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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를 권합니다


디안 발손(Dianne Valsonne)감독의 영화 알츠하이머(Homer’s Disease, 2014)는 백인 프랑스 여성의 기억상실증을 배경으로 한다. 보통 ‘알츠하이머’ 관련 영화는 언제 촉발될지 모르는 기억조각으로 인해 갈등이 끊임없이 유발되는 내용인데, 이 영화는 조금 다르다. 저가임대주택에 거주하는 백인 프랑스 여성은 기억상실증으로 인해 흑인 이웃을 친족으로 여기는 기존의 생각과 다른 일화를 보여준다. 주인공은 자신이 백인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망각하고 나자, 이민자 사회 속에 자연스레 스며든다. 그가 앓는 ‘알츠하이머’는 역설적이게도 주류 사회와 이민자 사회 간의 화해 가능성을 정체성의 상실에서 찾는다. 

한국사회에 진정 필요한 것은 집단 ‘알츠하이머’가 아닐까 싶다. 한국사회에 팽배한 집단기억은 차이를 차별로, 소수자에 가해지는 폭력으로 작동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4.7 보궐선거 후보들이 쏟아낸 말과 정책은 모두 ‘00특구’를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안철수 후보의 ‘퀴어특구’ 이에 맞서는 ‘젠더특구’  ‘청년창업특구’ 이 밖에도 온갖 ‘특구’가 우후죽순 쏟아져 나온다. 서울시장 선거가 아니라 서울 ‘특’ 별시 시장선거임을 새삼 체감한다. 

4.7 보궐선거를 구경하며 한국정치의 수준을 개탄하는 사이, 국제적으로 대규모 총기참사가 잇따라 발생했다. 미국의 총기참사 사건은 꾸준했다. 여기에는 ‘무슬림’ ‘이민자’ 혐오가 기본값처럼 따라붙는다. ‘이슬람 혐오’ 에 대한 두려움 혹은 ‘이슬람’이라는 낙인의 두려움은 동전의 양면처럼 얽혀 있다. 혐오와 차별은 테러로 이어지고 전쟁을 촉발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서 벌어지는 정치인들의 실언은 단순히 실언으로만 볼 문제가 아니다. 특히 후보들이 앞다투어 내세우는 ‘00특구’ 같은 도시 분리는 역사적 비극의 시작점이다. 정체성 분리만이 문제가 아니다. 과거 개발정권에서 저소득 집단을 도시 외부의 열악한 주거지로 강제 이주시키거나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에 따라 노동 유연성이 증가하면서 인종과 계급 분화는 공간 분리로 촉진된다. 도시빈민이라는 개념은 오래된 한국적 게토화 현상이다. 이를 머금고 한국 기독교와 노동시장의 양극화로 인한 정체성 분리는 ‘공간화된 분노’로 ‘게토’를 조장한다.

‘특구’로 일컬어지는 공간적 구획은 정체성을 구조화시킨다. 매일 포털에 올라오는 정치인들의 차별적 언사는 도시 내의 패거리, 주변부 집단, 소수자 집단을 자연스레 주목하게 한다. 특히 한국의 온라인 공간은 그 대표격이라 할 수 있다. 기독교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가짜뉴스, 극우 유투버, 여당 장기집권전략을 내세운 팟게스트 유투버 채널들은 갈등을 심화시킨다. 이는 결코 ‘외부’에서 온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자생적으로 퍼져나간다. 패거리 정치에 동원되기 위해 정서적 끈으로 묶인 이들은 서로를 자극하고 낙인찍으며 분리 색출하기 바쁘다.

오랜 역사에서 이러한 게토화 현상은 장기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치공학으로 공공연하게 활용되어왔다. 극우 중도 성향의 유권자 지지를 흡수하면서 반 동성애 정서를 활용해 온 것은 큐어 축제를 ‘안 볼 권리’ 등으로 외화 시킨다. 때문에 ‘국민통합’ ‘관제민족주의’ ‘586 민주화’를 내세운 정치 동학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일방적으로 진영을 나누고 각자 할당된 비극의 정서를 휘감은 채, 해당 진영에 대한 충성스러운 정체성을 검증받으라 강요한다.
이주민 노동자, 동성애, 트렌스젠더를 국민을 위협하는 요소로 규정하는 뉘앙스는 바로 이러한 한국적 게토화 ‘특구’의 역설이다.

계층적 인종적 차별 속에 반(反)사회적 정서를 공유하며,  게토를 부추긴다. ‘통합’의 이름으로 서로의 불만을 자극한다. 한국 주류정치인들의 행보는 대중의 거울이다. 동질적인 정체성이 없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기 힘든 다수가 자신들만의 SNS, 혹은 종교시설, 특구를 만들어 고립을 자처하거나 추방시킨다.

테러와 극단적 폭력이 국제화되는 시점에서, “인권 문제는 아직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여야당 정치인들의 언사는 차별에 기대  자신의 정치적 입지, 지대추구에만 매몰된 후진 정치의 셈법이다.

진정한 사회적 합의를 위해선 알츠하이머를 권하고 싶다. 동일한 정체성은 없다는 자각, 차별에 기반한 ‘집단정신’로부터 벗어날 ‘집단적 알츠하이머’가 필요하다. 그리하여 인종, 계급, 성적 정체성으로부터 각자 ‘잊혀질 권리’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디안 발손(Dianne Valsonne)감독, 단편 영화 알츠하이머(Homer’s Disease, 2014)

2021년 3월 24일
정의당 서울시당 공동대변인 여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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