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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위에 바란다

정의당 혁신안 초안을 읽고 (1)

  • 2020-07-31 12:55:43
  • 조회 1209
안녕하세요 2014년 1월 입당해 6년 넘게 당적을 유지하고 있는 당원 최재욱 입니다. 오랜만에 정의당 관련해 글을 쓰네요. 예전엔 이런 저런 글도 당게에 쓰곤 했었는데 그 모든 게 의미없단 느낌을 받은 후 부터는 정의당과 관련해 무언가를 쓸 시간에 친구를 한 번이라도 더 만나고, 공부를 한자라도 더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아마 탈당신고서가 좀 더 찾기 쉬운 곳에 있고, 탈당이 클릭 몇 번으로 가능했다면 전 진작 당적을 내려놨을 겁니다.

당과 관련해 글 쓰는데 소중한 시간을 쓸 만큼 나름 뜨거운 열정을 품었던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정의당에 회의적인 사람이 되었는지, 그 과정을 한번쯤 정리하고 싶었는데, 혁신안 초안을 읽고 이제야 이것 저것 적어봅니다. 정의당이 한국 사회에서 해줘야하는 역할은 분명 존재히는데 공개된 혁신안 초안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당의 주류들은 지금 정의당에 필요한 혁신이 무엇인지 감도 못잡고 있는 게 분명해 보이니까요. 네 편으로 나눠 올리는 긴 글이 될 예정이라 걱정이 좀 되지만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이 부분에 대해 어떤 영감이든 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거창하게 시작은 했지만 사실 제 입당엔 별 이유가 없었습니다. 열정적인 당원들이 흔히들 공유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에 대한 향수도 없었고 그냥 세상이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보수는 그걸 되려 바라고 부추기는 것 같고, 그래서 진보쪽으로 눈을 돌려봐도 민주당엔 크게 마음이 가지 않던 차에 정의당이 그나마 괜찮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 때문에 정의당에 다달이 당비를 내는 방식으로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일조해보자는 생각으로 입당을 결심했습니다.

이처럼 단순한 느낌에 기댄 근거없는 판단으로, 그냥 문득 문득 들던 "세상 돌아가는 일에 너무 무관심한 것 같다"는 부채감을 한 달에 만원씩 내는 것으로 조금이나마 덜어보자 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닌 마음으로 들어온 당이었기에 큰 기대도 실망도 없었습니다. 그냥 어디가서 당원이라고 밝히기 부끄러운 일만 뉴스에 안나왔으면 좋겠다 정도였죠

그랬던 제가 정의당에 무언가를 기대하게 되고 그만큼 실망하게 된 건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 서울에서 살게 된 뒤의 일입니다. 아무 댓가 없이 필요한 것들을 누릴 수 있던 부모님 품에서 벗어나 고졸인 제가 선택할 수 있던 몇 없는 허드렛일 중 하나를 택해, 한달 내내 업무에, 손님에게,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치이고, 그 댓가로 받은 월급의 대부분을 밥 값과 집 값으로 지불하고 나면 통장 잔고에는 늘 십 몇 만원 정도 남는, 그저 매일 소모되고 있다는 생각만 들 뿐인 생활로 내쳐지니 많은 게 달리보이더군요.

그 차이가 가장 크게 다가온 건 사람에 대한 시각이었습니다. 인간이 사실 대체로 별로라는 걸 낮은 곳에 있어보니 알겠더군요. 자기보다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을 하대하는 것이 무슨 권리나 그간 본인이 노력해 이만큼 올라온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되는냥 행동하거나,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이용해 자기 욕심과 잇속을 채워보려는 사람들을 일일이 싸우고 상대하기 지칠만큼 차고 넘치게 봤습니다.그럴때마다 저런 인간들은 차라리 다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만큼 악에 받쳐서 매일을, 몇달간 버티다보니 갈수록 날카로워지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들과 비슷해져 가는 저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생각했습니다. 저와 같이 근무할 때 절 고졸이라고 무시하던 걔도, 대학만 가면 앞으로의 인생이 순탄할 것이란 말만 믿고 막대한 빚을 져가며 돈과 시간 투자해 졸업장 땄는데 돌아온 게 고작 이런 삶이란 사실을 견디기 힘들어 그렇게라도 본인이 그간 투자한 것들이 완전히 헛된 건 아니었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돈 한 푼이 아쉬운 사람들 모아서 위험하고, 힘든 일터로 보내고 그들에게 돌아가야 할 돈 떼먹어 외제차 몰고 다니던 그 인간도 나름 착하고 성실하게 노력해봤는데, 매체를 통해서나 볼 수 있는, 한국 경제가 세계에서 몇 순위 안에 든다는 말이 실감이 나는 삶. 서울의 좋은 아파트, 화려한 외제차, 넉넉한 생활 그런 것들은 그림의 떡이고 본인은 보통보다 못한 삶을 겨우 겨우 유지하는 걸 보니, 세상 이렇게 사는 게 아닌가 보다 싶어서 그렇게라도 동경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따라간 것 아닐까 하고요.

그런 생각이 들다보니 정치가 다르게 보였습니다. 선거 기간엔 너나 할 것 없이 세상을 좋게 바꿔보겠다고 말하던 인간들이, 당선 후에는 자리 싸움, 세력 싸움에 골몰하고, 언론은 그걸 무슨 스포츠 경기처럼 중계하고, 정당들은 언론에 한번이라도 더 노출되고자 그 말들을 쫓아 발언하고, 정작 없는 사람들은 이 아래에서 이렇게 아둥바둥 사는데 그런 쓸데없는 것들이 정치의 영역을 점거하고 있단 게 우습고 화가났죠

정의당에 생긴 기대는 거기서 파생된 것이었습니다. 저런 쓸데없는 짓에 휘말리지 않고, 아래로 밀려난 사람들, 한번뿐인 인생 충분히 넉넉하고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것도 억울한데 겪지 않으면 좋을 상황까지 더 많이, 더 자주 겪으며 힘들게 사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그 긴 시간동안 잘 살기 위해 나빠지는 길을 택하지 않고,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며 나름의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호하는 일에 정의당이 힘 써 주었으면 했습니다. 그런 일이야말로 세상을 자본의 논리에만 맡겼을 때는 일어날 수 없는, 정치의 영역에서 진보 정당만이 할 수 있고, 또 해줘야 하는 일이니까요.

마침 당시는 조성주씨가 2세대 진보정치를 외치며 당대표 경선에 나온 때이기도 해서 저는 그를 진심으로 응원했습니다. '진보정치는 광장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삶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말이 그런 제 생각과 닿아있는 것 같았거든요. '고용보험을 더 많이 걷어서 자발적 퇴직자도 고용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말은 아무리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자발적'으로 퇴직하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고 그 말인 즉 들이받고 때려치우는 순간 당장의 월세나 생활비를 마련할 수 없게 된다는 말이니 더러워도 내가 참자는 생각으로 당시의 직장을 꾸역 꾸역 다니던 제게 무기를 쥐여주겠다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알다시피 조성주 씨는 당대표 경선에서도 떨어졌고 이어진 총선 비례 경선에서도 높은 순번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제 기대는 여전했습니다. 제가 응원하던 분이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 건 아쉽지만, 저런 얘기는 꼭 조성주 씨가 당대표나 국회의원이 되어야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누가 무슨 자리에 앉건, 정의당은 그가 남긴 말과 글과 생각을 충분히 이어나갈 수 있고, 그 아래 수많은 약자들을 한 데 모아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메갈리아 사태가 터졌고 정의당은 본격적으로 제가 기대하던 모습과는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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