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글로벌 지하디스트 탄생
영웅빈라덴의 실상과 허상
‘사자의 굴’전투 ->아랍인들의 용맹스런 전투로 미디어 캠페인
100명대 9명 싸움 승리 but 소련군의 자진 철군
빈라덴 - 아프칸의 무자헤딘 운동을 소련을 넘어 미국, 불경한 세속주의에 맞서는 지하드 확장, 개별적 그룹으로 전투 참여 주장
압둘라아잠- 통일된 무자헤딘, 아프칸에 건실한 이술람국가건설이 선결과제 주장
빈라덴+자와히리 =알카에다(글로벌지하드)
자와히리 >-< 아잠은 사이가 좋지 않음 ->아잠은 자와히리의 무슬림vs 무슬림 반대 ->빈라덴 자와히리 손을 들어줌
소련철군으로 노선투쟁 격화 ->사우디, 자와하리에 의해 아잠은 기금횡령혐의로 세력 약화됨 ->페샤와르내의 아랍아프간 세력 분열
소련철군으로 시작된 내전
소련철군 ->아프카니스탄 내전 시작
자와히리의 알지하드와 맹인 오마르 압둘 라만의 이슬람그룹이 미국스파이라고 비방(빈라덴을 얻기위함)
-->빈라덴 자와히리 손 잡음
잘랄라바드공방전
정부군과 무자헤딘과의 전투 -->언론 무자헤딘 승리 예견 ->비무장민간인들 잔인하게 고문, 처형->정부군 결사항전 ->패함 ->빈라덴 말라리아로 고생->패주
잘랄라바드 공방전 후 내전시작
1. 파키스탄 지원, 이슬람주의세력, 아프칸 최대 민족인 파튜순족 : 글루딘 헤크마티아르
2. 중도성향 타지크족 출신 마수르
아랍아프칸 1번지원 / 아잠 2번 지원 -->빈라덴 아잠 안전을 위해 폐사와르 떠나라고 충고 -->아잠폭탄테러로 사망 후 미국스파이라는 루머
11. 걸프전 아랍연대의 붕괴
이란(시아파) >--<이라크(수니파) 1차 이란-이라크전쟁, 2차 걸프전, 3차 이라크전쟁 , 4차 이라크내전
1차 이란-이라크전쟁
미국 이라크 지원, 이라크와 외교수립(무기 지원 등등) but 이란승리
호메이니 정부 이란 젊은세력 전쟁 참여 유도->혁명 위협세력이 없어짐
전쟁 후 이라크 빚더미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빛 독촉, 이라크가 쿠웨이트 석유채굴, 유가산정 문제로 비난 함
1990년 8월 20일 이라크 쿠웨이트 침공(루마일라 유전배상문제 결렬 후)
“이라크VS쿠웨이트 시 미국의 입장은 없다“는 미국의 모호한 태도에 영향을 받음
미국이 ‘사막의 폭풍’으로 개입 ->아프칸 무자헤딘세력 반미로 돌아섬(사우디내 미군주둔 등)
빈라덴 VS 사우디아라
걸프전으로 이슬람세속주의 통치자 상대 지하드 주장(예 : 파키스탄 부트총리 실각 공작 -->실패)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빌미로 이라크 대상 지하드 계획 ->사우디 왕가 반대 -->사우디아라비아와 지하드 동맹 깨짐 -->1991년 봄 빈라덴의 근거지를 수단으로 옮김
미국의 개입
1991년 2월 24일 쿠웨이트 탈환(사막의 폭풍) 다국적군의 이라크공격으로 사담 휴세인 쿠웨이트 철수 -->100시간만에 종료 -->CNN실시간 전쟁중계
미국 이라크 내 민중봉기를 통해 후세인정권 몰락 공작 시도 -->시아파와 몇몇 집단, 독립모색하던 쿠드트 족 민중봉기 ->이라크 정부군에게 분쇄--->민중봉기 세력은 미국의 지원을 기대했으나 지원해 주지 않음
아랍세계 VS 이스라엘분쟁구도에서 이슬람주의 VS 세족주의 구도가 됨
아랍국가사이분쟁 / 아랍권위주의정권 vs 민중 / 수니파 vs 시아파 / 아랍국가내다수민족 vs 소수민족의 부족
12. 팔레스타인의 이슬람주의화
1987년 12월 18일 이스라엘 군대 대형트럭과 팔레스타인 택스 추둘사고로 팔레스타인주민 4명사망, 7명중상 -->장례식, 시위발생 --->인티파다의 시작(봉기, 반란, 각성을 뜻하는 아랍어)
무슬림형제단이 HMS(이슬람저항운동)으로 지원함, 후에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시초
인티파다 ->이슬람주의세력 확산, 팔레, 이슬 양쪽 모두 인명 피해, 팔레스타인 내부고발자 피해
하마스의 약진과 이슬람주의 신화
민중봉기연합지도부 vs 하마스
하마스가 이슬람주의헌장 발표(cf 팔레스타인해방기구 헌장) ->지하드를 개인의 종교적 의무로 규정함
팔레스타인해방기구와 의회인 팔레스타인민족회의가 이스라엘과 협상 -> 이스라엘 존재인정, 팔레스타인 독립국가건설 선포(팔레스타인해방기구는 인티파다가 이스라엘에 압력행사로 협상이 성사될 것으로 기대함)
but 이스라엘 협상 거절 ---->급진화된 이슬람세력 확장
1989년 이스라엘 하마스지도부 검거 투옥시킴 -->더 급진화됨
1991년 10월 30일 마드리드 평화회의에서 팔레스타인독립국가 건설 논의 -->인티파다 소멸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 but 하마스 등 팔레스타인 이슬람주의세력은 마드리드 회의 인정하지 않음
13. 알제리 – 더러운 내전의 원형
1991년 알제리 이슬람주의 정당 ‘이슬람구국전선’ 압승하자 집권세력인 ‘민족해방전선’이 무효화-> 내전시작
알제리 내전은 군부로 대표되는 세속주의세력VS이슬람주의세력의 첫 번째 내전임
알제리의 이슬람주의화
1989년 유가폭락, 알제리정부 재정 파탄, 하층민 젊은세력 불만 고조
1960년 프랑스식민지에 맞선 민족해방전선은 군부중심으로 일당독재 체제 유지함
무스타파 부얄리 : 시리아통치, 지하드를 통한 이슬람국가건설 주장, 소수 급진주의세력 모집 후 1982년 잠적 후 이슬람무장운동 결성 1987년 정부군에 사망
1982년 학생세력간 충돌로 학생 1명 사망, 교수인 마다니가 대정부 요구사항 및 비폭력반정부시위 ->투옥됨
1988년 알리 벤하지주도로 도시빈민청년 중심으로 반정부시위 확산
---> 대통령 샤들 리가 다당제를 인정하는 헌법 제정
1989년 이슬람주의 연합체 정당 ‘이슬람구국전선’ 결성(공동당수 알리벤하지, 마다니)
부얄리 후계자 알리 벤하지 등 무장투쟁세력, 민족해방전선에서 이탈한 마다니 등 다양한 이슬람세력 포진
이슬람구국전선의 부상과 몰락
1990년 지방선거 이슬람구국전선 압승 , 사회복지혜택, 여성에 대한 베일착용 의무화 등 계율 강제시도
중앙정부인 민족해방전성 정권은 힘을 잃음
1991년 걸프전발발->사담후세인지지 대규모 시위 ->민족해방전선 지도자들 모욕과 위협 느낌
당수 1 알리벤하지 사담 후세인지지. 당수2 마다니는 사우디왕가 지원으로 친 사우디but 벤하지 입장에 동의
청년층 친후세인 중산층은 자신들의 이익 제고하게됨
군부의 일방적인 선거구 문제로 연좌시위 =>군부개입 ->벤하지, 마다니 투옥 -->이슬람구국전선 분화
1차, 2차선거에서 이슬람구국전선 정부 출범예상 ->군부개입 -->이슬람구국전선 불법선언 ->이슬람구국전선 해산 ->4만명 체포 ->이슬람구국전선 와해, 분쇄 ->무장투쟁단체 결성됨 -> 1992년 압델하크 라야다 수장으로 이슬람무장그룹(GIA)결성
이슬람무장그룹의 자멸
몇 지방행정자치단체 이슬람무장그룹 받아들임 ->이슬람세금 후원->강탈->무장대원간의 싸움->중산층 외면
1994년 이슬람구국전선 레젬, 이슬람국가운동 메크루피가 이슬람무장그룹과 연대함
해외의 이슬람구국전선 행정부가 이에 반대하여 ‘이슬람구국군’창설
이슬람구국군은 정부와 협상 목표, 이슬람무장그룹은 이를 반대하면 갈등야기
이슬람무장그룹의 프랑스수도사 7명 납치, 살해 --> 대중 지지 잃음, 이후 이슬람무장그룹의 무차별 잔인 테러자행 -> 라이스와 벤탈라 마을 학살 -->마지막 수장인 ‘주아브리’가 이슬람무장그룹에 동참하지 않는 알제리인은 불신자로 선언 -->알제리 전체 파문 ->‘주아브리’ 종적 감춤 ->10년의 내전 끝에 세속주의 정부가 이슬람주의 운동 잠재
잔존세력은 알카에다지지->이슬람 마그레브 알카에다로 조직명 바꾸고 알카에다 북아프라키 지부가 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