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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1소식지: 물고기를 좋아하던 화가 물에서 별이 되다.

물고기를 좋아하던 화가, 물에서 별이 되다.

단원고 2학년 4반 18번 빈하용 전시회를 다녀와서

글/조연미

물고기를 좋아하던 화가 

물고기를 좋아하던 화가가 있었다. 그는 캔버스가 아니어도 노트에, 학교 가정통신문에, 하얀 종이 쪽지만 있으면 그림을 그렸다. 그의 그림 속 물고기는 유유히 도화지를 헤엄쳐 가기도 하고, 도심을 뚫고 세상을 향해 나오기도 했고, 꿈을 향해 거칠게 포효하기도 했다. 평화와 자유와 꿈과 희망을 상징하는 물고기. 화가에게 물고기는 또 다른 ‘자신’이었다. 그는 안타깝게도 거꾸로 뒤집힌 배에 갇혀 나오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향년 17세. 단원고 2학년 4반 18번, 故 빈하용 작가의 이야기다. 

내가 빈하용 작가를 만난 것은, 유독 매서운 추위가 내려앉은 날이었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210일째 실종자 수색 작업을 종료하겠다고 발표했고, 세월호 이준석 선장은 유기치 사상, 선원법 위반 혐의로 징역 36년 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왜 304명의 세월호 승객들을 구조하지 못했는지 밝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 땅엔 세월호 국면을 결단코 끝내려는 사람들과 세월호를 기어코 기억하려는 사람들의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살을 에는 추위보다, 상처 깊숙한 곳을 억지로 도려내는 상처가 더 아프다. 

단원고 2학년 4반 18번 “작가 빈하용”

서울시 종로구 효자동에 위치한 서촌 갤러리에선 단원고 2학년 4반 18번이었던 故 빈하용 작가의 전시회가 열렸다. 갤러리는 60㎡ 남짓한 전시장에 그림 액자 17점과, 습작품, 작가의 책상이 전시돼 있다. 전시장 복도를 들어서는 순간부터, 관객은 故 빈하용 작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복도에 아기자기한 스티커 작품은 생전에 그린 낙서들이었다고 한다.  아이들을 기억할 수 있도록, 전시를 기획한 이는 서촌갤러리 장영승(51) 대표. 그는 이번 전시 회를 통해 작가‘빈하용’의 모습을 전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하용이 부모님께서는 하용이의 개인 정보가 나가기보다,  하용이의 그림을 가지고‘작품’ 그 자체를 감상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상당히 고무적인 일은, 관람객은 아주 많지 않지만 미술 쪽 전문가들은 거의 다 왔다갔을 정도로 미술계 내에서는 잔잔한 파동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림으로 세상과 소통하던, 천재 작가

빈하용 작가는 여섯 살 때부터 그림에 빠져, 오로지‘그림’하나만을 바라보며 살아 왔다고 한다. 큰 덩치에 말수가 별로 없던 빈하용 작가. 백 마디 전하고 싶은 말과 천 가지 이루고 싶은 꿈을 그림에 표현하며, 그림으로만 소통했던 것이다. 전시회장 한편을 꿋꿋이 지키는 작가의 자화상, 굳게 다문 입술과 유독 강한 눈빛에선 작가의 그림에 대한 강한 의지와 자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 빈하용 작가의 꿈은 일러스트레이터였다. 워낙 그림을 좋아해서 종이만 보면 그림을 그렸다고. 학교에서 보낸 가정통신문, 성적표까지……. 그에게 빈 종이는 뭐든 캔버스요, 상상의 공간이었다. 섬세한 필치, 기발한 상상력, 대담한 색채를 보면 결코 10대 소년이 그렸다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빈하용 작가의 전시에 관해 장영승 대표는 특별한 세 가지 점을 두고 감상해주면 좋겠다고 전한다. 하나는 그림이 아닌 스티커 또한  빈하용 작가의 그림이라는 점, 그림 뒤에 숨겨진 성적표와 가정통신문, 마지막으로는 빈하용 작가가 주는 메시지를 찾아보는 것이다. 크레파스며 볼펜, 0.2mm 펜, 사인펜, 물감. 도구를 가리지 않고 표현하며 도구만의 질감을 살려 연구하고 실험했던 빈하용 작가. 암울하면서도, 자유로우며, 따뜻함을 지향하는 그의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소년의 자유로움과 중년의 원숙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최근 흥행하는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기라도 한 것처럼 부상하는 우주인을 표현하기도 했고, 반 고흐의 ‘아를의 침실’을 그만의 구상으로 그렸는가 하면, 하늘을 나는 물고기, 다양한 일러스트 작품들까지. 한 소년의 꿈과 희망이 천재적 감각을 만나 걸작으로 탄생했다. 

그림이 내게 물었다. 

주인을 잃은 텅 빈 의자와  붓, 화첩, 앞치마와 이름표도 또 하나의 전시품이다.  바싹 마른 팔레트가 200여 일이 넘는 시간 주인을 기다려왔다. 덩치 큰 빈하용 작가를 위해 그의 어머니가 특별히 공수해왔다는 의자도 온기를 잃은 지 오래다. 덩그러니 남은 빈하용 작가의 책상 앞에서 관람객의 탄성이 들렸다.“이토록 천재 적인 화가가 왜 죽어야 했는지, 이런 인재를 잃어야 했는지 안타깝다” 는 이야기다. 나 역시 다시는 그의 새 작품을 볼 수 없다는 것에, 한국의 인재와 미래를 잃었다는 것에 슬픔과 분노가 올라왔다. 소년의 꿈은 4월 16일, 멈췄다. 이제 유작이 된 그의 작품만이 우리에게 말을 건다. 나는 소년의 그림  앞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림  속 빈하용 작가가  내게 묻는다. “나는 왜 죽어야 했나요?”, “내 친구들은 왜 구조되지 못했나요?”,“내가 그토록 살고 싶던 내일은 어떤가요?”,“살아있어서 슬픈 가요, 행복한가요?”  ……. 나는 아무 대답도 해주지 못했다.

망각의 시간 앞에서. 

200여 일이 훌쩍 지났다. 많은 이들이‘세월호’ 국면을 종료시키려 애쓰고 있다. 더 무서운 것은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잊혀가는 ‘4월 16일, 망각의 속도’다. 나에게도 우리 모두에게도 4월 16일, 그날의 기억이 점점 무뎌져 간다. 언제 그랬냐는 듯 계절은 추위를 몰고 왔고, 첫 눈이 왔고, 크리스마스가 왔고, 한 해가 지났다. 2014년 4월 16일, 304명의 우주를 가슴에 묻은 채로 말이다.(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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