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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간준비호 2018. 12] 마을을 산책하다 1 - 강주영 기획위원장

마을을 산책하다1

- 떠오르는 초승달 기우는 그믐달 전주 객사에서
 

강주영 기획위원장

 

전주 객사 거리에 섰다. 팽팽한 얼음 바람이 온몸을 오그린다. 전주객사(客舍,보물 583호)는 전주시 원도심 충경로(忠景路)에 있다. 거리 이름부터가 고리타분한 충경로이다. 민을 받들어 공경한다로 고쳐 읽는다.

 

전주 객사에는 풍패지관(豊沛之館) 현판이 크게 걸려 있다. 풍패지관에서 고금과 동서를 생각해 본다. 한나라 태조 유방의 고향이 풍현의 패읍이었다. 풍패는 건국자의 고향을 의미한다. 전주는 조선왕조 이성계의 본향이니 과연 풍패지관이다. 그러나 탯자리와 일어섬은 달랐다.

 

이성계는 동북에서 일어나 한양에 도읍하였다. 한양은 일제의 경성을 지나 서울이 되었다. 지금 서울 일극이 내 나라의 모든 도시를 호령한다. 풍패지관 객사에서는 왕의 상징인 궐(闕)패를 모시고 초하루와 보름인 삭망(朔望)에 예를 드렸다. 삭망례(朔望禮) 또는 망궐례(望闕禮)라 한다. 한양의 임금을 향하던 삭망례는 오늘 더욱 크고 강하다. 지역 정치인은 서울 중앙당을 뻔질나게 드나들어야 한다. 지방의원은 국회의원의 비서이다. 당이 민주화되지 않았다. 전주광역도시론 같은 사고는 서울을 부러워한다.

 

서울은 뉴욕을, 전주는 서울을 따라잡자고 한다. 서울 짝퉁 전주를 만들려고 한다. 인 서울(In Seoul)을 만드는 이들은 서울인들이 아닌 지역인들이다. 근대 생산력 진화, 성장 중심의 병증이다. 서울을 따라 가려는 보름과 그믐의 삭망례가 일상화되고, 내면화되었다. 삭망례를 어찌 옛일이라고만 할 것인가?

삭망례를 할 수 있는 이들은 권력자들이었다. 삭망례 의식을 지킬수록 체제의 권력은 더욱 굳세진다. 그 논리를 민에게 전파하고 내면화시킨다. 삭망례는 체제 유지의 이념 행사이다. 오늘도 삭망례는 넘쳐난다. 객사는 지방에서 중앙정부를 상징하는 시설이다. 국왕이 직접 다스리는 중앙집권주의를 상징한다. 지금도 그렇다. 자치분권 시대라 하지만 이름뿐이다.

삭망례를 행하던 논리를 버리지 않고 뒤집어 본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삭망례를 혼용무도(昏庸無道)한 한 사내일 뿐인 임금을 끌어내릴 수 있던 정신에 행하는 의례로 생각해 본다. 그것은 천하를 아우르는 왕도(王道)이지 한 명 임금의 패도(覇道)에 행하던 것이 아니다. 왕 위에 존재하는 민심에 행하던 삭망례이다. 대동사회를 염원하는 참 선비의 의식이다.

전주향교 만화루를 지나면 대성전이다. 오성십철십팔현(五聖十哲十八賢)을 배향하였다. 객사에서만 삭망례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공립학교 향교와 사립학교 서원에서 옛 성현에게 삭망례를 행하였다. 옛 성현이 꿈꾸는 국가 위의 천명에 예를 올렸다.

속 좁은 충(忠)과 입신양명(立身揚名)의 바람도 있었겠다. 하지만 선비의 도로 천명에 예를 올렸을 것이라 그렇게 생각한다. 당대의 사유는 국가의 왕이 아닌 천하의 왕도였다. 언제든지 한 사내를 끌어내릴 수 있는 천명을 다짐하였다. 문묘배향의례를 고리타분한 제사 따위로 볼 일이 아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賊仁者謂之賊, 賊義者謂之殘. 殘賊之人, 謂之一夫. 聞誅一夫紂矣, 未聞弑君也(적인자위지적, 적의자위지잔, 잔적지인, 위지일부. 문주일부주의, 미문시군야)” “인(仁)을 해치는 자를 흉포하다 하고 의(義)를 해치는 자를 잔학하다 하는데, 흉포하고 잔학한 인간은 한 평민에 지나지 않기에, 한 평민인 주를 죽였다는 말은 들었어도 임금을 살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맹자 양혜왕 하-

팥으로 메주를 쓰는 견강부회(牽强附會)인가? 촛불이 혼용무도한 여왕을 끌어내렸다. 사대부의 삭망례가 민중화된 자랑스러운 동방객사(東方客士)이다. 전주의 촛불은 공교롭게도 객사 앞에서 타올랐다. 서울에서도 광화문과 종묘 앞에서 타올랐다.

 

전주 전북의 남녀노소가 한자리였다. 록(rock)과 판소리가, 초등학생과 팔십 노장의 말이 공감하고 공진하였다. 여민동락(與民同樂)이었다. 민과 즐거움을 같이 하는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를 소망했다. 갑질의 불평등, 편파성, 부당성, 불공정한 난세를 물리치고 공정하고 평등이 자라는 대동사회를 염원했다.

아뿔싸! 민주의 올드보이들이 귀환하여 대동사회로가는 길목을 막았다. 여제의 환관들이 그대로 남았다. 시대와 사회 교체를 정권 교체로만 머물게 했다. 올드보이와 환관들이 거듭 이합집산한다.

삼성공화국의 세자 이재용이 석방되었다. 2018년 2월 5일이었다. 돈이 국가 위에 있음이 분명해졌다. 촛불은 민본이었다. 민에 의한 절차로서의 민주인 민중에 의한 'By the people'은 민증을 위한 민본 'For the people' 없이는 민이 누리는 'Of the peole'이 되지 못한다. 자본 민주의 병증이 민본을 공격했다. 옛 사대부에게는 국가, 왕 위에 천명이 있었다. 그래서 무도한 왕을 한 사내로 처단할 수 있었다. 그 천명이 민심이고 민본이다. 국가 위에 민심과 민본이 있어야 한다.

돈으로 국가권력을 샀다. 재벌공화국이 존재함을 증명하였다. 그 사람이 집행유예를 받았다. 과연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은 명불허전이 아니다. 돈이 사회계약을 제압했다. 아니 애시당초 사회계약이란 감언이설이 아니던가? 투표가 국민의 일반의지로 국가를 결정한다는 루소의 견해가 쓰레기통에 처박힌 지 오래다.

투표민주주의뿐 아니라 광장의 촛불민주주의도 돈 앞에 무력함을 증명했다. 대통령도 ‘악마의 맷돌’ 자본이 갈아 버린 사법 권력을 되돌릴 수 없다. 근대 민주주의의 병증이 그대로 드러났다. 일개 판사 따위를 들먹일 일이 아니다. 대통령의 개혁의지를 의심할 일도 아니다. 대통령도 어쩌지 못하는 국가 위에 돈이 있다는 공공연한 비밀을 다시 상기시켰다. 천하의 도가 돈인 세상이다. 공화국의 대통령도 전하(殿下)가 아니고 전하(錢下)일 뿐이다

이재용의 석방은 예견된 일이다. 로펌이 대한민국 법리를 바꾼다고 한다. 로펌은 재벌이 돈으로 움직인다. 돈이 법보다 위에 있다. 판사가 양심대로 판결한다는 것을 믿는 것은 어리석다. 검찰이 재벌이 산 로펌을 이겨낼 수 있을까?

촛불로 환호한 때가 까마득한 일이 되었다. 혼용무도한 여제를 끌어내렸다. 아뿔싸! 법을 지배하는 세력도, 을미적을미적 따라오던 정치도 그대로 두었다. 체제교체를 정권교체로 되치기 당했다.

법치국가라니! 돈이 법을 이겨서 법치국가가 아니라고 하는 게 아니다. 법이 소수 대의권력에, 인성이라고는 쌓을 기회가 없는 창백한 고시엘리트에 지배되고 있기 때문이다. 법과 민 사이에는 초강력 가리개가 쳐져 있다. 법이 소수의 지배물이어서는 곤란하다. 서방보다 몇백 년 앞서 헌법인 ‘경국대전’을 가졌던 나라이다.

전주 객사의 북쪽 임금을 향하던 삭망례가 몇십 년 태평양을 넘었다. ‘사드’는 또 다른 백년의 유라시아를 만나는 길을 봉쇄한 자물쇠였다. 대륙으로 가는 길을 막은 기지국가화, 대륙분단의 철책이다. 내 나라를 태평양의 절해고도에 가두었다.

신자유주의의 헛세계화가 아닌 아시아 대륙이 들끓고 있는 진세계화를 우리는 보지 못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슬람국가들의 재이슬람화와 동진을 보지 못한다. 이슬람 세계의 갈등은 알라의 공정함을 버린 세속화한 서구식 이슬람국가와 이슬람 문명과의 갈등이다. 이슬람 자체의 갈등이 아니다. 이슬람에서는 국경이 없으면 난민이 없다고 한다.

러시아의 푸틴이 주장하는 신유라시아의 굴기는 나토와 아메리카로부터 탈주하는 또 다른 백년의 굴기이다. 신시대의 촛불이 타올라 유라시아 대륙으로 헬조선의 청년들이 갈 길목을 사드가 막았다. 하니 청년들은 ‘흥’할 뿐이다. 희망을 주지 못 하는 진보 꼰대들이다. 청년들에게 “진세계화의 유라시아 대륙으로 가라.” 고 말하지 못한다.

오로지 좌/우와 민주/비민주의 독법으로만 세상을 보니 헛세계를 본다고 하면 과도할까? 태평양 너머의 국가와 일희일비할 일이 아니다. 미국의 헛소리에 대응할 시간이 없다. 천하가 내 나라보다 더 넓음을 생각하여 좁은 국가주의를 버려야 한다.

국경 없는 거주 이전의 자유가 헬조선을 탈출시킨다. 태평양은 멀고 대륙은 가깝다. EU는 개별국가들이 있어도 국경이 없다. 지금 아세안 국가들이 그렇다. 트럼프가 유라시아의 진세계화에 놀라 미국의 국경을 쇄국한다. 그러라고 해라. 우리는 대륙으로 가야겠다. 떠오르는 초승달로 가지, 기우는 그믐달로 가지는 않겠다.

지구는 둥글어 평평하나 높고 낮다. 또 다른 백년의 진세계화로 갈 때 청년들의 헬조선은 사라진다. 신자유주의 반대를 진세계화의 천하로 기수를 돌린다.

다시 동방객사 전주의 풍패지관으로 돌아온다. 전주는 왕조국가의 본향에서 어디로 진화해야 하는가? 고금합작하여 오늘의 전주 풍패지관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전주의 풍남문(?南門)은 풍패의 풍을, 지금은 사라진 서문인 패서문(沛西門)은 풍패의 패를 빌려썼다. 북문은 임금에게 향하는 북쪽이니 공손할 공 공북문(拱北門)이다. 이 문들은 오늘의 정신에서 어떤 문으로 다시 새길 것인가?

남원 황산벌에서 왜구 아기발도를 죽여 대승한 이성계는 임실로 오는 재를 넘었다. 전주 오목대에서 종친이 베푼 연회에 참석했다. 연회에서 이성계는 한고조 유방이 부른 대풍가(大風歌)를 불렀다.

대풍가는 유방이 천하 통일 후 고향인 패현에 들러 죽마고우들을 불러 모아 술잔치를 벌이면서 유방이 직접 지어 불렀다는 노래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금의환향가(錦衣還鄕歌)이다.

"큰 바람이 불어오니 구름이 날리네 / 천하에 위세를 떨치며 고향으로 돌아왔도다 / 어떻게 용사를 얻어 사해를 지킬 것인가 (大風起兮雲飛揚 威加海內兮歸故鄕 安得猛士兮守四方 대풍기혜운비향 / 위가해내혜귀고향 / 안득맹사혜수사방 )”

빗대어 창업의 뜻을 내비친 것이다. 고려 조정의 선전관으로 오목대 연회에 있던 정몽주가 울적해졌다. 말을 달려 미리내(지금의 전주천)를 건너 견훤 옛터 남고산성에 이르러 시를 남겼다. 남고산성 만경대에 정몽주의 시비가 전해온다.

천길 높은 산에 비낀 돌길을 홀로 다다르니 / 가슴에는 시름이여 / 청산에 깊이 잠겨 맹세하던 부여국(夫餘國) / 누른 잎 휘휘날려 백제성에 찾았네 / 구월 바람은 높아 나그네 시름 깊고 / 백년의 호탕한 기상 서생을 그르쳤네 / 하늘의 해는 기울고 뜬구름 마주치는데 / 하염없이 고개 돌려 옥경(玉京=개경開京)만 바라보네

千刀崗頭石徑?(천도강두석경광) / 登臨使我不勝情(등임사아불승정) / 靑山隱約扶餘國(청산은약부여국) / 黃葉賓紛百濟成城(황엽빈분백제성) / 九月高風愁客者(구월고풍수객자) / 年豪氣誤書生(백년호기오서생) / 天涯日沒浮雲合(천애일몰부운합) / 矯首無由望玉京(교수무유망옥경)

이성계냐 정몽주냐를 말함이 아니다. 정몽주 역시 몇 번의 이성계 쿠데타에 가담하였으니 충신이라 할 수도 없다. 다만 그는 고려를 개혁하여 새 시대로 갈 수 있다고 믿었다. 이성계가 아니더라면 정씨 국가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성계는 뒤집어야 새 나라로 갈 수 있다고 믿었다. 이성계의 길과 정몽주의 길이 서로 달랐다. 조선말에도 이 풍경은 그대로 연출된다. 개화파, 위정척사파, 민중파(동학혁명) 이렇게 나뉘었다. 근대 백년전쟁이 끊이지 않은 지금도 그러지 않은가?

위정척사라 하여 배타하지도 않는다. 위정척사를 쇄국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말 그대로 옳음을 추구하고 사악한 것을 버리는 것이다. 위정척사에는 천명의 도가 있었다. 다만 사대부에 갇혔을 뿐이다. 반외세의 차원에서 전봉준과 흥선대원군의 연합 시도가 있었다고도 한다. 사대부의 천명의 도가 민중화한 것이 인내천, 곧 동학이 아니던가...? 하여 우리 고장 이광재의 소설 혼불문학상 수상작「나라 없는 나라」에서 개화파 이철래는 민중파로 전향한다.

그는 우금치 전투에 참가하여 논산벌 그 어디에선가 죽었다. 고금을 섣불리 분단하고 줏대 없이 일본에 붙은 개화파가 도리어 더 못마땅하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을 고리타분한 늙은이로만 보지는 않는다. 고려 개혁파의 정몽주에 견줄 수는 없는가...? 부질없는 생각이지만 전봉준, 이하응, 김옥균이 만났더라면 조선식 진개화로 갔을지도 모르겠다.

전주를 ‘왕의 도시 민의 도시’라고 민선6기 전주 시정은 이름하였다. 왕과 민을 이어서 생각한다. 말로는 민이 왕인 시대이다. 민은 무엇으로서 왕이 되고 누릴까? 전주의 정치에서 왕과 민의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왕의 도시 민의 도시’가 시민에게 공감하여 공진하지 않는다. 전주 관광의 홍보 카피에 머문다는 느낌이 가시지 않는다. 오늘의 풍패는 무엇보다도 전주 정신, 아니 전라도 정신의 부흥에서 나올 일이다.

정신의 부흥이 시민적 공진을 이루지 않고 무엇인가의 조형물로서 그 자리를 대체할 수는 없다. 의심해 본다. 이성계는 살지도 않았으며 단지 본관이 전주라는 것 말고는 없다. 풍패 전주가 옛선비의 아름다운 마음이기는 하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다. 임금의 어진을 모신 경기전과 민은 너무나 멀다. 왕의 뜰 경기전에 매화가 필 때에 백성의 골목길에서는 막걸리 냄새 나는 비가 내린다.

최명희 선생의 소설 「혼불」에서 꽃심을 빌려와 전주시는 2016년 6월에 전주정신으로 선포했다. “꽃심” 정녕 아름다운 말이다. '꽃심'은 포용의 정신 '대동'과 멋스러움과 품격의 '풍류', 의로움의 정신 '올곧음', 전통을 통해 새로움을 추구하는 '창신'의 정신을 모두 품고 있는 말이라는 뜻으로 전주시는 썼다. 여기 최명희 작가의 원문을 옮겨 본다. 아름다운 문장이다.

"오천년 역사 속에 단 몇 십년 하찮게 꿈틀거리다 죽은, 후백제라는 지렁이가 아직도 여전히 전라북도 전주부 완산정(完山町)에 동네 이름으로 살아서 묵묵히 그 혼이 용틀임하고 있는 것이야. 아직도 전주 사람들은 완산에 산다. 저 아득한 상고(上古)에 마한의 오십오 개 소국 가운데서 강성한 백제가 마한을 한나라씩 병탄해 올 때, 맨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전라도 지역 원지국(爰池國)의 수도 원산(圓山), 그 완산, 전주, 그리고 빼앗겨 능멸당해 버린 백제의 서럽고 찬란한 꿈을 기어이 다시 찾아 이루겠다고 꽃처럼 일어선 후백제의 도읍 완산. 그 꿈조차 짓밟히어 차현 땅 이남의 수모 능욕을 다 당한 이 땅에서 꽃씨 같은 몸 받은 조선 왕조 개국 시조이신 이성계. 천년이 지나도 이천년이 지나도 또 천년이 가도, 끝끝내 그 이름 완산이라 부르며 꽃심 하나 깊은 자리 심어 놓은 땅. 꽃의 심, 꽃의 힘, 꽃의 마음, 꿈꾸는 나라. 결단코 잊지 않고 잃지 않고 맨 처음 나라 받은 그 마음을 밝히면서 아직도 귀순 복속하지 않은 마한의 순결한 넋으로 옛 이름 옛터를 지키는 전주 완산, 완산정, 완산 칠봉, 완산다리 ‘그 이름을 들으면 눈물이 나.’"

 

‘꽃심’, 문학적 서사로 정녕 아름답다. 산뜻하다. 우리끼리는 그렇다. 그렇지만 전국으로 아시아로 유라시아로 꽃심이 갈 수 있는가? 청년들의 막힌 가슴을 뚫어주는가?

전주는 역사문화도시인가. 아니면 무색무취의 아파트도시인가? 동과 서가 소통한 도시인가? 짬뽕이나 잡탕이 나름 뿜어대는 퓨전도시인가? 예향이라 말하지만 거리의 간판은 전깃불만 빛나 거리풍경을 압도한다. 예향 분위기는 없다.

고속도로 입구의 호남제일문은 쓸쓸하다. 가히 간판 도시이다. 거리의 풍경은 전주의 인문이 드러나지 않는다. 어디가든 옛을 말하지 않는다. 그 옛이 법고창신(法古創新)하여 오늘의 그 무엇이라 할만한 것이 없다. 옛과 오늘이 불통된 도시이다.

기억하는데 80년대 전주 다방에는 한국화가 무성했다. 고로(故老)들이 그 나름의 시대를 말하고 예술을 논했다. 대학의 청춘들이 한국판 브나로드(V narod)를 외치며 민중 속으로 갔다. 촌스러움이었던 농악풍물과 굿과 소리를 불러내었다. 가히 80년대의 전주는 민중문화 부흥의 중심이었다.

막걸리 집에서 신청년들이 들끓었다. 마르크스보이/걸들, 청년 전봉준들, 모던보이/걸, 민족주의자, 문화패들이 어우러지고 싸우고 뭉쳤다.

꽹과리로 천둥 번개를 치고, 북으로 구름을 일게 하고, 징으로 바람을 일으키고, 장고로서 비를 뿌리니 오곡 만물이 풍성하다. 그 놀이패의 복식이 적, 흑, 청, 백, 황 오방색이다. 세계를 음양과 오행, 그리고 오방의 조화와 질서로 설명하는 음양오행, 오방사상과 하늘을 우러르고 사람을 존중하는 경천애인사상, 그리고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과 흥에 겨워 놀기를 좋아하는 기질 신명을 복원하였다. 이는 천하대동이었다.

그 정신으로 동서고금을 토론해야 했다. 정여립과 전봉준을 오늘에 살려야 했다. 체게베라의 옷이나 모자가 아닌 천하공물 전주 사람 정여립과 전봉준의 옷과 모자를 써야 했다.

이슬람 문명은 차 오르는 초승달이요. 기독교 문명은 십자가이다. 동방지소 전주, 전북, 전라도의 상징은 무엇인가. 전라도기(旗)를 만들 고심을 해야겠다. 그 깃발로서 변방을 일으키고 중심을 구해야겠다. 전라도는 정여립 이래로 변방의 서자였다. 중심의 속지였다. 경제로나 정치로나 그렇다. 대대로 생명의 땅이고 개벽의 한이 서린 곳이다. 생명문명의 녹색이여! 후천개벽 인내천의 대동하는 땅이다. 세계로 사통팔달하는 신시대를 꿈꾼다. 두보의 추흥팔수 중 한 구절을 떠 올린다.

“변방에 풍운이 일어 땅을 뒤엎고 / 강물을 뒤틀어 하늘에 용솟음하리( 塞上風雲接地陰 새상풍운접지음 / 江間波浪兼天龍 강간파랑겸천용)”

변방이 썩은 중심을 구원하는 당찬 전주인, 전라인을 만들 일이다. 새 세계를 창의할 일이다. 글쓴이의 여정은 전주 객사에서 김개남의 목이 잘린 전주 초록바위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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