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윤선배님이 고인이 되셨다고 아침에 시당마플 읽고 순간적으로 몇 개월 간 있었던 사건들과 연관되어서 잔상들이 생기더군요.
지방선거 중에 제 선거 도와주러 오시겠다고 하셔서 제 사무장 역할을 하셨던 분이 이범윤 선배님입니다. 제 경우는 선거를 거치면서 기존에 겉핥기식으로 알았던 당 사람들을 좀 알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정당에는 전설에서나 볼 수 있는, 민간 설화에서 나올 법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누구처럼 학습화 과정을 겪거나 이런 것이 아니기에 너무 평범하게 살다가 어느 순간 밖으로 뛰어나온 분들이 의외로 우리 정당 내부에는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생애 첫 정당이신 분들이 많습니다. 기존 주류적 기성적 사고에 반기를 들 수 있다는 것. 그 분들 자체가 이미 평범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우리들이기에 우리는 항상 참 많은 이유들로 다투는. 말이 되는 이유, 말이 되지 않는 이유, 말이 될 수 있유 등 수많은 이유들로 우리는 논쟁하고 다투고 그렇게 해 왔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특징과도 같습니다. 누구 하나 모나지 않은 사람들이 없다고 할 정도로 강한 성격과 직선적 풍모를 하고 있는. 그런 성격이 아니라면 우리도 너무 쉽게 제도권에 편입이 되어 나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벽에서 튀어 나온 못과 같습니다.
지방선거 때 시당 전략회의 때 서로 격렬한 논쟁의 장에서 보았던 분이 이범윤 선배님입니다.
빈소에 모인 분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범윤님에 대해 그런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세상에 손을 놓았기에 유독 술을 좋아하셨다는겁니다. 사실 우리 사회는 제대로 알면 알수록 이해를 할 수가 없는. 어떤 나라의 역사를 보더라도 우리 같은 나라가 정말 없습니다. 이범윤님은 광장 모임 등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 참여당 시절 알게 된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기 좋아하셨습니다. 유독 우리 사람들과 술마시기를 좋아하셨고, 말 나누기를 좋아하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님들이 세상에 대한 소통의 창구였던 것 같습니다.
신입 당원이 오면 퀭한 눈빛으로 오신 분들이 간간히 있습니다. 너무 주변과 사고가 틀려 괴로웠던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찾다 찾다 오셨다는 분도 있습니다. 요즘에는 세월호 사건으로 입당한 분들에게서 간간히 그런 정서적 상태를 느낍니다.
이범윤 선배님의 경우는 암이 발병되어 혼자 투병하셨고, 나중에 시당에 알려졌습니다. 선거 끝나고 강원도로 우리당원들 모여 놀러갔을 때만 해도 당사자도 몰랐을 것으로 봅니다. 그나마 제게는 양반님과 추억이라면 선거와 강원도가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진찰도 8월경에 받으셨던 것 같아요. 초기에 암을 발견하셨는데, 그것을 정의당에는 알리지 않았다가 나중에 강물님과 여울님이 병원에 들르셨다가 양반님 보시게 되어 알려졌습니다.
10월과 11월 사이 이범윤 선배님 오프 활동이 거의 없었죠. 몸이 아프지만, 남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서 알리는 성격이 아니십니다. 근 3개월간 투병생활하면서 제가 파악 양반 선배님은 결국 온라인에서 보여준 행보로만 파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구에서 한 번 선거사무장을 하셨다고, 걱정을 조금 하셨던 것 같습니다. 위원장 공석상태였기 때문에, 그래도 어떻게 해서 공동위원장 체제가 되었고 서구 당원 모임을 해서 다시 힘있게 나가니까 그런 댓글을 하신 것이 기억이 나는. 역시 중심이 생기니까 잘 되어간다고... 가끔 올라오는 댓글이나 페북 등에서 반응을 보면 우리 당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 꾸준히 우리 당원님들 올라온 글에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시당차원 마플에도 꾸준하게 댓글을 올리시거나 확인하셨습니다. 그것이 투병중에 그런 활동 등을 하셨습니다.
시당차원에서 병문안 간다고 11월 초인가 충대 병원에 갔습니다. 그 때는 뼈로 전이가 되었다고 하셨는데, 환자인 당사자인 분이 너무나도 어두운 표정이 없었기에 거기에 병문안 갔던 저나 우리님들도 크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초기라고만 말씀하시니까... 근데 뼈로 전이 되면 굉장히 심각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이틀 전에도 시당 마플에 선배님이 짧은 글 하나 올리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범윤 선배님 마지막을 우리 당과 광장분들 주변에서 있다가 가신 것 같습니다.
몸이 편찮으셔서 유일하게 외부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온라인 공간이었고, 그것을 페북이나 댓글 등으로 표현하셨던 것 같습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안다고 하죠. 자신의 마지막을... 어렴풋이라도. 제 어머니 돌아가실 때 경험해보니 자기 주변에서 가장 사랑하는 이는 그것을 직감한다는 사실. 어쩌면 양반님에게 가장 좋아했던 사회활동 중에 하나가 우리 당원님들과 광장 분들 만나서 술마시고 격렬하게 토론도 하는 그 순간이었을 수가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것을 온라인을 통해서라도 꾸준히 하셨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삶의 낙중에 하나였던 것으로... 몸이 편찮으셔서 외부활동 못하니, 그것을 페북에서 우리 님들 글 올리는 것 보시고 그것에 반응하시고, 마플에 글 올리시는 것으로 풀었던 것 같습니다.
이범윤 선배님의 온라인 활동을 떠올려 보면, 과거에 읽었던 시 한 줄이 생각이 나는...
“여태껏 빨간 장미가 비 떨어지던
그 저녁처럼 그토록 새빨간 적은 없었네.“
선배님의 삶에서 도드라진 빨간색은 우리와 함께 격렬하게 다투기도 하고 함께 나가서 피켓도 들어보고 술도 마셔보고 의기투합도 했던 그 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것이 이범윤 선배님의 가장 새빨간 시기였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참 많은 이유들로 다투기도 또는 서로 행복해 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그 침묵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선거 때 도와주신 거 오랜 시간 흘러도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고인께서 저를 걱정하셨던 부분이 저의 너무 변칙적인 모습들입니다. 이 부분은 앞으로 고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