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서점이란 타이틀은 내 삶에 변곡점이 되었을 정도로 내외적으로 반향을 불러왔다. 이 전의 라이프 스타일은 자본주의의 최고 가치라 할 수 있는 ‘경쟁’에 천착하여 내 자신의 커리어나 자녀의 교육, 내 가정이 사회에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위치에 민감한 삶이었다. 성장주의, 결과주의에 최적화된 삶을 스스로에게 증명함으로써 매년, 매달 의미 없는 반복의 연속이었던 중, 어느날 자문을 하게 됐다. 장고로 이어지고 과감한 결단을 하기에 이르렀다. 명목은 교육이었지만, 내 자신에게도 정신적인 휴식을 선사하고 싶었다. 이렇게 해서 하나밖에 없는 딸의 유년기(초등부)는 영어 조기교육, 선행학습이 없는 프랑스에서 자연과 함께 할 수 있었다.
기술시간에 자전거 조립하는 교육을 받으며 실학의 중요성을 체감했을 것이고, 국어시간에 다양한 주제로 이뤄지는 토론은 개인의 존엄을 지키는 기술로 익혔을 것이다.
사회시간 내내 배운 노동자로서의 권리는 이 사회를 구축하는 모두가 노동자임을 이해하고 성숙한 의식을 연마해왔길 바란다.
유럽에서 보고 느낀 것들은 많았지만, 특히 동네마다 소박한 서점들이 이웃 주민들과 소통하고 함께 성장해가는 모습이 너무 부러웠다. 귀국을 하면 그동안의 삶과 배치된 삶을 다짐했던 데에 유럽생활은 충분한 계기가 되었다.
현재 운영중인 서점 ‘조지오웰의 혜안’의 모티브는 영국 런던의 ‘노팅힐 북샵’이다.
조지오웰 또한 런던태생으로 노팅힐 가에 그의 생가도 남아있다. 서점 인테리어도 최대한 유럽 고서점의 느낌이 나도록 신경을 썼지만, 자재들 특히 서가를 짜는데 똑같은 자재를 구할 수가 없었다. 장미목 느낌이 나도록 튼튼한 원목에 덧칠을 세 번이나 할 정도로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았지만, 한국에서 나만의 개성이 깃들어 있으면 되겠다는 자부심도 덩달아 생겼다.
서점 개점과 때맞춰 강타한 인문학 열풍은 여러 매스컴에 소개되기에 이르고, 짧은 시간동안 전주의 명소로 등극하는 등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일방적으로 얻기만 한 관심과 사랑을 어떻게 환원할까 고민을 한 결과가 이웃 주민들 더 나아가 지역민들과의 문화적 컨텐츠 향유였다. 이 지역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명사들을 개인의 인맥을 동원해 북콘서트란 이름으로 소통의 장을 마련하였다. 문학인부터 영화감독,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조지오웰’의 이름으로 호출하면 흔쾌히 수락을 해주셨다. 당연히 지역민들에겐 어떠한 부담도 지우지 않았기에 호응도 기대이상이었다.
이제는 좋은 책을 소개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좋은 책을 만들자는 목표 하에 출판업에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다. 아직은 정치 입문자의 자서전과 내 저서들이 전부긴 하지만 안목을 키우고 경험이 쌓이면 평단과 시장에서 주목받은 양서가 나올꺼라 확신한다. 예전과 달리 지금, 그리고 앞으로 삶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내가 행복한가’이다. 신념이자 가치관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