래인 개벽가이다. 조선의 헌 집(?)을 허물고 새집을 지은 것은 서학이었다. 동학으로 새집을 짓지 못했다. 서학이 준 집을 억지로 받았다.
"개화는 무엇이고 개벽은 무엇인가?"를 김개남의 목이 잘린 초록바위에서 곰곰이 생각한다. 서세동점한 서구적 근대 '개화세계'와 모두가 하늘인 '개벽천하'가 대립한 상징이 펼쳐진다. 근대의 우승열패와 생주이멸한 정신의 상징이 다 보인다.
동학인과 서학인의 손교지가 같다. 천주의 세계 서학 성당이 보인다. 천하의 리(理)와 기(氣)를 말하던 성리학의 향교, 임금의 뜰인 경기전과 민의 마을, '물질이 개벽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는 원불교 교당, '우리 모두 하늘이니 다시개벽하자.'던 동학혁명기념관, 한옥마을과 모던한 신시가지, 후백제의 옛 성터에서 아파트 성까지 다 보인다. 서학의 성당을 하필이면 임금의 뜰인 경기전과 길 하나 사이에 세워졌을까? 조선 왕조국가의 지배 기구인 전라감영과 동학혁명의 개벽천하 관민상화 집강소가 있었다. 동서고금이 맺힌 곳에서 이제는 동서고금이 소통하는 오늘의 개벽시대를 생각해본다.
우리나라에서 서학 천주교가 전래되던 시기의 탄압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하여 여기 더 적을 까닭은 없다. 조선의 개화파들이 외세 식민주의자들과 손을 잡았다. 개화파의 우측은 친일파가 되었다. 너와 내가 따로 없다는 천하무인(天下無人)을 잊은 양반, 사대부들이 기득권 유지에 급급하여 서학과 동학을 척사(斥邪)하였다.
근대 백여 년의 우승 열패에서 서학은 우승아었다. 동학은 우금치에서 무너졌다. 왕조 국가도 무너졌다. 때문에 임금의 뜰 경기전 앞에 하늘로 솟은 첨탑의 성당이 건립될 수 있었는가? 순교 성지에 성당을 짓고 싶었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바 아니다. 그러나 무엄하다. 향교와 임금을 모신 경기전과 감영 앞이라니 그시건방이 첨탑처럼 하늘을 찌른다면 과도할까...?
어디 동학인들과 서학인들 뿐이었으랴. 초록바위는 왕조의 온갖 반역인, 살인 죄인들이 처형된 곳이다. 아마도 정여립의 기축옥사 때에 죽은 이들도 이곳에서 목이 베어졌으리라. 동학혁명군이 전주감영을 점령하였을 때에 홍계훈의 경군(京軍)은 이곳 일대에서 농민군을 포격했다. 옹조와 혁명군, 동학과 서학, 축생 지옥의 살인 죄인과 지배 계급이 대립했다.
근대 백여 년 조선과 한국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한반도에서 동학혁명, 청일전쟁, 러일전쟁, 의병전쟁, 독립전쟁, 남북전쟁이 있었다. 조선인들은 동학혁명군으로, 의병으로, 독립군으로, 중국 홍군으로, 소비에트 적군으로, 일본 황군으로, 인민군과 국방군으로 1894년부터 1953년까지 800만 가까이 죽었다. 필자는 1894~1953년까지 '60년동북아전쟁'으로 이름한다. 아니 1860년부터 2019년까지 '159년동북아전쟁'이다.
이 '159년동북아전쟁'을 한방에 꿰는 성격은 무엇인가? 1860년 다시개벽의 동학이 열렸다. 1894의 동학혁명이 있었다. 의병, 3.1운동, 독립전쟁, 해방, 한국전쟁과 분단, 4.19가, 광주가, 6월항쟁이, 촛불항쟁이 있었다. 1860년부터 2019년을 한방에 꿰는 정신은 무엇일까?
개화파의 후손인 범민주파, 범보수파인가? 개화파의 좌측인 사회주의인가? 역사의 금기가 된 개벽파인가? 지금 개화파는 돈이 하늘인 세상을 굳게 지킨다. 돈 이외의 것은 배척하는 척사파가 된 것은 아닌가? 민주당이나 자유한국당이나 다 자본을 위정하고 나머지는 척사하는 자본 중심 위정척사파(衛正斥邪派) 아닌가?
왕조 국가의 지속, 개화, 보국안민, 독립, 사회주의, 민족주의, 분단, 민주, 신자유주의, 백두혈통국가, 통일을 초지일관하는 뜻은 무엇인가? 근대의 민주화는 어디까지인가? 남북통일이 말하는 통일의 세계는 무엇인가? 평양시가 삼성시가 되는 게 통일인가? 통일은 서울이 서울이 아니고 평양이 평양이 아닌 것으로 개벽하는 것이 통일 아닌가?
좌우 이념으로 보지 않겠다. 민주적인 근대 국가 형성으로 보지도 않겠다. 진보와 보수로도 보지 않겠다. 원자화된 개인으로, 어설픈 공동체로 보지도 않겠다. 그냥 159년의 개벽과 개화의 난세라 하겠다. 한반도의 근대는 동서고금의 모든 것들이 들끓는 용광로의 백년지쟁 춘추전국 시대이다.
근대는 파발마에서 스마트폰으로 물질인 개벽하고 진보하였다. 그렇다면 천하도 진보하였다고 말하는 것이 맞는가? 의문으로 남겨 둔다. 이 글 첫머리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를 다시 생각해 본다. 옛집이 다 낡은 헌 집은 아니다. 천년을 가도 아름다운 집이 많다. 헌 집은 낡아서 소멸하지만, 아름다운 옛집은 오늘로 소통하니 늘 새집이다. 너와 내가 우리가 되어 천하를 이루니 천하는 우리 모두의 집이다. 천하 공물이요, 천하 대동이다.
초록바위에서 남으로는 후백제 견훤의 옛터 남고산성이 있는 고덕산이다. 동남으로는 승암산과 천주교 성지인 치명자산이다. 동북으로는 한옥마을이다. 북으로는 전주 구시가지가 보인다. 지금 전라감영을 복원하는 중이다. 무엇을 복원하는가? 옛 건물 감영의 복원이되 감영인가? 관민상화(官民相和)의 집강소인가?
초록바위는 곤지산(坤止山)의 동쪽 끝자락이다. 조선지문학(朝鮮地文學)인 풍수에서는 이 산을 갈마음수봉(渴馬飮水峰), 즉 목마른 말이 물을 먹는 형국의 산이라 한다. 물을 마시는 곳은 전주천이다. 목마른 말들인 동학인(東學人)과 서학인(西學人)들이 이곳에서 순교하였으니 풍수가 틀리지 않다.
다가사후의 활소리가 들린다. 전주 사람 진동규 시인의 시 「파랑새 울음 웁니다」를 떠올리며 시대를 가늠해 본다.
"휘어도 휘어도 꺾일 수 없는 활, 하루에도 몇 번씩 시위를 당깁니다. 수렁에 빠져도 사는 그 억척의 물소뿔을 휘어 쑤꾸욱 쑤쑤꾹 억겁의 세월 날고 풀어 시위를 당깁니다.
진안 곰티재 아기바투 목구멍에 쏘아 박고 만수산 드렁칡을 당기어 정몽주 뒤통수에 날린 살, 단풍보다 더 붉게 다가산을 덮어 흐르던 동학의 꽃 붉은 함성, 타는 보리 모가지에 또 한 대 살을 날립니다.
금강 섬진강 만경강 황토땅 흐르던 파랑새 울음을 시위는 울어줍니다. 맨발의 견훤대왕 등창에 박히어 울던 살, 오늘은 그대 가슴의 찬 바위에 쏘아 박을 한 대 살을 재어봅니다. 사위를 당깁니다."
진안 곰티재 아기바투 목구멍에 쏘아 박고 만수산 드렁칡을 당기어 정몽주 뒤통수에 날린 살, 단풍보다 더 붉게 다가산을 덮어 흐르던 동학의 꽃 붉은 함성, 타는 보리 모가지에 또 한 대 살을 날립니다.
금강 섬진강 만경강 황토땅 흐르던 파랑새 울음을 시위는 울어줍니다. 맨발의 견훤대왕 등창에 박히어 울던 살, 오늘은 그대 가슴의 찬 바위에 쏘아 박을 한 대 살을 재어봅니다. 사위를 당깁니다."
초록바위에서 한옥마을 속으로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