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민의 다시 서는 봄
두 가지 지혜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시작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끝에서 이어지는‘시작’은 무슨 일이든 연속성이 있기에 이것이 바로 삶의 모습이고, 삶이 쌓여 만든 역사의 또 다른 표현일 것입니다. 시작은 땅으로 돌아가는 낙엽과 연둣빛으로 피어오르는 새순이 하나임을 잊지 말라는 자연의 가르침이기도 합니 다.
여기 새로운 시작이 있습니다. 희망이 단절된 사회에 주눅들지 않고 땅바닥을 짚고 일어난 사람들, 차디차게 언 땅에서 봄을 꿈꾸는 정의당 당원들의 몸짓이 『정의엔』이라는 소식지로 태어납니다. 부산한 손발과 열기 띤 눈빛으로 아직 영글지 않은 날개가 퍼덕퍼덕 비상을 준비합니다. 하루 일을 마치고 작은 사무실에 모여 재잘재잘 생각을 주고받다 보니 참 예쁜 디자인의 제호가 만들어지고 이런저런 지면이 구성됩니다. 투박한 종이에 새겨진 글자 하나 사진 한 컷에 일상의 피곤을 이겨낸 소박한 생활인들의 설렘과 희망이 묻어납니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저는 살짝 염려가 되었습니다. 저녁을 준비하는 아내 옆에서 재롱이라도 떨어야 맘이 편해지는 작은 부담 같은 것. 역시나, 발행인으로 칼럼 한 꼭지를 맡아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먼저 든 생각은 왠지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는 무안함이었습니다. 곧이어 꼭지에 무엇을 담아야 하나 걱정이 밀려 왔습니다. 일정에 밀려 하루하루를 보내면서도 잠을 청하면 꼭 싱싱하게 움직이는 편집위원들의 상기된 얼굴이 떠오른 나날이었습니다.
다시 서는 봄
마감을 앞두고 한참 고민하다가 먼저 칼럼에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지방선거 때 페이스북 페이지에 썼던‘다시 서는 봄’입니다. 이 이름은 2000년 초반까지 대흥동 사거리 2층 건물에 있던 작은 카페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종종 인권단체의 송년회 자리로 애용되던 그곳의 느낌은 이름에 담긴 의미만큼이나 제 가슴에 여전히 크게 남아 있습니다.
이름을 짓자, 다행히 첫 칼럼에 담고 싶은 글귀가 생각났습니다. 두 개가 쌍둥이처럼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진보정당이 갖고 있는 소중한 가치를 잇되 역사에 순응하는 대중적이고 현대적인 정당, 정의당 안팎에서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꼭 가슴에 담아뒀으면 하는 옛말입니다. 그것들을 함께 나누고 싶어졌습니다.
그 옛말 하나는“무감어수 감어인(無鑑於水 鑑於人)”입니다. 물에게 비춰보지 말고 사람 에게 자신을 비춰보라는 뜻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사람들을 거울 삼아 자신을 돌아보라는 성찰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사색집 『나무야 나무야』에 인용되어 더욱 유명해진 문구이지만, 외형에 몰두하고 개인의 주관에 매몰되기 쉬운 현실을 볼 때 여전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경구입니다. 더불어 자유·평등·생명·평화 등 진보적 가치와 파편화된 욕망 사이에서 조화를 추구해야 할 정의당 당원들이 함께 고민해 볼 지혜로운 말입니다.
두 번째는“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입니다. 중학교 한문 시간에 배우고 잊지 않았던 말인데, 세 사람이 걸어가는 길에는 반드시 스승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문장의 뒤에는 그중 선한 사람을 보고 그 모습을 따르고, 선하지 않은 사람을 보고 자신의 잘못된 점을 돌아보라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결국 주변 사람들을 통해 나를 성찰하라는 내용이 담긴 격언입니다.
혼자가 아닌‘우리’, 따로가 아닌‘함께’!
탐욕으로 얼어붙은 겨울,『정의엔』의 문을 열며 나누고자 했던 두 가지 이야기를 했습 니다. 두 경구를 곱씹으면 알겠지만 그 울림의 방향은 같은 곳을 향합니다. 그것은 바로‘혼자’가 아닌‘우리’, ‘따로’가 아닌 ‘함께’에서 나오는 사람의 긍정성입니다.
정글의 법칙으로 몰아가는 세상에서 사람들과 교감하고 사람으로부터 나를 돌아본다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의당의 울타리에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배려와 공감을 통해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는 지혜와 넉넉함이 우선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현실의 분노를 옳은 실천으로 이겨내는, 한 발 앞에서 대중과 호흡할 수 있는 대중적 진보정당과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정의엔』무엇들이 담겨질까 무척 궁금합니다. 빈터에서 희망의 씨앗을 심는 현명한 농부들이 더욱 많이 모여지길 기대합니다. 시작의 마음이 여명처럼 시민들의 가슴 속에 퍼져가 길 간절히 바라봅니다.(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