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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태일 따라걷기 후기]‘노동자가 세상의 주인, 우리는 하나’
‘노동자가 세상의 주인, 우리는 하나’
장그래 서포터즈와 함께하는 전태일 따라 걷기를 다녀와서
 
- 서대문 당원 석재임
 
7월 첫째 날 서울은 말 그대로 하늘에 구멍이 뚫렸나 할 정도로 호우가 쏟아졌다. 서울 시내 모 대학에서는 건물이 침수되고 또 다른 대학에서는 천장이 무너졌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다. 내심 다음 날로 예정되어 있던 전태일 따라 걷기 행사가 무산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후로 마음에 남는 이름이었지만 직접적으로 그의 삶을 경험할 기회는 없었기에 이번 걷기에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행여 행사가 취소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행사 당일 날씨는 나의 기우를 비웃기라도 하듯 걷기에 너무나도 좋은 날씨였다. 적당히 구름이 끼어서 걷기에 너무 덥지도 않게 딱 좋은.

오후 2시 30분 동대문역 6번 출구를 나와서 흥인지문 앞 공터에서 모이기로 했다. 지하철역을 나와서 처음에는 노점상과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틈에서 공터가 어디인지 찾기 어려웠던 주변을 돌아보던 중 우측으로 30도쯤 되는 곳에 중후한 흰머리가 눈에 띄는 서울시당 김종민 위원장님이 보여 그 곳이 모임 장소임을 알 수 있었다. 한 두 명씩 참여한 당원들이 조금은 어색하게 띄엄띄엄 서 있었고 정책위원장님이 칼같이 한 명 한 명 명단을 체크하며 회비를 걷어갔다.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5,000원의 회비가 무색하게 기념품이 더 많은 행사였다. 10분 정도 모이기를 기다렸다가 길 건너편에 위치한 전태일 재단으로 이동했다.

창신동 길을 올라가다가 골목에 위치한 재단 앞마당에 의류 부자재로 보이는 레이스가 햇볕을 쐬고 있었다. 재단 1층과 지하는 봉제공장이 임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묘하게 재단과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2층 교육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장그래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전태일 등신대였다. 왜 장그래 서포터즈가 전태일 따라 걷기를 해야 하는지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구조물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태일이 함께 하고자 했던 그 시대의 수많은 시다가 바로 장그래고, 장그래에게 가장 필요한 친구가 바로 전태일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영상을 통해 전태일의 행적에 대해서 간략하게나마 알 수 있었고, 이어진 전태일재단 사무총장님의 말씀을 통해 전태일의 삶과 사상에 대해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전태일 정신의 핵심을 ‘풀빵’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나눔과 연대의 정신이라 표현하신 것이 인상깊었다. 전태일 평전이나 영화를 통한 이미지에서 전태일은 열사이자 투사의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과격한 말 한 번 한 적이 없고, ‘시다’들보다 좀 더 형편이 나은 우리가 도와야하지 않겠냐는 말을 자주하며, 자신의 차비를 털어 풀빵을 사주고 자신은 2~3시간을 걸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너무 피상적인 이미지로 그를 기억하고 있지는 않았나 싶었다. 전태일은 어쩌면 너무 마음이 여려 자기보다 못한 이를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김종민 서울시당 위원장의 전태일은 천재였다고 생각한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그 시대에 나올 수 없는 인물을 천재라 생각한다며, 정규교육과정도 이수하지 못한 그가 한자에 어려운 법률용어로 된 근로기준법을 혼자 공부하며 시대를 앞서가는 생각을 한 점이 그를 천재라 할 수 있다는 말씀에 동의가 되기도 했다. 1부의 마무리로 참가자 전원에게 전태일 평전과 재단에서 만든 손수건 한 장씩이 지급되었다. 책만 해도 정가가 13,000원이었는데 5,000원의 참가비로 너무 많은 것을 받는 것은 아닌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재단을 나와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어르신들이 모여 계시는 한울삶으로 이동했다. 한울삶 골목 어귀부터 바닥에 새겨진 돌판의 글귀들이 마음가짐을 다잡게했다. 한편으론 그 글귀들이 깨어지고 부숴져서 잘 알아볼 수 없는 것이 그 곳에 계신 유가족들의 현재의 상태가 아닌가하는 마음에 죄스러운 생각도 들었다.

한울삶에 들어서자 마자 벽면을 가득채우고 있는 영정들을 마주하고 가장 처음 든 생각은 정말 많다는 것이었다. 현대사에서 희생되신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실체를 막상 눈으로 확인하게 되었을 때 그 마음은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느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의 한울삶을 마련하기 전 셋집을 전전할 때 영정사진을 걸어두면 집주인들이 귀신을 몰고 다니냐곤 했다는 장남수 회장님의 말씀을 들으며 내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시간을 견디며 생활 해 오신 어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생각해볼 수 있었다.



한울삶을 나와 10여분 정도 걸어서 전태일 다리로 이동했다. 전태일 다리와 그 주변 청계천 길을 따라 동판들이 바닥에 묻혀있었다.
2,000여명의 성금과 참여로 만들어진 동판을 하나하나 읽는 재미가 전태일 따라 걷기의 또 다른 재미이지 않을까 싶다. 동판은 사람들이 많이 밟아주고 비벼줘야 반짝반짝 윤이 난다는 설명을 들으니 일삼아 더 밟으며 걷게 되었다. 다른 동상들처럼 위에서 내려다보는 형태가 아니라 기대고 만져볼 수 있는 동상이라 더 친근감이 들었다.

동상의 위치는 그가 일하던 평화시장 뿐 아니라 분신했던 장소, 자주 가던 명보다방이 모두 한 눈에 들어오는 위치라 더 인상적이었다. 분신지점에 새겨진 동판앞에서 설명을 들으며 마음이 숙연해졌다. 왼쪽건물 옥상에 올라 예전에 청계피복노조 사무실이 있었지만 현재는 ㈜평화시장 사무실이라는 곳을 보면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전태일이 분신으로 항거하면서 이루고 싶었던 그 노조를 만들기도 어려웠지만 지키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라는 현실이 가슴 아팠다.








걷기의 마지막은 바보회와 삼동친목회 활동을 하며 자주 들렀다는 명보다방에서 시원한 토마토주스를 마시며 이루어졌다.

무려 이 토마토주스도 회비에 포함되어있었다. 마치 그 시절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드는 다방 쇼파에 앉아서 그 시절 전태일은 이곳에서 무엇을 마시며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명보다방에서는 시당에서 준비한 퀴즈대회가 이어졌다. 무려 10,000원의 문화상품권이 걸린 퀴즈대회는 불꽃튀는 정답경쟁이 이어졌고, 전태일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땀의 가치를 지키는 것에 대한 한 문장씩을 작성하고 소회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각자가 생각하는 전태일과 땀의 가치, 정의당에 대한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 걷기를 시작하기 전 이런 이야기를 한번 나누고 걷기가 끝나고 나서 생각이 바뀐 점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다시 밖으로 나가 전태일 동상과 함께 단체사진을 찍는 것으로 걷기가 모두 끝났다.



걷기가 끝나고 나서는 많은 생각과 감정으로 복잡해졌다. 열사나 투사는 특별한 사람인 것일까? 스스로를 희생하며까지 이루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그의 죽음이 혹은 그의 죽음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내 삶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나는 또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 사람일까? 그 날은 내 스스로 질문도 잘 정돈되지 않아서 참가한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서울시당에서 후속사업으로 평전읽기 모임을 기획한다고 하니 그때도 참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다.

토요일 오후 가벼운 산책을 하기에도, 당 행사에 왠지 어색해서 혼자 나가기 어려운 사람에게도, 그 시절 평화시장이 어떠했는지 궁금한 사람에게도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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