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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10년평가위원회 의견수렴

  • [당원] 정의당 입당(5개월 후)의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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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brunch.co.kr/@nomemoria/52
  • (개인 블로그에 쓴 뒤늦은 입당의 변을 10년 평가 의견 수렴 게시판에도 옮깁니다. 10년을 평가하고 구체적인 제안을 제시하는 성격의 글은 아닙니다.)

    1.

     제대로 된 정당 정치에의 참여만이, 팬덤 정치와 유튜브, 내로남불과 말 꼬투리 잡기 싸움 릴레이에 의해 밀려난 사회적 약자 중심의 의제들 한복판으로, 정치판은 물론이고 나 자신 또한 끌어들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라는 생각은 아마도 꽤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렇다면 어느 정당에 가입하는 것이 좋을 것인가였는데, 원내 진입을 못 하고 있지만 지금 이 시대에 절실한 가치를 뚜렷하게 지향하고 있는 정당이 정답일지, 아니면 원내 진입은 했지만 거대 양당 사이에서 힘을 못 쓰고 있고 나름 고군분투하고는 있지만 진보 정당으로서 뼈아픈 실책을 가끔씩 하는 정당이 정답일지, 고민이 많았다. 또한 그렇다고 전자가 나와 지향점이 완전히 일치하거나 원내 진입을 한들 실수 없이 모든 것을 잘할 것 같은 정당인 것은 아니었고, 후자가 거대 양당 사이에서 완전히 독립적이 되기 위해 멋지게 싸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 또한 아니었다. 그러니까, 좀처럼 마음에 쏙 드는 정당을 찾기란, 또는 기다리기란 그렇게 희망적인 것이 아니었고 그렇기에 기다림이란 것은 정치에 관련해서는 실천적인 태도는 아닌 것이었다. 그럼에도, 최선이 없다면 차선이라도 선택하자는 결단이 아니라, 다른 것들을 감수하고서라도 그 당을 선택하게 되는 어떤 결정적 계기는 필요했다.

     

     제20대 대통령 선거는 심상정이 정의당 대선후보로서 두 번째 출마한 선거였다. 여러모로 상황은 5년 전보다 훨씬 좋지 않은 상태였고, 윤석열과 이재명의 진흙탕 싸움은 심상정은 물론이고 모든 사회적 정치적 의제들을 삼켜버렸다. 그것이 그 누가 진보 정당의 대선후보로 출마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이었다고 하더라도, 어쨌거나 그건 심상정의 한계를 확정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5년 전에 비해서 심상정이 새롭게 하는 이야기들은 별로 없어 보였다. 하지만 어쩌면 그 심상정의 한계는 심상정의 역할이기도 했다. 두 양당 후보가 서로를 비난하는 중에 빠뜨리는 것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들, 아니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의 '1분'을 할애하여 말하기 위해서는, 심상정은 자신의 역할을 자신의 한계 모습 안에 기꺼이 가두려고 하는 사람이었다. 그를 제외하고는 어느 후보도 사회적 약자와 국가의 무책임에 따른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심상정에게 왜 그것 이상의 역할을, 정치판을 뒤흔들고 양당 체제를 무너뜨릴 공약과 선거 운동을 하지 않았냐고 따져 물을 권리는 있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 더 이상 진보 진영의 그러한 비판을 감당하고 소화하고 그렇게 변화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여력의 고갈은 심상정이라는 정치인 개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세대 자체에게도 해당한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심상정은 어쩌면 바로 그러한 사실에 대한 시그널을 대선 기간 중간에 몸소 보였다. 당을 대표하는 대선후보로서는 이례적으로 개인적인 결단에 의해 잠적을 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 이것은 굉장히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거의 유일하게 노동자, 장애인, 여성, 이주민 등을 자신이 대변해야 할, 그리고 자신을 지지해주길 바라는 세력으로 생각하는 대선 후보가 모든 것을 다 손 놓아버릴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자신의 모습을 숨김으로써 국민들에게 선사하고자 한 것일까? 그것이 그런 계산적인 행위라고 볼 수 없으니, 정말로 심상정은 그냥 지쳐서, 자기 자신이 일단 살기 위해서, 어찌 됐든 이 대선 기간 동안 끝까지 후보로서 살아남기 위해서 말 그대로 생각할 시간 또는 생각을 안 할 시간이 필요했던 걸까?

     

     정의당은 당대표는 물론이고 측근들까지 심상정의 그러한 잠적에 그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그건 또 하나의 풍경이었다. 심상정은 당으로부터도 잠시라도 멀어지고 싶었던 걸까? 물론 그런 시간은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정상적으로 봤을 때엔 그런 시간은 대선후보 선출 이후 본격적인 선거 운동 시작 전에 가졌어야 할 시간이었다. 심상정과 정의당 사이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엎치락 뒤치락 3퍼센트 남짓한 지지율의 6석 진보 정당의 내부 기반이 그리 탄탄하지 않다는 것쯤은 예감할 수 있었다.

     내가 진보 세력 중 어떤 당이라도 가입하여 최소한 당비라도 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이쯤이었고, 정의당에 입당하고자 결심한 것은 심상정이 끝까지 완주하는 것을 보면서, 심상정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가 미약하게나마 대변하고자 했던 사람들에 대한 작은 책임감을 느꼈을 때였다. 그건 어찌 됐든 거의 유일한 원내 진보 정당인 정의당이 최소한 진보적 가치 차원에서만큼은 뒤떨어지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 꼴을 TV로 축구 보듯 바깥에서 구경하며 이러쿵저러쿵 들리지도 않을 훈수나 두는 내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2.

     그러니까 나는 다른 정당들이 아무도 챙기지 않는, 심지어는 배제하려는 존재들을 위해 그나마 목소리를 내는 정당에 들어온 것이다. 그것은 그 목소리가 이미 충분해서가 결코 아니고, 이 정당이 그 소외되고 소진된 존재들을 위해 쓰는 시간을 1분이 아니라 100분, 아니 24시간으로 늘리기 바라는 마음, 그리고 바로 그 조건 하에서 힘을 보태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입당을 하고 보니 당내 풍경은 내 생각보다 조금, 아니 많이 달랐다. 당원 게시판은 일베나 이준석 급의 안티 페미니스트들이 득세하거나, 더불어민주당원이 아닌가 싶은 사람들의 글로 가득 차 있었다. 자주 보이는 몇몇 아이디가 논리 없이 증오와 혐오만 가득한 비슷한 글들을 반복해서 올렸고, 아마도 그들에 지쳐 많은 당원들이, 아마도 당 자체도 당원 게시판을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나도 며칠 그들과 싸워보고는 지쳐 나가떨어졌다. 그들이 어느 단일한 하나의 정파로 단합되어 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들이 하는 말 자체를, 문자 그대로 그 내용과 의도 자체를 이해할 수 없는 글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입당한 후 당원 게시판에는 "페미 류장강 사퇴" 등의 문구로 대놓고 안티 페미니즘, 여성 혐오를 나타내거나, 검수완박 찬성에 대한 근거로 아직도 조국이 잘못 없이 기소된 피해자라는 주장만을 하는 글들이 다수였다. 그러니까, 강성 팬덤 민주당원 급으로 아직도 조국의 강을 건너지 못하거나, 일베나 이준석 급의 안티 페미니즘, 여성 혐오를 타겟 삼는 사람들도 정의당원인 것이었다.

     

     물론 당원들 사이에 의견이 서로 다른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고 또 바람직한 일이기도 하지만, 거대한 원칙의 문제에 있어서는 그것은 당원들이 공유할 세계관에 아주 큰 혼란과 무질서를 가지고 온다. 사태는 대충 이런 식이다. 많은 비평가들이나 당 안팎의 인사들이 지적하는 정의당의 큰 실수 3가지, 즉 조국 임명 찬성, 고 박원순 시장 조문 미참석 의원들에 대한 공격과 그 사태에 대한 사과, 검수완박 찬성에 있어서 정의당원들은 서로 입장이 180도 다른 사람들로 나뉘어 있다고 보더라도 무리한 과장은 아닐 것이다. 어떤 정의당원들은 조국 임명을 더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조국을 방어하지 않았다는 것이 실수라고 보고, 박원순 조문을 하지 않은 장혜영 의원과 류혜정 의원을 징계하거나 출당시키지 않은 것이 실수라고 보고, 민주당의 검수완박 법안에도 더 적극적으로 찬성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그들의 정치 철학과 원칙이라면 그들은 왜 민주당을 가지 않는 것인지, 왜 국민의힘을 가지 않는 것인지, 왜 정의당에 계속 남아서 정의당을 저 양당과 다름없는 정당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인지, 합리적인 이해를 갖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3.

     물론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만 절망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과는 다른, 다소 교묘하게 정치적 가치를 흩뜨리며 대안이 되지 못할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들 또한 많다. 가령 당이 진보정당의 최우선 과제여야 할 노동은 등한시하고 페미니즘이나 소수자 정치, 정체성 정치에 과도하게 몰입하여 진보정당으로서의 존재감을 상실했다는 류의 진단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제기되어야 할 의문은 이런 것이다. a. 정의당은 노동자를 등한시하거나 버려왔나? b. 노동자를 위한 정치가 부족했다고 하더라도,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의 소수자 인권을 위한 투쟁은 노동을 위한 투쟁과 분리되거나 그 둘은 서로 대립하는가? c. 진보정당은 자신이 헌신해야 할 이 땅의 소수자와 약자들을 위한 정치적 의제와 가치를 우선순위 매겨야 하거나 혹은 그런 우선순위는 당의 발전에 정말로 효용적인가? 그리고 나는 이런 질문들이 비대위 체제에서 '재창당 규모의 혁신'을 앞두고 있을, 앞두고 있어야 하는 정의당에게 지겹더라도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이 어차피 당원들의 이합집산을 통해 탄생과 재탄생을 끝없이 반복하는 것이라면, 새로운 당원들의 새로운 모임의 기준이 될 질문들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먼저, 노동이라는 가치 또는 노동이라는 현실 사안이 소수자 인권, 정체성 정치라는 것과 관계가 없거나 혹은 대립되거나, 갈등을 빚는 종류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태도에 대해 우리는 되물어야 한다. 내 생각에 그런 태도는 노동을 진보적인 관점에서 보지 못하는 태도다. 진보 정당이 노동이라는 가치를 제일 우선시한다는 것은, 노동이라는 것이 인간과 인간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가치임을 주장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아야 한다. 다시 말해, 인간에게 노동은 필수적이고 필연적인 것이거나, 아니면 반드시 건강한 노동의 시간이 인간의 일상을 점유하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노동과 인간은 필요충분조건의 관계이며, 적어도 진보 정당에게 모든 인권을 위한 투쟁의 목표는 건강한 노동을 향유하는 것이며 건강한 노동을 향유하는 것은 인권 보장과 사회 보장의 기본적인 전제 조건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 소수자, 사회적 약자의 문제성은 애초에 그들의 노동권이 위험에 처해 있거나 이미 노동이라는 테두리의 바깥에 있는 상태라는 것이며, 그들을 위한 정치 투쟁, 그들의 인정 투쟁, 정체성 투쟁도 필연적으로 그들의 노동권을 위한 투쟁과 다를 수 없다는 것이다. 정의당은 바로 이러한 지점을 더욱 강조하며 약자성 / 소수자성 / 노동 을 구분하기보다는 그들 간의 필연적 관계를 주창하고 유권자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진보 정당은 노동이라는 가치를 제일 앞장 세워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문제를 노동과 연관하여 해석하고 상상력을 발휘해 해답은 물론 문제 자체 또한 다시 새롭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 정당인 것이다.

     

     그러므로 b 질문과 c 질문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되며, 남은 a 질문이 유일하게 논쟁할 가치가 있어 보인다. 평가는 사람마다 다르고, 사실 a 질문은 끝없이 제기되어야 할 질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는, a 질문의 답이 b와 c 질문에 대한 극명하게 상이한 대답을 바탕으로 무한히 갈리기만 하는 형국이라면, 그 기초적인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정치성의 대립을 과연 소수 진보 정당 안에서 계속 안고 가야 하는지, 아니면 서로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의 바깥에서 필요에 따라 소통하고 또 경쟁하는 것이 맞을지, 생각해볼 시점인 것 같다. 당원 대거 탈당이든, 분당이든, 당 해체 후 개별 창당이든, 당이 재건되는 형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재건을 위한 기치를 무엇으로 들고 나오느냐가 정의당 또는 진보정당의 운명에 결정적이라 할 것이다. 사실 단순히 생각해보면 별 게 있는 게 아닐 수도 있다. 앞으로 사안과 상황과 조건에 따라 그 경계와 정체성이 모호하거나 유동적일 수 있을 사회적 약자 프레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약자성'이 개별 상황에 대한 유불리를 보는 것이 아닌, 그리고 감성적인 판단에 의한 것도 아닌, 역사적이고 학문적인 사실에 근거한 상식을 토대로 하는 보다 나은 '사회성'을 위한 기준과 지향점임을 동의한다는 조건 하에서, 격렬하게 토론하고 합의할 수 있는 합리성을 갖출 수만 있다면, 무엇이 더 필요하겠나. 하지만 첫 정당 가입 후 보게 된 내부 풍경들은 그것이 굉장히 어려운 것임을 절감하게 했다. 그렇더라도 그것이 조금이라도 쉬운 환경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 이유는 진보 정당이 할 일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고, 내부에서 기초적인 가치 합의도 되지 않는다면 서로의 발목만 잡을 뿐 그 이상의 많은 일들을 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당장의 파국을 두려워하기보다는, 그런 기초적인 합의만 바탕이 된다면, 어떤 어려운 상황도 헤쳐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 용기가 지금의 정의당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이미 이 당의 풍경은 충분히 파국적이지 않은가.

     

     기록적인 폭우가 이틀째 내리고 있다. 도시는 문자 그대로 뒤집어졌고, 기초생활수급자와 발달장애인 가족이 반지하에 들이닥친 비 때문에 숨을 거뒀다. 진보 정당이 노동이 먼저니 페미가 먼저니 비례대표가 사퇴를 해야 하니 마니 싸울 때가 아닌 것 같다. 의견을 좁힐 수 없다면 각자 따로 모여서 각자의 일을 하면 된다. 어차피 원내 교섭 단체도 되지 못하는 소수 정당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고 무기력해하거나 변명만 할 거라면, 같잖은 당권, 10년의 역사 따위 버려버리고 일단 뭐라도 할 수 있는 일을,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정의당은 심지어 원외 정당이 되는 것마저 두려워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정치인으로서 무얼 하고 싶은지를 먼저 생각하길 바란다. 정당은 그걸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저 그걸 하기 위해 모인 군집, 풍경이 될 뿐이어야 한다. 정당이 정치 수단이 아니라는 말은 아니지만, 단순 수단으로서만의 정당이 어떻게 사당화되고 더러워졌는지는 저 양대 정당들을 보고 충분히 배우지 않았는가. 정의당은 그들과 달라야 한다. 낭만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지금 이 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서로 어떻게 해야 한다가 아닌, 내가 정치로 하고 싶은 것, 그걸 서로 고백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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