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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토론게시판

  • 정의당 학습소모임 “정의당 좌표 찾기(동대문구, 진보정당사)” 5회차 모임


장소: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우리동네 연구소'

 

일시: 2019524일 금요일 18-20

 

참석자: 김현근, 남우석, 임호빈, 최재식

 

주제: 2000년대 이후 진보정당운동사

 

연사: 권중도 서울시당 부위원장

 

학습 내용

 

- 정당으로서 진보세력의 정계진출이 본격화된 건 국민승리21부터라고 볼 수 있다.

- 1996년 신한국당의 노동법 및 안기부법 개정안 날치기 통과가 있었다. 이에 맞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노동계가 총파업에 돌입한다.

- 총파업 과정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노동자 정당,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1997년 민주노총이 이를 결의하였고, 민족민주진영이 결합하여, 국민승리21일 결성되었다. 이는 후에 민주노동당의 바탕이 된다.

- 15대 대선에서 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이 출마하여 30만 표를 득표하였다.

- 국민승리21은 명망가 중심 진보정당 운동에서 탈피하여 기층 민중 대중조직의 공식적 지지 결정과 결합된 최초의 진보정당 실험이었다. 이전 진보정당들의 경우 선거의 실패가 곧 정당의 사멸로 이어졌지만, 국민승리21은 민주노동당으로 나아가는 가교의 역할을 하였다.

- 2000년 민주노동당이 창당된다. 16대 총선에서 낮은 지지를 받아 정당 등록이 취소되었으나 곧바로 다시 등록한다.

- 2002년 지방선거에서 제3당으로 부상한다. 같은 해 치른 16대 대선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3.9%, 96만 표를 득표하였다.

- 2004년 탄핵정국 속에서도 2개 지역구 의석, 8개 비례대표 의석을 확보하여 지방뿐 아니라 국회에서도 제3당으로 등극한다. 18%대의 지지까지도 받았으며, 당원도 많이 늘었다.

- 민주노동당은 진보정당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규명해나가는 정당이었다. 또한 사회운동정당으로, 장석준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의제의 기획과 창출을 통해 계급투쟁을 비롯한 사회적 투쟁을 새롭게 조직화하며 운동을 만들어내는 정당이었다.

- 2008년 민주노동당은 분당된다. 여려 원인이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정파 사이의 갈등을 무시할 수 없다. 정치가 갖는 역동성의 기원이 갈등에 있다고 볼 때 정파 간 적절한 긴장과 갈등은 당의 성장과 발전에 긍정적 효과를 만들어낸다. 특히 보수는 과거의 시간과 경험에 확실한 기초를 바탕으로 한다면 진보는 새로운 미래에 대한 구상을 하고 실천해야 하는 입장이라 스펙트럼이 상대적으로 다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부 정파의 패권주의가 있었고, 이후 심상정 비대위의 혁신안이 부결되면서 당이 깨진다.

- 2011년 진보정당 통합에 대한 사회적 요구로,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의 통합이 이루어져 통합진보당이 출범한다.

- 2012년 총선 비례대표 경선에서 부실선거가 있었고, 이 과정에서 당이 다시 분열된다. 이후 2012년 진보정의당이 창당되고, 이후 당명을 정의당으로 개정하였다.

- 지난 진보정당운동사를 되돌아보았을 때, 우리 정의당은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먼저 진보의 정치세력화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대립보다 소통을 중시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등 패권주의에 대한 경계가 있어야 할 것이다. 갈등을 조율할 때에도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보다는 정확한 상황 분석을 통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정의당이 성장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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